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2006년 레바논 침공 실패 후 와신상담헤즈볼라 겨냥 최첨단 해킹 도구 개발 등 정보력 강화비밀회의 장소-시간 파악… 나스랄라 포함 지휘부 궤멸김대중~노무현~문재인 거치며 국정원-방첩사-정보사 모두 '흔들'
  • ▲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현장 인근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240930 AP/뉴시스. ⓒ뉴시스
    ▲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현장 인근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240930 AP/뉴시스. ⓒ뉴시스
    1982년 창설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비국가단체로 불리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불과 10여일 만에 와해 직전으로 몰렸다. 헤즈볼라를 32년간 지휘한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헤즈볼라 남부 사령관 알리 카라키 등 주요 지휘부가 공습으로 숨지면서다.

    특히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휘부의 비밀회의가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 벙커버스터(지하로 뚫고 들어가 터지는 폭탄)로 폭격했다. 이스라엘이 18년 동안 키워온 정보 역량의 수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8일(현지시각)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휘부의 비밀회의가 열리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다히예 지역을 공습해 나스랄라 등 주요 지휘관을 폭살했다. 이번 작전에는 공군 69비행대대 전투기들이 투입돼 2000파운드(907㎏)급 BLU-109 등 폭탄 100여개를 2초 간격으로 투하했다.

    69비행대대는 2007년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한 '오차드 작전' 등을 수행한 정예 부대다. BLU-109는 약 2m 두께의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초대형 벙커버스터다.

    외신은 이번 작전이 헤즈볼라 지휘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인지한 후 회동 장소를 정밀타격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정보망의 위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2006년 이후 사망 직전까지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에 대비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무선호출기(삐삐), 무전기(워키토키) 폭발이 잇따른 19일 이스라엘에 "응징할 것"이라는 그의 경고가 생전 마지막 공개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스랄라 사망 직후 나다브 쇼샤니 IDF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측이 나스랄라와 다른 지휘관의 회동 사실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극도의 경계 상황 속에서도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데 대해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 정보원이 헤즈볼라 내부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NYT는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고전한 이후 해외정보기관 모사드(Mossad)와 군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절치부심 헤즈볼라를 겨냥한 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해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34일간 이어진 전쟁에서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헤즈볼라가 납치한 자국 군인들을 구출한다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도부의 동향과 그들이 구사할 전술·전략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압도적 전력을 지니고도 사실상의 패배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군(IDF) 산하 비밀첩보기관 '8200부대'는 헤즈볼라의 휴대전화와 여타 통신수단을 더 잘 감청할 수 있도록 최첨단 해킹 도구를 개발했고, 미국 국가안보국(NSA)과의 협력 강화에도 나섰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무인기(드론)와 최신 인공위성으로 헤즈볼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중요한 정보가 일선 병사와 공군에 더 신속히 전달되도록 전담반을 신설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레바논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접근하기 쉽다는 점을 활용, 민간인으로 위장한 특수부대원을 잠입시켜 민감한 정보공작도 벌였다. 또 헤즈볼라와 이란 내부에 정보원을 심는 작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헤즈볼라는 이란과 협력해 스파이를 색출하고 통신망 해킹 시도를 막아내려 했으나,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강화한 정보 역량을 바탕으로 헤즈볼라 지도부를 하나하나 정조준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08년 서방을 겨냥한 여러 건의 테러를 주도한 헤즈볼라 최고위급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를 폭사시켰다.

    2020년 1월에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시리아를 경유해 레바논에 입국, 나스탈라와 만나는 정황이 이스라엘 8200부대에 포착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을 우려해 이들을 공격하지 않은 채 관련 정보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만 했다. 이후 미국은 솔레이마니를 계속 추적하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인근에서 드론 폭격을 가해 그를 제거했다.

    올해 7월에는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었던 푸아드 슈크르가 베이루트의 정부를 찾았다가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에 사망했고, 이달 초에는 8200부대가 시리아에 있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미사일 공장을 찾아내 폭격을 퍼부었다.
  • ▲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231101 국회사진기자단. ⓒ뉴시스
    ▲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231101 국회사진기자단. ⓒ뉴시스
    무엇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능력이 빛났던 것은 최근 10여일간이다.

    레바논에서는 17~18일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던 삐삐와 워키토키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휴대전화 도·감청을 우려한 헤즈볼라가 삐삐 사용을 장려하자 헝가리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모사드가 폭발물을 장착한 삐삐를 헤즈볼라에 대량으로 팔아치운 결과라고 NYT는 전했다.

    이어 19일부터 IDF는 지금까지의 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레바논 각지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에 착수했다.

    20일에는 헤즈볼라 특수작전부대 라드완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 등 핵심 지휘관 10여명이 무더기로 숨졌다.

    이스라엘 측은 아킬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본토 침투를 위한 땅굴을 살피고 돌아오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다가 베이루트의 작전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건물을 폭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23일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를 표적공습으로 제거하는 등 참수작전을 지속했고, 결국 27일 수장인 나스랄라마저 비밀본부와 함께 폭사시켰다.

    NYT는 "이스라엘은 자국 내 정보기관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일선 전투부대 말단까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체계를 구축했다"며 "이스라엘의 최근 성과는 18년 동안 축적해 온 정보력과 첨단기술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휴민트(HUMINT, 인적정보자산)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는 반면 한국의 최근 정보기능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외국에서 외교관 등의 신분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 등의 정보를 다수 유출해 한국의 대북 '휴민트'가 사실상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등에서 안보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들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으로 이어진 좌파 정부가 국정원과 방첩사령부 등 국가정보기관의 시스템을 약화한 것이 이번 사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전 고위 간부는 "국정원은 스파이를 잡을 수사권을 상실했고, 조직 내부에서 편이 갈려서 투서가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군 정보사에서는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의 신상 자료까지 유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기무사는 국가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방첩사로 다시 개명되는 등 수년 사이 조직이 거의 유명무실했다가 다시 꾸려지기를 반복하면서 제 임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 방첩사, 정보사 등 '정보 3축'이 모두 절뚝거리고 있는 셈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하고 국내 정보(IO) 분야를 폐지했으며 정보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직업 정치인 박지원을 원장으로 임명했다.

    국정원 원훈석에 국내 최대 간첩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의 연루자인 신영복의 필체로 정보기관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연설 일부를 새겨넣은 것은 문 정권의 국정원 무력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하고 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문 정부는 국정원을 전대미문의 치명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 위기는 국정원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정원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론적 위기였다"며 "북한으로부터의 위기를 그저 수수방관하도록 함으로써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정보업무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 직업정신을 본질적으로 훼손한 치명적 위기였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을 지낸 황윤덕 양지회 부회장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보사에서 이 같은 사달이 난 것의 근본적인 요인은 국정원의 대공보안정보 기능의 박탈에 있다는 점"이라며 "민주당은 다수의 폭주 입법으로 2020년 12월에 국정원의 '대공보안정보' 기능을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이제는 국정원의 대공보안정보 기능을 부활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