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엔이 북한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발표를 듣고 격분한 이승만과 정부 및 국회의 움직임을 보도한 기사와, 이승만대통령이 미국을 상대로 '반대'를 발표한 기사. (조선일보 10.25일자)
    ▲ 유엔이 북한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발표를 듣고 격분한 이승만과 정부 및 국회의 움직임을 보도한 기사와, 이승만대통령이 미국을 상대로 '반대'를 발표한 기사. (조선일보 10.25일자)
    압록강 물을 담은 국군의 수통을 받아들자 이승만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부터 하였다.
    6.25가 터지자 ”이것은 대한민국 통일 전쟁이다“ 선언했던 이승만, 그 통일이 눈앞에 왔다. 그것은 대한민국 건국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인데, 문제는 뜻밖에도 또 하나의 장애물 미국이 앞을 가로막았다.
    해방후 3년간 좌우합작한다며 소련과 손잡고 건국을 방해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소련과 싸우면서도 ‘통일’을 방해하고 나선 것이었다.
    탈환한 수도 서울을 이승만 정부에게 인도하지 말라, 38선을 절대로 넘지 말라며 유엔 결의를 들먹이던 미국이 북한을 탈환해가는 지금에 와서 또 엉뚱한 카드를 내밀었다.
    ”북한은 반공강경파 이승만 정부에게 맡기면 안된다. 유엔이 군정을 실시해야 한다“
    미국이 이럴 줄 알았다. 이승만은 그래서 중앙청 태극기 게양도 국군이 먼저, 38선 돌파도 국군이 먼저, 압록강 두만강도 국군이 선점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래야만 승리는 대한민국의 승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시정부가 일본군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해방되고 보니 해방과 38선은 미-소의 새로운 지배 경계가 되고 말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북한을 대한민국이 선점할 때만이 통일은 대한민국의 통일이 될 것이며 남북통일만이 ‘반쪽 대한민국’이 ‘독립의 완전체’로 거듭나는 절대조건인 것이다. 이승만은 지체 없이 미국과 유엔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역사상 한번도 해방되지 못한 북한이다. 조선왕조의 혹독한 계급독재 전제주의 500년, 일본의 식민군국주의 40년, 이어서 미국의 원자탄에 일본이 패망하자 해방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해방을 외치는 소련군은 '해방군'이 아니었다. 왕조독재와 식민독재를 합친 것보다 엄청 참혹한 약탈과 무차별 살인을 자행하는 야만적 공산독재, 그 소련 강점 5년만에 그것을 물리친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북한은 역사상 최초로 해방을 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강대국 미국이 군정을 실시한다고? 목숨을 걸고 막아야할 민족적 사명감에 이승만은 북한 해방과 자유통일을 위해 몸을 던진다.

  • ▲ 이승만 대통령의 평양입성 환영식 현수막이 걸린 평양시청 발코니에서 연설하는 이승만(왼쪽)과 국군의 입성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
    ▲ 이승만 대통령의 평양입성 환영식 현수막이 걸린 평양시청 발코니에서 연설하는 이승만(왼쪽)과 국군의 입성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
    ◆ 이승만 격분 ”북한에 군정 실시 절대반대...미국은 전후복구 원조만

    백선엽의 1사단과 미1기병대가 평양을 탈환한 직후, 미국AP통신 특파원은 서울발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한다. 

    ▶ [서울22일발AP-대한통신] 한국정부 최고 관변 측에서 21일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에서의 평화를 획득하기 위하야 유엔 및 맥아더 장군과 완전히 협조하리라고 한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권한을 임시적으로 38이남에 한정하는 것과, 유엔 감시하에 38이북 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 측근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권한을 남한주민 2천100만명에만 한정하고 이북주민 1천만은 유엔 지배하에 둔다는 것을 순전히 모순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 측근자는 한국군 총참모장 정일권 장군 및 동 최고간부 5명이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패배하여도 여전히 망명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것이 공산주의와 투쟁한데 대한 대가인가? 5년 전에 소련 점령군으로 말미암아 북한이 공산주의 수중으로 넘어갔을 때에 반공사상을 가진 인사들은 민주주의 하에 생활하고자 남한으로 밀려 내려왔었다. 북한으로부터 남한으로 내려온 피난민수는 근 4백만에 달하였다. 그들 중에는 민주적 지도자의 역할을 역량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엔 한국위원단이 대한민국의 권한을 38이남에 한정하고 북한에는 맥아더 장군 지도하에 민정을 설비하여 총선거실시를 요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민국 정부는 즉각 이것을 반대하였다. 즉 이대통령을 비롯한 내각 및 국회로부터는 공분이 폭발하였다. ([조선일보] 1950.10.25.)

