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이창양 산업 잇달아 "원전 업계에 대규모 자금 지원" 약속했지만文정부 '탈원전' 5년 동안 원전 생태계 붕괴… 가시적 성과 당장 거두기 어려워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도 환경영향평가 마친 이후… 2025년에나 가능지난 5년간 달라진 세계 원전시장 흐름 맞춰, 새로운 발전전략 세우는게 빠를 것
  • ▲ 지난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남 창원 소재 원전기업 두산 에어빌리티를 찾아 업계 간담회를 가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원전 산업 복원을 외쳤지만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남 창원 소재 원전기업 두산 에어빌리티를 찾아 업계 간담회를 가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원전 산업 복원을 외쳤지만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부문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때 제정한 법률과 시행한 정책 때문에 눈에 띄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새 정부의 역점 공약인 '비정상의 정상화'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주요 분야별로 짚어본다. /편집자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가운데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산업자원부 등 소관 부처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원전 업계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원전 생태계 복원 서두르라”…윤 대통령의 거듭된 주문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원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고, 원전 계속운전 신청 기한도 설계수명 만료일로부터 2~5년 전에 신청하도록 한 것을 5~10년 전까지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세우고 적극적인 수주활동과 함께 원자로 모델 수출, 기자재 수출, 운영보수 서비스 수출 등으로 수출 다각화에도 주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6월 2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에 있는 원전 업체 두산 에너빌리티를 찾아 원전산업 협력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원전산업 협력업체 지원 대책과 원전 관련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7월 12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으며 “원전 생태계를 조속히 복원하고 일감을 조기 공급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규제혁파, 연구개발 지원, 첨단 인재 양성을 통해 (원전산업의) 성장지향전략을 확고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총 발전량 가운데)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해 튼튼한 에너지 안보를 구축하면서 원전 생태계의 조속한 복원과 원전 수출을 통해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매년 LNG 비용 2조원 증가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그리고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천연가스 발전량 확대를 대안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정부는 상당한 비용을 지출했다.

    지난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뒤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를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공개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가스공사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과거 계획했던 원자력 발전을 LNG 발전으로 대체하면서 전력 구입비가 2조 4038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5년 수립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차례대로 완공해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었던 신고리 3호기,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호기, 신한일 2호기, 신고리 5호기 등의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그 대신 LNG 발전을 한 결과였다.

    원전 산업 전문매체 ‘원자력뉴스’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당시에는 원전을 완공하면 발전용 LNG 수요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원전 건설이 중단된 뒤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은 LNG를 수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 발전용 LNG 수요는 1607만톤이었다. 원전이 늘어나면 2022년께 1112만톤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2021년 실제 발전용 LNG 수요량은 2362만톤으로 대폭 늘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원전 1기를 LNG로 대체하려면 1년에 147만톤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원전 생태계 복원” 대규모 자금투입…실제 변화는 2025년부터

    이뿐만 아니라 탈원전 정책 시행 5년 동안 원전 기술인력 양성 및 유지, 원전 건설 및 유지보수를 위한 협력업체 생존 등이 불투명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복원하려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탈원전 정책 폐지와 원전 관련 기업 자금지원, 인력 육성 정책을 내놓는 것 외에는 없다.

    실제로 산업부가 지난 7월 19일 내놓은 설명을 보면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원전산업 생태계 정상화와 조속한 복원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일감을 공급하고, 금융애로 해소에 나서는 한편,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300억원 규모의 추가적인 일감 공급 및 조기 계약 집행 ▲2025년까지 예비품, 안전투자 설비보강 등에 1조원 이상 투입 등을 원전 산업 복원 대책으로 내놓았다.

    산업부는 “일감 공급 규모가 큰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이미 시작했다”면서 “관련 절차를 최대한 효율화하여 2024년에는 실제 공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고 건설 착수 전이라도 관련 기기·물품 등의 사전제작 발주시점을 최대한 앞당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원전 협력업체의 금융애로 해소를 위해 500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50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을 신설해 대상기업 신청을 받고 있다고 산업부는 밝혔다. 이밖에도 올해 연구개발에 6700억원을 지원하고 SMR 시장에서 독자적인 기술력과 제작·시공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을 돕기 위해 2028년까지 4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내용은 사실 지난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창원 소재 두산에너빌리티를 찾았을 때 밝힌 내용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지난 10일 창원을 찾아 원전업계 간담회를 가졌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 22일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취임한 황주호 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취임사에서 거의 같은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원전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보니 원전 업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5월 18일 한국경제신문은 경남 창원 등에 있는 원전 관련업체의 목소리를 전하며 “정부에서 원전 산업 정책을 내놨지만 변화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환경영향평가와 사업승인 등 법적 절차를 밟은 뒤인 2025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원전 관련 업체들) 다 죽고 나서 원전 유턴(산업 복원)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불만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 변화에 맞춰 원전업계 발전 전략 새로 짜야”

    국내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한 전문가는 원전 업계를 복원하려면 과거 계획을 다시 끄집어내어 시행하는 것보다 지난 5년 동안 발전한 세계 시장에 맞춰서 전략을 다시 짜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SMR 업체 스마트파워의 김두일 대표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탈원전 정책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그 사이에도 세계 원전시장은 멈추지 않고 발전했다. 원전 생태계는 국제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사라진 적이 없다”면서 “적확하게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 원전 업계가 해야 할 일은 원전 생태계 복원뿐만 아니라 원전 산업 정상화와 세계 원전 시장에로의 복귀”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원전 업계의 주요 과제는 세계 원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발전 전략을 짜는 것인데 정부가 자금 지원에만 얽매이면 업계 주요 이해 관계자들끼리 돈 나눠먹기 밖에 안 된다”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김두일 대표는 세계 원전시장이 탈원전 정책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원전을 수출하면 그냥 지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원전 기술에다 유지보수용 부품 제조 기술까지 모두 제공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원전 생태계 복원’을 외치면서 수출 전략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김두일 대표는 “또한 원전 산업을 키우려면 전략부터 현재 논의하는 ‘택소노미(Taxonomy)’형 전략이 아니라 ‘폭소노미(Folksonomy)’형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소노미’란 사물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분류체계를 말한다. 도서관의 듀이십진분류법이나 생물학의 종 분류처럼 일종의 트리 구조로 사물을 분류하는 것이다. 반면 ‘폭소노미’는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류법으로 쉽게 풀이하면 ‘태그’ 같은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실제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현재 ‘K-택소노미’ 전략을 통해 세계 원전시장을 공략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하지만 이제 세계 원전시장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폭소노미’형 원전 발전 전략을 만들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건설과 수출은 ‘원전’이라는 주제로 뭉쳐 함께 이익을 얻기 위해 원자력 공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물리학, 건축학, 도시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므로 ‘폭소노미’형 전략이 맞으며 대기업이나 정부가 주도하고 협력업체는 종속돼 따라다니는 ‘택소노미’형 전략으로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