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소개하며 '원전' 사진… 루마니아 자책골에 "고마워요" 조롱MBC노조 "파업사태 이후 상대방 모욕해도 잘못 아닌 문화 자리잡아"
  • ▲ MBC가 생중계한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장면. ⓒMBC 방송 화면 캡처
    ▲ MBC가 생중계한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장면. ⓒMBC 방송 화면 캡처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생중계한 MBC가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때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진을 띄우고, 아프가니스탄을 소개할 땐 양귀비 사진을 올리는 등 무례하고도 몰상식한 방송으로 비난의 중심에 섰다.

    특히 부적절한 중계로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은 지 단 하루 만에 또다시 참가국을 조롱하는 자막을 중계화면에 내보내면서 "MBC가 국가 위상을 떨어뜨리기로 작정한 것 같다"는 비아냥과 비난이 쇄도했다.

    아이티 선수단 입장하자 '폭동·내전' 사진 올려

    MBC는 지난 23일 개회식 때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하자 화면 좌측에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띄우고, 아이티 선수단이 입장하자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삽입했다.

    1986년 구소련 시절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피폭자 수만 최대 8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힌다. 치안 상황이 불안정한 아이티 공화국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7일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MBC는 또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할 때 마약의 재료로 널리 알려진 '양귀비'를 운반하는 사진을 국가 소개란에 올렸다. 아프가니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양귀비 재배지일 정도로 세계에서 양귀비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뿐만 아니라 MBC는 엘살바도르 선수단을 소개할 때 엘살바도르의 법정 통화인 '비트코인' 사진을 배치하고, 마셜제도를 소개할 땐 "1200여개의 섬들로 구성,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등 각 나라의 자랑거리가 아닌 치부를 나열해 빈축을 샀다.

    이밖에도 MBC는 노르웨이의 대표 사진으로 '연어'를 올리고, 이탈리아는 '피자', 일본은 '초밥', 루마니아는 영화 '드라큘라' 사진을 쓰는 등 진지함이 결여된 장난스러운 방송을 내보냈다.

    이튿날에도 MBC의 선을 넘는 중계는 이어졌다. 이날 남자 축구 B조 예선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 경기를 중계한 MBC는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은 상태로 전반전이 끝나자,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을 화면 상단에 띄웠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천금 같은 골이었이만 루마니아 입장에선 뼈아픈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MBC 중계화면에 '고마워요'라는 자막이 올라오자, "상대편을 조롱하는 비신사적 행위"라는 국내외 네티즌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네티즌 "대한민국 얼굴에 똥칠… '죄송하다'고 끝낼 일 아냐"

    아이디 ehwl****는 "이건 '죄송하다'고 끝낼 문제가 아닌 엄청난 외교실례고, 대한민국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라며 "역지사지로 외국 방송사에서 대한민국을 개 잡아먹는 야만인의 나라라고 표현하면 뭐라고 할 거냐?"고 지적했다.

    아이디 mohi****는 "탈원전 강조하려고 원전 사고 넣은 거지?"라고 물으며 "좌파들 생각하는 건 한치의 예상도 안 벗어난다"고 말했고, 아이디 sail****는 "평소에도 모든 걸 정치적인 이슈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저런 거 하나에도 국민을 어떻게든 알게 모르게 세뇌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이런 일이 터진 것. 정치병 말기라서 정상적으로 사고가 안됐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출신 방송인도 쓴소리를 날렸다. 일리야 벨랴코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자막 만들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한 담당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어? 미국은 911 테러 사진도 넣고?"라고 비아냥대며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라고 일침을 가했다.

    가수 JK김동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MBC의 안이한 방송 행태를 꾸짖었다.

    그는 "MBC는 과거 좋았던 추억들까지 훼손하지 말고 이제 그만 퇴장하시길. 이런 힘든 시국에 나라 위해 싸우는 태극 전사들과 열열히 응원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망신살 뻗치지 말고 이쯤에서 사라지시길"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요즘 공중파를 보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지만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방송국의 수준이 이 정도였다는 게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누굴 위한 방송인가"라고 개탄했다.

    국민의힘 "MBC, 해당 국가 '상처' 후벼파면서 축제 망쳐"

    정치권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신인규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24일 서면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 MBC가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하면서 매우 상식 밖의 외교적 결례를 범하여 해외 네티즌들에게서까지 비난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관련자를 문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개막식 방송을 준비한 MBC 제작진은 '지식의 빈곤'을 노출함은 물론 '개념의 상실'까지 굳이 드러내었어야 했을까"라며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됐을 일을, 해당 국가의 상처를 후벼파면서까지 축제의 장을 망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MBC는 제작진에 대한 엄중한 문책을 통해 '신상필벌 원칙'을 제대로 실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히 수립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미디어국 명의로 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MBC 방송의 공적책임 위반 여부 심의를 신청했다.