  • ▲ 해방후 소련의 강점에서 처음 물려난 북한 해방, 이승만대통령은 평양에 날아가 시청에서 자유통일을 다짐하는 연설을 하였다. 약 5만명의 평양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1950.10.29)
    ▲ 해방후 소련의 강점에서 처음 물려난 북한 해방, 이승만대통령은 평양에 날아가 시청에서 자유통일을 다짐하는 연설을 하였다. 약 5만명의 평양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1950.10.29)
    ★ 이승만 대통령은 친분 있는 미국 특파원을 국제전화로 불러 인터뷰 형식으로 미국과 유엔의 ‘통일 간섭’에 대한 본심을 드러냈다. 공산군을 물리쳐주는 자유우방에 대하여 용어선택 등 아주 조심스럽지만 실상 분노를 삼킨 노골적인 반격이다. 

    ▶ [워싱턴24일발AP-대한통신] 이승만 대통령은 당지 [US뉴스-월드리포트]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하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군은 북한괴뢰군이 패배한 후 잔존한 게릴라들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평화가 회복되면 남북이 하나로 통일 되는데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유엔군이 침략군을 무찌른 이상 평화와 통일에 대하여는 낙관적이며, 전쟁으로 말미암아 피폐한 조국의 재건에 대하여는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며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 보고 있다. 대통령은 또한 ”전쟁으로 인한 손해는 대략 남한전체의 35~65%로 보는 바, 이를 재건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막대할 것인데 유엔의 우리 친구들의 원조 없이는 복구하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대통령은 또한 한국군이 전쟁 후에 오는 문제로 게릴라 소탕을 능히 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중략)
    이대통령은 전쟁 종료 후 유엔이 북한에 총선거를 시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한데 대하야 항의한바 있는데 ”한국은 자동적으로 통일이 될 것이며 유엔이 총선거를 실시할 때까지 북한을 통치하겠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이대통령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우리는 유엔의 여하한 계획도 수용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유엔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원조할 뿐이라는 것이다.
    공산당들은 대한민국을 가리켜 괴뢰정부라고 한다. 지금 유엔 한국위원회가 북한에 지방정부를 수립하고 선거를 시행한다고 떠들고 있는데 공산당은 이를 한국인의 정부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북한 동포들의 대다수는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며 다만 한 주먹의 친공분자들만이 대한민국을 불신케 하려 하고 있다.“

    ★ 두 기사가 전하는 바, 이승만의 주장 요지는 이러하다.
    첫째, 남북통일은 우리끼리 자연스레 잘 될 것이며 치안문제도 걱정 말라.
    둘째, 미국과 유엔은 전후 복구를 위한 원조만 해야 한다.
    셋째, 유엔 이름으로 북한 선거를 해도 공산측은 ‘괴뢰’라 비난할 것이니 포기하라.
    요컨대, 북한 통일문제는 대한민국에게 맡기고 북한에서 손을 떼라는 선언이다.
    미국이 해방후 3년때처럼 소련의 술수에 말려들면 남북통일은 또 하나의 흥정꺼리로 전락하고 말 것인 즉, 한 줌도 안 되는 공산분자들과 상대하지 말고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일임하라는 강공 회견이다. 이승만은 미국무부의 친소-친공주의자들에게 넌더리가 난다.

    ★ 미국은 사사건건 왜 이러는 것일까. 트루먼-애치슨의 ‘3차대전 예방’이란 어정쩡한 정책 탓이다. 소련과 북한의 공산화침략 전략의 진상도 모른채 막연한 ‘붉은 공포’에 스스로를 묶는 ‘수세전략’에 갇혀버린 후, 강경한 반소-반공주의자 이승만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북한지역을 맡기면 행여 이승만이 소련과 중국 국경을 자극해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절대로 안되겠다는 소아병적 집착, 그리하여 해방후 남한에 미군정을 실시했듯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북한에 '군정’이란 ‘썩은 메뉴’를 또 들고 나온 것이다. 남한군정도 실패하고 이승만의 유엔외교 덕분에 얼씨구나 철수하고서도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물한 개구리 꼴이다. 

