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2월 중순이 지났으니 이변이 없는 한 <탑건: 매버릭>은 흥행과 작품성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기록될 것이 확실시된다. 먼저 5월에 열린 제 75회 칸 영화제에서 탐 크루즈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객석은 5분이 넘는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흥행 면에서 매버릭은 지난 5월 27일 개봉 후 31일 만에 세계적으로 수익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11월까지 약 14억8,600만 달러, 한화로는 약 2조원을 쓸어 담았다. 덤으로 탑건 1편까지 전미(美) 스트리밍 1위로 역주행을 했으니 가히 '돌풍'이라 할 만하다.

    한국 팬들도 의리를 지켰다. 매버릭은 당초 2020년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에 연기를 되풀이하다 미국보다 한 달 늦은 6월 22일 개봉해 12일째 300만, 71일째에 800만, 지난 12월 2일 기준 총 817만2,704명 이상이 극장을 다녀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탐 크루즈가 주연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흥행 성적이다.

    무려 36년 전 1편의 플롯과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도 모자라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까지 우려먹은 이 영화의 돌풍은 단순히 80년대의 '향수'나 주연배우를 향한 팬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종의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아마도 1986년 그리고 36년이 지난 2022년 사이를 관통하는 어떠한 시대적 메시지가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는 가설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매버릭>은 철저히 몸으로 때우는 옛날 '문법'을 따른 영화다. 컴퓨터 그래픽(CG)을 최소화하길 원했던 탐 크루즈의 요구로 파일럿을 연기한 배우들은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아가며 고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에 직접 타야했다. 이로 인해 전투기를 타고 비행하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NG는 배우들의 구토에 의한 것이었다.

    CG가 들어간 장면은 영화 후반 주인공 매버릭과 그의 파트너 루스터(마일스 텔러)가 적진에서 몰래 훔친 F-14톰캣 정도였다. 톰캣은 1편에서 미 공군 주력기로 위용을 과시했지만 이제 고물이 돼 비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인데, 이마저도 배우들이 F-18을 타고 촬영한 뒤 CG로 덧씌우는 방식이었으니 엄밀히 말해 없는 장면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매버릭>은 이 외에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미사일이 폭발하는 몇몇 장면에서만 첨단기술의 힘을 빌렸다.

    앞서 탐 크루즈는 2018년 <미션 임파서블6>의 헬기 추격신, 절벽과 고층빌딩을 뛰어내리는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직접 해냈다. 전작 <로그 네이션(2015)>에서는 심지어 비행기 외부에 매달려 날았는데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바람에 의한 질식 외에도 자칫 새와 부딪히면 즉사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전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목숨을 거는 이유를 묻자 그는 배우가 위험한 순간을 실제로 겪어야만 나오는 표정과 행동을 스크린에 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비슷한 예로 동양권에서는 배우 성룡이 수많은 영화에서 목숨을 걸고 스턴트 신에 몸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성룡은 1984년 작 <스턴트 A>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시계탑 추락 신을 직접 찍다가 어깨와 목에 중상을 입고 이후 수년간 각종 통증과 편두통으로 고통 받았다. 그는 2013년 내한해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영화라 할지라도 배우가 그만한 진정성은 있어야 한다"고 짧게 답했다.

    본분과 주제를 모르고 지식인 흉내를 내는 연예인에서부터 위선을 일삼는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거짓이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서 <매버릭> 열풍은 편한 길이 있어도 돌아갈 줄 아는 우직한 진정성이 여전히 통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줬다.

    사실 <매버릭>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총 23개월간 개봉을 연기한 자체도 우직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처럼 대출을 끼고 진행하기 마련인 영화판에서 2년 가까이 개봉이 미뤄지는 동안 천문학적인 이자가 발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탐 크루즈도 인간적으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스트리밍으로 개봉할까 하는 유혹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 영화는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하려고 만들었고, 절대로 스트리밍 상영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옛 것을 지키는 특유의 우직함은 <매버릭>의 캐스팅이나 서사구조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바른 청년'들과 기성세대들의 갈등과 화해의 스토리는 분명 2022년 영화판의 문법은 아니다. 사실 인어공주나 본드 걸의 피부색도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시류에 이런 고전적 캐릭터와 서사가 통했다는 것은 실로 특기할 만한 사건이다.

    '탑건'의 젊은이들은 멋진 청년들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이들은 종종 기성세대와 관습에 도전하지만 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더 잘해보려다 생긴 헤프닝이며, 상관 앞에서 결코 마지막 선은 넘지 않는다. 일례로 <매버릭>의 루스터는 교관 매버릭과 갈등하는 동안에도 벌칙으로 정한 팔굽혀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이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함은 기본이다.

