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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국군·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을 아십니까?

6·25 사흘 만인 1950년 6월28일… 인민군 제9땅크여단 서울대병원 점령 국군·환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살… 훗날 수습된 유골만 1000여 구인민군, 국군·경찰·공무원·교사 연쇄 학살… 보도연맹사건으로 이어져6.25 직후 인민군, 서울대 병원 환자명단과 진료기록 모조리 없애버려현행 중·고교 교과서 '서울대 병원 학살' 언급 없이 '보도연맹’만 언급"6.25 전쟁 최초의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사건"이라고 잘못 적혀있어고교연합여고국 '서울대 병원 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 진상규명 촉구

입력 2022-06-23 14:06 수정 2022-06-24 16:00

▲ 23일 오전 11시 서울대 병원 내 충혼탑에서 1950년 발생한 '서울대 병원 학살' 추념식이 열렸다. ⓒ정상윤 기자.

1950년 6월28일,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은 곧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인민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등 1000여 명을 학살했다.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의 충혼탑에서 이들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 23일 병원 내 충혼탑서 거행

서울대병원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이 23일 오전 11시부터 고교연합 여고국 주최로 병원 내 충혼탑 앞에서 열렸다. 고교연합여고국·세계어머니연합·간호사회·참바른세상·세계한인애국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이날 추념식을 통해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념식 취지와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안정선 고교연합 여고국장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충혼탑을 가리키며 “이 탑은 1963년 7월29일 한국일보가 ‘전국 반공애국유적 부활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국장은 “그동안 학살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주관으로 매년 6월5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열었다. 2014년부터는 행사를 통합해 매년 6월28일 전후로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면서 “무려 1000여 명이 숨진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이 이상하게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학살사건… 보도연맹사건 촉발한 6·25 첫 전쟁범죄

안 국장에 이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의 유족이 당시 상황에 관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안 국장의 이야기를 포함해 설명하자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은 6·25전쟁 과정에서 처음 발생한 학살이자 전쟁범죄였다.

인민군은 남침 사흘 뒤인 28일 서울에 진입했다. 인민군은 이날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입한 뒤 종로구에 있던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오전 8시 무렵이었다. 당시 병원 점령에 나선 것은 ‘서울 근위 류경수105땅크사단’의 전신인 제9땅크여단이었다.

인민군이 병원을 점령하려 하자 병원 경비를 맡았던 국군 1개 소대와 부상병 가운데 총을 들 수 있는 사람 80여 명이 병원 뒷산으로 가서 저항했다. 국군 소대는 남모 소위, 부상병은 민모 중사가 지휘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과부적으로 모두 사살당했다. 이후 인민군은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병을 무차별 학살했다.

▲ 서울대 병원 학살사건 유족 대표로 나선 최 롱 씨. ⓒ정상윤 기자.

당시 서울대병원에는 서부전선에서 부상당한 국군 장병 수백 명이 치료받고 있었다. 인민군은 처음에는 병실을 돌며 국군 부상자를 확인한 뒤 총으로 먼저 쏘고 총검으로 확인사살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는 국군 부상병을 병실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무차별 사격해 살해했다.

인민군은 이것마저 귀찮다고 여겼는지 나중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죽였다. 정신병동 입원 환자와 소아과 병동의 어린이, 그리고 보호자들까지 살해했다. 인민군은 이후 병원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환자 등을 끌어내 10여t의 석탄더미 속에 생매장했다.

증언 내용 가운데 충격적인 대목은 당시 인민군 앞잡이들이 전쟁 전 월북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민군 군의관이 돼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자, 반공 성향의 의사와 간호사, 직원 등을 분류해 주며 학살을 도왔다고 한다.

자신의 이모로부터 서울대병원학살사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최롱 씨는 “당시 (서울대병원) 의료진 40%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이었다고 한다”며 “이들은 인민군이 쳐들어온 뒤 완장을 차고 다른 의료진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이 수복된 뒤 미군이 서울대병원 학살 현장을 정리했는데 당시 수습한 유골만 1000여 구였다”고 소개한 최씨는 “이 가운데 국군은 적어도 400~500명은 되지 않았겠나 하는 것이 이모님의 추측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로당 의료진은 다른 의료진에게 “서울대병원 학살에 관해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협박도 했다. 인민군은 학살을 숨기려 했는지 6·25 발발 직후 병원 환자 명단과 진료기록을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한다.