  • ▲ 평양 시청 발코니에서 열린 시민환영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 소녀의 곷다발을 받은 뒤 연설을 하고 있다..
    ▲ 평양 시청 발코니에서 열린 시민환영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 소녀의 곷다발을 받은 뒤 연설을 하고 있다..
    ◆ 평양 시민들 “국부 이승만” 환호...“자유통일 민주쟁취 맹서합시다“

    가자, 북한으로! 이승만은 평양 탈환 열흘째 29일 경무대를 나와 비행기에 오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소련 강점’ 5년 만에 다시 찾아 진짜 ‘해방’시킨 적도(敵都) 평양을 접수하여 ”우리 손으로 통일“을 완성하기 위한 ‘북한 통치’의 길에 나선 것이다. (다음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함으로써 당시 현장 분위기를 살펴보자)

    ▶ [평양에서 대한통신 특파원발] 이승만 대통령은 29일 오전8시30분 C-47 미군 특별기로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 8시45분 개성을 지나, 지난 5년간 자유한국의 허리를 끊었던 비극과 민족적 악몽에 우리를 사로잡았던 마의 적경(赤境) 38선을 뚫고 북한으로 돌진하였다.
    기자는 폭음관계로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질의하였다. “각하의 심경은 어떠하십니까?”
    각하께서는 친히 붓을 들어 그 감상을 적어주시었다. (필자 주: 당시 신문기자들도 기사 쓸 때 이승만 대통령에게 경어를 썼다.)
    “본인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지금부터 39년전 1911년이므로 감개무량하며 무한히 기쁘다. 그보다 세계정복만을 일삼는 외세에 의하야 과거 5년간 분단되었던 우리 조국이 다시 통일되니
    한층 기쁘다. 이제 우리는 유엔의 지원을 얻어 다시 통일 되었는 바 어떤 나라일지라도 우리가 모든 문명국가와 힘을 합하야 나가는 이상, 다시 우리나라를 분단함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명국가는 반드시 우리와 함께 나아갈 것이다.”

    오전 9시 30분 비행기는 약 150마일의 양도시간거리를 불과 55분밖에 안 걸려서 평양 능라도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단기 4283년 10월 29일 오전 9시 30분, 역사적인 평양입성의 제일보를 열으신 이 대통령 각하께서는 비행기 앞에서 조종사도 포함하여 일행과 기념 촬영을 하신 뒤에 아군 제O군단에 배속되어있는 미군사 고문단 고급 장교들에게 그 수고를 치하하신 다음 아군의 장병이 도열한 가운데 발걸음을 옮기시여 정일권 총참모장을 비롯하여 백선엽 준장(평양 제1착 돌입 맹장)등 장성들의 환영과 인사를 받으신 후 그 노고와 분투를 치하하셨다.

    이어 대통령 각하께서는 미군과 아국군의 장병이 전후를 보위하는 가운데 한때는 피로 물들었던 대동강을 지프차로 건너, 소위 김일성 대학촌을 보시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도열한 대동강변을 지나, 소위 소련 위성국 수도였던 평양에 입성하시었다.
    연도에는 피난갔다가 짐지고 돌아오는 주민들을 포함한 시민들이 손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이날의 세기적인 대통령 방문을 만세 소리도 우렁차게 환영하였으며, 거리에는 「대한민국 국부 이 대통령 만세」 등 환영 플랜카드와 아치문이 곳곳에 보였다.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 만세를 환호하는 남녀동포의 모습에 일일히 답례하시며 5년간 공산괴뢰 치하에 유린된 역사적 고도(古都)의 시가를 달리시어 환영대회장인 평양시청으로 향하시었다.

