피의자 거부하면 신상공개 연기 … "수사기관이 내릴 결정이 법원으로 넘어가"공개 시점만 늦춰져 각종 온라인 '찌라시'만 양산 … "이런식으로는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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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경찰청이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현역 군 장교 양광준(38)의 신상정보를 13일 공개했다.
- 2010년 신상정보 공개 제도 도입 이후 군인 신분의 피의자가 신상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사진은 양광준의 머그샷. 강원경찰청 제공.
최근 내연녀를 살인해 잔혹하게 시신까지 훼손한 피의자 육군 중령 양광준(38)의 신상 공개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경찰이 양광준의 신상을 공개키로 했으나 양광준이 이를 거부, 약 10일이 지나서야 신상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신상 공개 제도의 모호하거나 불필요한 기준과 유예기간 탓에 여론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19일 경찰에 따르면 2010년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도입된 후 공식적으로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2010년 2명 ▲2012년 1명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6년 4명 ▲2017년 1명 ▲2018년 3명 ▲2019년 5명 ▲2020년 9명 ▲2021년 10명 ▲2022년 5명 ▲2023년 9명 ▲2024년 7명 등 총 59명이다.경찰은 지난해 10월 제정돼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이른바 '머그샷 공개법'에 따라 중대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강제로 촬영하고 공개 결정일로부터 30일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또 기존 특정 강력범죄나 성폭력 범죄에 그치던 대상 범죄는 내란·외환·조직범죄·중상해·마약 등까지 확대됐다.신상정보 공개는 경찰관, 법조계 전문가 등 7명으로 이뤄진 심의위원회가▲범행 수단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 존재 여부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 등 요건을 고려해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피의자가 즉시 공개에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 결정 후 최소 5일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5일의 유예기간 동안 피의자는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공개 결정은 철회된다.최근 살인 및 시체손괴, 사체 은닉 혐의로 구속된 육군 중령 양광준(38)도 이 유예기간을 이용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지난 13일 신상이 공개됐다. 오히려 공개 시점만 늦춰지면서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먼저 신상이 공개된 것에 더해 '찌라시' 수준의 정보만 확산하는 악효과를 낳았다. -
- ▲ 헤어진 여자친구를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무참히 살해하고 그 어머니까지 중상에 입힌 서동하(34)의 신상정보가 14일 공개됐다. 사진은 경북경찰청 제공.
전문가들은 신상정보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은 물론 유예 등 복잡한 절차로 인해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아직도 피의자의 인권이 과하게 보호되는 측면이 있다. 범행 수단의 잔인성 등 이런 기준도 불필요하다"며 "피의자에게 과도한 권리를 줌으로써 수사기관에서 내릴 결정이 사법부에 넘어가게 되는데 이러면 제도에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그러면서 "기준이 모호해 엄격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보니 무기징역 정도 예상되는 범죄자 위주로 신상이 공개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재범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강조했다.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효과를 떠나서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신상은 다 공개해야 한다"며 "제도 정식 도입 이전에도 공개는 했는데 어느샌가 나라가 피의자 인권을 보호해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오 교수는 "현재 수사기관에서 공개를 하지 않아도 인터넷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기준을 명확하게 한다거나 이런 복잡한 일 없이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자의 신상은 일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도입된 머그샷 공개법은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그러면서 "이 살인범은 신상을 공개하고 이 살인범은 안 하고 이런 과정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다. 적어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 한해서는 가차없이 신상을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상습 음주운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10년 이내 2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김 의원은 "전직 대통령 자녀도 음주운전으로 자동차를 범죄 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마저 음주운전을 서슴지 않는 형국"이라며 "음주운전자 신상 공개를 통해 선량한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다시는 음주운전을 할 엄두를 못 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