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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찬반 양론이 가열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한다”고 밝혀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이 시점에서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79주년을 맞은 광복의 기쁨이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성토’를 넘어 '미래 지향적인 국제관계의 계기'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자 한다.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NSC에서 한반도 업무를 총괄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일찍이 한일 관계를 ‘적대적 제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한일 양국이 서로의 적대적인 감정과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가 서로 적대 관계를 지속할 경우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버림(abandonment)’ 받을 수 있다는 공통된 인식 때문에 독특한 제휴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평가해 크게 주목 받았었다.어느새 20년이 지난 차 석좌의 이러한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일 양국의 관계는 동아시아의 안보 현실이 급변하면서 특히 점차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까지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주된 위협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 감시와 대응에는 지리적 이유로, 미자와 기지를 비롯해 일본 북부에 위치한 주일미군과 일본의 역할이 점차 중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혼슈 이남에는 7개에 이르는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으며 애초에 유엔사는 일본 도쿄에 설치되어 6. 25 이래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일본을 매개로 한 한미 연합전력의 운용은 매우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우리 안보는 일본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유사시에 미국이 우리 군에 제공 가능한 가장 최신의 군사 자산은 미국이 일본과 공동 개발, 공동 생산한 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일 공동생산은 미국의 낮은 무기 생산 능력을 만회하고 ‘분쟁 예상 지역에서 가까운’ 일본의 무기 생산 능력을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특히 미국은 주일미공군에 우선적으로 F35A를 전환 배치하고 일본 자위대가 통합작전사령부를 설치하는 데 보조를 맞춰 주일미군사령부가 독자적 작전이 가능하도록 통합군 사령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상대로 미일간의 군사협력은 제도화 수준이 연합사령부가 설치돼 있는 한미 간의 군사협력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이런 상황에서 동맹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을 ‘연례적으로 규탄해야 한다’는 과거 집착적인 주장은 적절하지도 이성적이지 않다. 특히 “광복절만큼은 통한의 역사를 기억하고 침략자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해야만 하는 날이며, 보수와 진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해야 할 역사의 경건한 의식”이라는 식의 정치인들의 주장은 국가 이익과 안보를 파괴하고 국민을 갈라치기하고자 하는 획책에 지나지 않는다.만약 미국 정치인이 “매년 8월 15일 만큼은 미국이 일본에 ‘원폭 투하와 무조건 항복의 기억’을 촉구하는 ‘역사의 경건한 의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를 이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지금에 이르러 한일 관계가 ‘적대적 제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미 관계는 물론 우리의 주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선택지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래 지향적인 국제관계의 계기가 되어야 할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직면한 현재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다. 동맹의 생명력은 위협의 공유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때 유지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관성이 지배하는 동맹은 필요한 때에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이 한미동맹에서도 재연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광복의 의미와 과거 일본의 만행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안보체계와 국익을 함께 고려하자는 것이다. 이 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닌 안보 위협을 받아낼 후세대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땅이라는 걸 잊지말아야 한다. 2024년 8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