    오전 10시 대통령 각하께서는 과거 5년간 김일성 도당이 선량한 민중을 억압하고 소련의 예속을 위하여 온갖 혹독한 짓을 다해오던 살인, 방화의 본진이었던 지금은 새살림 집이된 평양시청에 무사히 도착하시었다.
    박현숙, 권옥희씨, 임정득(任正得) 평양시 관리위원장(시장) 및 미군 임시민정관 벨파이어 대령 등 접견하시었다. 이때에 약 5만여명이 운집한 시민들이 그칠 줄 모르는 환호를 보내었다. 
    오랫동안 간판을 내세우지 못했던 조만식 조선민주당, 서북 의용대, 학생청년단체들이 약 20분간 시민환영대회를 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환영하는 환호성과 애국가 제창 소리는 온 천지를 울릴만큼 웅장하고 어딘지 민족의 한이 터진 듯,
    임 시장이 감격의 눈물로 환영사를 마친 뒤에, 신성모 국무총리 대리 겸 국방장관이 “이제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하고 말을 하니 시민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미칠 듯한 환희에 휩싸여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때 광장 북편에 있는 교회당으로부터 자유의 종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회색 두루마기 한복차림의 대통령께서는 마이크를 손에 들고 감개무량한 어조로 약 한 시간에 걸쳐 다음과 같이 간곡한 인사말씀과 유시(諭示:타이르고 가르침)를 하시었다.


  • ▲ 이승만대통령의 평양 방문 기사와 연설 전문을 보도한 조선일보 1950년 10월31일자 사회면.ⓒ조선DB
    ▲ 이승만대통령의 평양 방문 기사와 연설 전문을 보도한 조선일보 1950년 10월31일자 사회면.ⓒ조선DB
    “남과 북 가르지 말고 나눠먹으며 다 함께 번영”

    ▶ 이승만 대통령 유시 ◀

    “본인이 39년 만에 다시 한번 대동강을 건너 이 평양을 찾아보게 되니 감개무량하여 무한히 기쁩니다.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시었습니까.
    제2차대전후 적국 일본이 패망하자 나는 자유조국이 독립하여 즐거운 신생활을 할 줄 알았더니, 세계정복을 꿈꾸는 소련이 하등 정당한 이유도 없이 비법적으로 우리나라를 양단하여 38선이란 운명의 선을 그었습니다. 소련은 그리고 김일성 공산도당을 시켜 한국의 소련 예속화를 통한 충성을 다하도록 교사하는 한편, 살인방화 약탈을 감행하도록 하여 아름다운 우리조국 향토를 더럽혔습니다. 

    그동안 2백만 이상의 북한 동포들이 재산과 가족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우리는 없는 것도 서로 나눠먹으면서 화평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온 동포들은 그 동안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면서 민주의 선두에 서서
    공산당의 비행을 지적하면서 눈부신 활동을 해왔습니다. 

    소련은 소위 모스크바 삼상(三相)결정이라 하여 우리나라를 신탁통치하에 두어 자기의 위성국가화 하려고 갖은 모략과 술책을 다하여 왔으나 우리는 죽음을 걸고 한마음 한뜻으로 싸워 왔습니다. 좌우합작이니 뭐니 하는 방법을 쓰다 못해 실패에 돌아가자, 소련은 무기를 김일성에게 주어 급기야는 지난 6월25일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에 침범하야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전국을 정복하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돈을 가지고 무기를 사려해도 여러 가지 국제관계상 무장을 못하였습니다. 소련이 대한민국의 무비(武備)가 약한 것을 보고 침략을 한 것은 어느 면 그들에게는 옳았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그들은 목전의 침략에 눈이 어두워 대한민국 뒤에 53개국의 자유민주진영이 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보시지요. 우리 우방 53개국의 평화애호 국가들은 24시간 내로 자유를 위하여 총궐기하여 오늘날 우리 국군을 도와 용감히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소련은 조그만 한나라를 위하여 전 세계가 다 같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요. 지금은 머리를 싸매고 앓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유엔의 지원을 얻어 다시 통일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나라일지라도 우리를 다시 분단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산당은 한국에서 축출되었으며 앞으로 중공이나 소련이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등 겁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위하야 싸울 뿐이요, 우리가 합하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이 맹서 합시다.
    자유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울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국토를 튼튼히 방위하기 위아야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것이며
    유엔은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우리 대한사람들이 얼마만큼 훌륭히 일을 잘 해나갈 것인가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속히 부흥건설에 노려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도지사도 중앙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의사로 선량한 대표를 선출하여 임명할 것입니다. 멀지 않아 도지사 선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의식주인데 우리 다 같이 모자라는 것은 나눠먹고 서로서로 살아나갑시다. 
    정부는 하루속히 교통이 통하는 대로 쌀과 광목(廣木:무명옷감)을 남에서 가져와서 여러분에게 나눌 작정인데, 모자랄 경우에는 외국에서 쌀과 광목 같은 것을 우선 사다가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정부는 현재 만반 준비를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한 살림을 하려고 하는데 유엔을 비롯한 국제적인 관계와 시기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므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현재 무초 대사가 워싱턴에 가서 모든 것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유엔도 앞으로 우리들 도와 만사를 잘 되도록 할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와서 누가 남쪽사람이니 북쪽사람이니 하거든,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저해하는 사람으로 지목해두어 규탄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든지 본인(대통령)이 필요하시거든 청해 주십시오. 다 같이 의논하여 살아가십시다.
    끝으로 여러분이 당장 필요한 화폐 사용도 관계자들에게 일러두었으니 상의 껏 경제재건을 위하야 노력하여 주십시오. 
    자, 여러분! 다시 한 번 나와 같이 맹서합시다.
    통일된 자유 조국을 위하야 싸워나갈 것을!”

