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제3자 변제안'… 행안부 재단, 피해자들에 판결금·이자 지급박정희정부(92억)→ 노무현정부(6500억)→ 윤석열정부, 3번째 배상 나서포스코, KEB, IBK, 코레일, 농협, 수협, 도공, 한전, KT, KT&G 등 16곳이 재원일본, 1995년 이후 총리 담화 4회…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 방식으로 사과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상윤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상윤 기자
    정부가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강제동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6일 공식 발표했다. 

    변제안은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의 원고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제3자'인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판결금(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세 번째 배상에 해당한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과 피해 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2013다61381, 2013다67587, 2015다45420) 원고분들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변제안을 통해 지급할 판결금의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국내 '수혜기업' 16곳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통해 우선 마련할 방침이다. 청구권 수혜기업은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한국수자원공사·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한국철도공사(코레일)·농어촌공사·농협·수협·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공사·케이티(KT)·케이티앤지(KT&G)·대한광업진흥공사(한국광해광업공단)·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울대병원·기상청 등 16곳이다.

    일본정부는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주장이지만, 민간의 자발적 기여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재원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재원을 더욱 확충해나갈 것"이라며 "동 재단은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동 판결금과 지연이자 역시 원고분들께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사과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05년 고이즈미 총리 담화 △2010년 간 총리 담화 △2015년 아베 총리 담화 중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장관은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와 지역·국제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 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발표 강행 규탄 항의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발표 강행 규탄 항의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일청구권협정과 대법 판결 사이의 절충안

    정부가 이날 발표한 변제안은 상호 충돌하는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제1항)"하기로 합의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그리고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모두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나온 절충안이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 청구권협정을 맺고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의 4분의 1(△무상 3억 달러 △장기 저리 정부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을 지원받음으로써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당시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자국의 원호법에 따라 직접 배상하겠다고 했지만, 우리 정부는 청구권자금의 총액을 정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받기를 선택했다. 

    이렇게 받은 청구권자금을 정부는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등 건설과 ㈜포스코(옛 포항종합제철㈜)·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코레일·KT&G·외환은행(현 하나은행)·한국수자원공사 등 16곳에 투입하는 등 경제개발의 종잣돈으로 활용했다. 

    정부의 이번 변제안은 박정희정부(약 92억원)와 노무현정부(약 6500억원)에 이은 세 번째 배상이다. 

    박정희정부는 1974년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제정)에 의거해 인명·재산 포함 총 8만3519건에 91억8769만3000원을 2년에 걸쳐 배상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한다. 포스코에 유무상 5억 달러의 23.9%에 해당하는 무상자금 3080만 달러와 유상자금 8868만 달러가 지원된 사실과 비교하면 매우 약소한 규모다. 

    노무현정부는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위원장 이해찬·위원 문재인)를 만들어 청구권협정과 관련해 모든 자료를 조사한 끝에 '강제징용 청구권은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08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2023년 2월 말 기준 7만8000명에게 약 6500억원을 지급했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2017년 12월)에서 정부가 위안부합의 협의 과정 중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 피해자 소통을 밀도 있게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15명 가운데 연락처 불명의 2명을 제외한 13명의 피해자·유족·가족을 직접 접촉해 의견을 청취한 결과 상당수 유가족은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속한 해결을 희망했고, 우리 법원의 판결인 만큼 정부도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분들도 존재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외교부는 법적 혼란이 야기한 징용 배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실무급 협의와 고위급 협의를 병행해왔다.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은 △피해자 지원단체·법률대리인 면담(2022년 6월16일, 서울)과 △피해자 지원단체 면담(2022년 7월28일, 광주)을, 박 장관은 △광주 방문(2022년 9월2일)과 △피해자 지원단체·법률대리인 면담(2022년 12월2일과 12월7일, 서울·광주)과 △피해자와 유족·가족 단체 면담(2023년 2월28일) 등을 가졌다. 

    또한 △민관협의회(2022년 7월4일, 7월14일, 8월9일, 9월5일) △조현동 1차관 참석 한일비전포럼(2022년 11월16일) △장관 주재 한일관계 관련 '현인회의'(2022년 12월6일) △공개 토론회(2023년 1월12일) 등 국내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