    놀기도 잘 논다. 젊은 매버릭의 연인 샬럿 블랙우드(켈리 맥길리스), 2편에서 중년이 돼 재회한 페니 벤자민(제니퍼 코넬리)과의 러브 스토리는 세월과 무관하게 멋진 연애의 '정석'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1, 2편에 모두 등장하는 비치발리볼 경기 역시 36년의 세월을 넘어 한 시대의 건강한 청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1986년 1편에서 매버릭의 동료 구스(앤서니 에드워즈)가,  2022년의 2편에서 그의 아들 루스터가 대를 이어 피아노 앞에서 제리 리 루이스의 명곡 'Great Balls Of Fire'(1957)를 열창하고, 동료들이 '떼창'으로 화답하는 장면은 오래됐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고 또 후세에 전하자는 탑건식(式) 보수주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젊은 파일럿들의 성공 뒤에는 기성세대의 관용과 인내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 만화 '아기공룡 둘리'(1983)의 고길동이 악역이 아님을 깨닫게 되듯 매버릭의 돌출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고 돕는 상관들은 대인의 풍모를 보여준다. 1997년 영화 '더 록'에서 카리스마의 프랜시스 험멜 장군을 연기했던 에드 해리스는 이번 <매버릭>에서 주인공의 무단 비행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를 탑건 교관으로 보내준다. 여담으로, 이 장면에서 초소 지붕이 크게 들썩이면서 급조한 세트장 티가 나고 말았지만 감독이 마음에 든다며 편집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매버릭>을 볼 때 알아두면 좋을 상식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영화 초반에 매버릭의 항공점퍼에 대만 국기가 들어간 것은 현재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One-China) 정책을 표방하며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발간한 최상위 안보문건인 국가안보전략(NSS)에 따르면 "중국을 미국이 당면한 최대의 지정학적 도전"이라 적고 있다.

    사실 매버릭의 외투에는 6.25 당시 미군 5만 여명이 희생됐고,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지난 70년을 혈맹으로 지내온 대한민국 국기가 있었어야 했다. 왜 태극기가 빠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 영화의 촬영 기간이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 사이였다는 점과, 당시 한미관계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매버릭> 영화상에서 불법 핵시설을 폭파한 나라가 어디인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처럼 자국에서 이 영화 상영을 금지한 중국,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이란 가운데 하나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5세대 전투기를 운용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지목하지만 국제정치에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관련 시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타격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된다.
     
    따라서 아직 핵을 보유하지 못한 '불량국가' 가운데 F-14 톰캣을 수입했던 유일한 나라였던 이란이 러시아로부터 5세대 전투기를 수입해 운용했다고 하면 그럭저럭 말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이란 북부 지역은 눈이 내린다고 하니 더욱 그럴듯하다. 문제는 통상 5세대 전투기는 F-22 랩터처럼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필수적인데 영화상에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과 E-2 조기경보기가 <그 나라> 5세대 전투기의 궤적을 훤히 들여다봤다는 점은 흥미롭다. 미국 입장에서 그 전투기들은 5세대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상에서 구형 F-18을 작전에 투입한 이유는 <그 나라> 계곡에 GPS 교란 장치가 있어 5세대기로 작전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GPS 교란을 해도 랩터 운용에는 별 지장이 없고, 단지 영화상에서 2인 1조로 전투기에 태우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미 항공모함이 작전개시 직후 토마호크 미사일로 적국 활주로를 폭격하면서 계곡 곳곳에 설치된 무인 대공미사일은 그냥 놔둔 점도 '옥의 티'로 지적된다.

    영화 탑건처럼 변치 않는 것의 소중함을 말하는 이는 드물고 통념을 깨기 위해 분주한 이들은 더 많아 보이는 요즘이다. 어떤 이들은 감수성, 공감능력, 꼰대 같은 단어를 동원해 애국심이나 바람직한 남녀 혹은 선후배의 표상 등 옛 것을 조롱한다. 가끔은 왜 저러지 싶은 급진적인 주장이나 취향까지 받아들이라며 위협 아닌 위협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과거부터 세상은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하나 둘씩 나오면서 변화해왔고, 앞으로 저들이 바라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매버릭이 말했듯 아직은 아니다(Not Today).

    탐 크루즈는 <매버릭>의 개봉 직후 홍보차 한국에 들러 "매버릭은 중년을 위한 영화다. 마음껏 우셔도 좋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탑건 1편에 열광했던 청년은 이제 인생의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을 앞두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중년이 됐다. 그 사이 정말 많은 것이 변하고 또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꼭 붙들고 있었어야 할 것들은 없었는지도 한번쯤 돌아보는 연말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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