    11시55분 유시가 끝나자 평양 시민들은 “우리 대통령 만세”를 연속 절규하며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다. 자유의 종소리가 끝없이 울리고 국방부 군악대가 연주하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각계각층에서 드리는 화환과 기념품을 받으시고,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시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시민들 속을 몸소 인사하며 지나서야 회장을 떠나 비행장으로 향하시었다. 
    정오 40분 평양을 출발, 오후 1시 35분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안착하시었다. (조선일보 1950년 10월31일자 2면 기사 요약, 현대문으로 바꿈)

    이승만의 북한 수복지역 현장시찰은 평양뿐만이 아니다. 나흘 전 25일엔 원산에도 다녀왔고, 평양 방문 후엔 함경남도 최대도시이자 도청소재지였던 함흥시에도 현장수습이 되는대로 날아갈 예정이다. 이승만은 11월22일 함흥을 찾아가 환영대회에서 북한 동포들에게 연설하였다.

  • ▲ 군국의 평양 탈환 직후 10월21일 '남북한 동포는 마음부터 통일하자'며 남북국민협력을 강조하는 이승만 특별담화를 보도한 기사. (조선일보, 1950.10.24일자)ⓒ조선DB
    ▲ 군국의 평양 탈환 직후 10월21일 '남북한 동포는 마음부터 통일하자'며 남북국민협력을 강조하는 이승만 특별담화를 보도한 기사. (조선일보, 1950.10.24일자)ⓒ조선DB
    ◆ ‘북한 민주화’ 발표...“미국의 일방적 결정 거부”

    평양을 다녀온 이튿날 10월 30일 아침,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에서 내외기자 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한다. ([조선일보] 1950년 10월31일자 1면 머리기사)
    <한국 통일문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 내용 요지는 한마디로 ‘북한의 통합과 민주화’에 대한 구상이다. 평생 몽매에 그리던 남북통일이 현실화되는 그때, 이승만은 미국의 유엔군정방침에 대한 쐐기를 박고,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대한 통일국가 건설 작업을 서두른 것이었다. 
    건국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 헌법정신 그대로, 소련의 강점 5년간 빼앗겼던 북한 국토와 동포를 남한과 통합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조속히 실시함으로써 공산주의에 세뇌된 북한 동포들의 의식구조를 붉은 사슬에서 해방시키고 교육시킴으로써 ‘3천리 3천만 자유국민국가’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철저히 제외, 북한 도지사들은 선거로 뽑는다”