보도연맹사건 촉발한 서울대병원 학살과 서울 시내 학살

당시 우리 정부는 서울대병원학살사건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에 진입한 인민군이 좌익세력의 도움으로 군인·경찰· 공무원·교사와 그 가족을 찾아내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에 정부는 당시 관리 중이던 ‘보도연맹’ 조직원들을 제거했다. 

인민군이 우리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지 않았다면 ‘보도연맹사건’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사)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서울대 병원 학살사건은 전쟁범죄라며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상윤 기자.

하지만 현재 국내 중·고교 교과서는 ‘보도연맹사건’이 6·25전쟁 당시 최초의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서술한다. 군인·경찰·교사의 가족들은 민간인으로 취급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인민군의 만행을 두고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명확한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우리가 서울대병원학살이라 부르는 인민군의 만행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전쟁범죄·반인류범죄”라는 것이다. 

포로와 부상병을 학대하거나 임의로 살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전쟁터에서는 환자와 병자를 무조건 보호하고 치료해 줘야 한다는 제네바협약을 위반했다는 것이 박 이사장의 지적이다.

박 이사장은 “흔히 6·25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우리가 전쟁을 잊어버린 것”이라며 “최근까지 6·25를 두고 전쟁이라는 표현뿐만 아니라 그 숫자까지 잊어버리라고 국가가 강요했다”고 개탄했다. 

박 이사장은 그러면서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록을 하지 않고 있고, 희미한 기억마저 지워가고 있다”면서 “가해자는 이미 밝혀져 있다.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을 추념하는 성명을 낭독하고 행사를 마쳤다. 다음은 추념 성명 전문(全文)이다.

▲ 서울대 병원 내에 있는 충혼탑. ⓒ정상윤 기자.

[성명]

1950년부터 3년1개월간 한국에서 벌어진 6·25 한국전쟁은 기네스북에 인류 전쟁사 중 가장 많은 국가가 참전한 세계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상자 400만 명, 세계 전쟁사 중 네 번째로 피해가 큰 참혹한 이 전쟁으로 공산주의 세계화가 저지되었고, 세계 자유 0민주주의 진영이 지켜진 구원의 섭리 사적 의미를 지닌 6·25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이 희생으로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한민족은 지금까지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물론 당사국에서조차 이 전쟁은 왜곡된 채 잊히고 있습니다.

단 한번도 그 실상과 의미가 세계에 알려지지 못했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그 당시 사람들 기억 속에만 남아 잊혀지는 전쟁이 6·25 한국전쟁입니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그날은 때 이른 태풍 엘시가 한반도 전역에 비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 비 오는 새벽 스탈린의 꼭두각시 김일성의 붉은 군대는 선전포고도 없이 세계 자유진영의 전선인 38도선을 넘어 포격과 함께 남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들들은 맨주먹 붉은 피로 그들의 포격과 총탄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우리 건아들은 조국과 인류의 평화를 지키려 그 흉탄을 맨몸으로 막으며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참혹한 상처를 입고 구사일생, 아홉 번의 사선을 넘어 간신히 이곳 병원으로 후송된 우리 아들들은 잘린 팔다리를 들고 쏟아지는 내장을 쓸어안고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어머니만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곳 일반 환자와 그 가족들은 자신들 피를 뽑아 부상병들에게 나누었고, 의료진들은 이미 마취약이 동이나 생살을 꿰매며 한 생명이라도 살리려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그때 이곳까지 쳐들어온 붉은 무리는 병상의 부상병과 민간 환자와 그 가족을 총칼로 마구 학살하고 소아병동의 어린이와 그 가족을 저기 석탄더미에 생매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료진을 납치하고 저항하면 살해하였습니다.

이는 전쟁 몇 달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맺은 '부상병·조난자·포로·일반주민 등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법규를 위반한 명백하고 중대한 전쟁범죄였습니다.

그 악마들은 이 같은 전쟁범죄를 6·25전쟁 내내 지속하였습니다.

그 전쟁범죄의 주범 김일성 직계 김정은은 오늘도 동족을 노예로, 그들의 피를 짜 인류를 위협하는 핵폭탄을 개발하며 미사일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 어머니들은 이곳의 숨겨진 전쟁범죄를 세계에 고발하며 전범의 책임을 계승한 김정은을 국제법정에 세우고 총과 칼을 녹여 쟁기와 호미를 만드는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세계 어머니들과 연합하여 노력하고자 합니다.

저 현충탑에 새겨진 비문을 읽으며 성명 낭독을 마칩니다.

“1950년 6월28일.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오던 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른 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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