    ▶ 이승만 담화 요지 ◀

    ”맥아더 장군의 감격적인 지휘아래 국제연합군은 한국에 있어서 공산괴뢰군을 북방 경외(境外:국경밖)로 구축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내어, 완전소탕의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이때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정치적 통일과 경제적 부흥은 우리들에게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되었습니다.
    이에 관하여 내가 명백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정부는 지난 10월7일 채택된 국제엽합총회 결의에 쫓아서 행동할 것이며, 국련(國聯:유엔) 한국통일 및 부흥위원단과 적극 협력할 작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유엔의 10월7일 결의안을 강조한다. 워낙 38선까지 제한전을 규정했던 6월 결의안을 번복한 유엔은 유엔군의 38선 월경을 승인하고 공산침략자를 물리쳐 한반도 통일 달성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또 하나 지적해 두려는 것은, 장차 여러 가지 문제를 가장 잘, 그리고 가장 현명하게 하려면 현재의 여러가지 특수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단일 민족입니다. 38선으로 말미암아 우리 국토가 비극적으로 양단되었던 것은 우리가 한 것도 아니요, 우리가 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북한에선 공산괴뢰정권이 우리 동포들을 압제하였기 때문에 해방되던 때부터 애국심 있고 준법정신 있는 수백만의 동포가 생명과 존엄을 보전하기 위하여 월남해왔던 것입니다. 이 선량한 동포들은 지금 이북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발전을 위하여 혹은 선거권을 행사함으로써 많은 공헌을 한 이들 월남 동포들은 장래 북한에서 할 사업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시행할 선거에 대해서는 일시 공산당에 억눌려 있던 민중들이 자기네들 민심에 따라
    아무 위협 없이 투표할 수 있는 자유분위기가 생기는 대로 실시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해 두려는 것은, 이러한 자유분위기는 공산당원이었던 사람들이 한사람이라도 관공직이나 기타 책임 있는 자리에 남아 있어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공산당원이나 전에 공산당원이었던 자나 전에 공산당이 만든 정부기관을 쓴다는 데 대해서는 절대 반대입니다.“

    자유민주주의-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다운 공약이다. 북한도 전쟁이 끝나면 즉시 남한과 같은 자유민주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산당 제거’ 반공주의였다. 선거에도 반공, 공직자 임용에도 반공, 6.25남침의 주적(主敵)을 ‘절대 반대’하는 이유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항간에서는 내가 벌써 북한에 보낼 관리들을 많이 임명했고, 심지어는 관리명부까지 작성하였다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공산 괴뢰군이 침범해 오기 훨씬 전에 내가 당시 공산 지배하에 있던 도(道)의 지사들을 임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과 결국에는 이북 땅도 우리들 조국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키 위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임명은 남한 각도지사의 임명과 동시에 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임명된 지사들이나 그전에 관직에 관한 말이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 북한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자유의사에 맡깁니다. 그들이 그러한 책임 있는 지위를 새로 얻거나 유지하려면 그 지방주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 관리로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전쟁이 끝난 후 몇주일 지나면 사태가 안정될 줄 아는데, 그렇게 되는대로 곧 남북을 통하여 각도에서 선거를 시행하여, 도지사를 정부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이 직접 선택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이 문제가 한1년 전 국회에서 일어나서 국회 지도자들과 정부각료들 간에 동의하기를 통일되면 그렇게 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전 한국을 통하여 정치를 잘해 나가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북한 출신으로 북한의 여러 가지 직무에 적당한 인사들을 임시 조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서 얻은 조사결과 정보를 맥아더 장군에게 제공할까 생각하고 있는 동시에 국련 한국통일 및 부흥위원단에게도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시 남한 도지사들을 임명할 때 ‘이북 5도’(함경남북, 평안남북, 황해) 지사들을 임명했지만 그 취지는 통일된 마당에 소멸했다는 것을 밝히고, 북한 행정 지도자들은 북한 동포들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자유민주 ‘민의정치’ 원칙을 이승만 대통령은 거듭 강조한다.  

    ”한국정부가 한국에 관한 모든 결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로서 한국의 정부나 국민이 그들과 아무 연락도 없이 결정된 계획에 자동적으로 구속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머지않아 여기 도착할 신(新)국련위원단에게 충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바로 이것이다.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북한에 군정을 실시하고 새삼스레 총선거를 하겠다는 방침에 대하여 정면으로 ‘정치적 독립’을 선언한다. 건국헌법은 물론, 실제로 국회엔 북한의 국회의원 자리 100석을 남겨두고 있는데 유엔이 총선거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내정 간섭이요 주권침해이다. 남북한 통일국회야말로 대한민국 주도로 구성해야함은 너무나 당연한 독립국가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강대세력의 일방적 결정 시도를 한마디로 비토하였다. 
    스탈린-김일성 공산 침략군과  싸우며 한국을 도와주는 미국과도 싸워야 하는 그 싸움은 제2의 독립운동, 아니 이승만의 '독립전쟁'이다. 그 독립전쟁은 남북통일까지 끝날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독립전쟁이다.  

    ★ 삼천만 한국인의 눈앞에 펼쳐지던 남북통일의 ‘장미빛 꿈’은 그러나 한 달도 안돼 무참히 깨진다. 범인은 누구인가. 이번엔 중국 공산당 독재자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1893~1976)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