    MBC 사내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전해졌다. MBC노동조합은 24일 '올림픽 개막식 방송사고, 박성제 사장이 책임져라'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MBC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일부 국가에 모욕적인 내용을 방송했다"며 "해외에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니, 공영방송이 국민의 재산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이라고 개탄했다.

    MBC노조는 "일과성 실수라 하기에는 최근 MBC의 실수와 물의 야기가 너무 잦다"며 박성제 MBC 사장이 공개 행사에서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약간 맛 간 사람들'이라고 폄훼하고, 뉴스 앵커까지 맡았던 기자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주변 취재를 한다며 경찰을 사칭해 고발당한 사례들을 언급했다.

    이에 "MBC 내부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고 진단한 MBC노조는 "박성제 사장 등 현 경영진이 사고 예방은커녕 이미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제대로 문책하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이라며 "이번 올림픽 방송사고도 '우리 편'은 넘어가고 힘없는 실무자들만 처벌받을지 우려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진짜 원인 제공자를 문책해야 한다. 박성제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MBC, 각 나라에 대한 편견 굳히는 소개해 물의"


    MBC가 전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올림픽을 중계하면서 각 나라의 '아픈 역사'를 건드리는 몰상식한 방송을 내보내자, 각국 언론에서도 이를 성토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개회식 직후 영국의 가디언은 "MBC는 시리아의 문화와 유적을 소개하기보다 10년 동안 계속된 내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일부 국가들을 소개할 때 모욕적인 사진을 사용했는데, 이는 매우 이상하고 무의미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MBC가 '희망'과 '전통', 다양성 등을 주제로 삼은 올림픽 개회식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는 공격적인 사진을 올린 뒤 온라인상에서 비난세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CNN 인터넷판은 '이탈리아는 피자,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방송사 논란 불붙는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MBC가 공격적인 고정 관념을 갖고 여러 국가를 묘사해 큰 낭패를 봤다"며 "만약 한국을 소개할 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의 나라라고 했으면 좋았겠느냐"고 되물었다.

    뉴욕타임스는 "올림픽 개막식 때 펼쳐지는 국가별 퍼레이드를 중계할 때 각 방송사들은 해당 국가의 지정학적 의미와 운동 선수들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게 일반적인데, MBC는 각 나라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공고히 하는 자막과 사진을 사용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닛칸스포츠는 "참가국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중계였다"며 "심지어 올림픽과 관계 없는 정보(1인당 GDP,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등)도 올렸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을 비롯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수많은 나라의 언론이 MBC의 보도 행태를 맹비난하는 기사들을 연이틀 내보냈다.

    박성제 "검수 과정 부실… 변명의 여지 없다" 사과


    논란이 커지자 MBC는 SNS를 통해 한글과 영문으로 공식 사과 입장을 밝혔다.

    24일 MBC는 "23일 밤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방송하면서 국가 소개 영상과 자막에 일부 부적절한 사진과 표현을 사용했다.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문제의 영상과 자막은 개회식에 국가별로 입장하는 선수단을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올림픽 중계에서 발생한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영상 자료 선별과 자막 정리 및 검수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며 "나아가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과문을 낸 지 하루 만에 타국을 조롱하는 자막이 또 중계영상에 올라오면서 MBC에 대한 각국의 비난 여론은 더욱 뜨거워졌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은 26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취임 이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며 시청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박 사장은 "특정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으로는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대대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위해 내부 심의 규칙을 한층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시스템을 만들어 재발을 막도록 노력하겠다"며 "올림픽의 인류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 성평등의 가치를 우선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중계, 자회사로 이관… 인원도 절반으로 축소

    MBC가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방송 사고를 여러 차례 낸 것은 단순한 사고나 실수가 아닌 '인재'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MBC가 올해 초 구조조정 명목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22명 규모였던 MBC 스포츠국을 12명으로 대폭 줄인 데다가, 스포츠 프로그램의 중계 및 제작 기능을 MBC플러스로 이관하면서 데스킹 작업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MBC플러스는 MBC의 자회사인 유료 케이블방송으로, PD수첩 광우병 편을 연출한 조능희 전 기획조정본부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당시 MBC 스포츠국 구성원들은 경영진이 스포츠국을 기획 조직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자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줄줄이 이어지는 빅이벤트들을 준비조차 못 하는 경영진의 '찔러보기'식 접근은 MBC의 경쟁력 약화를 조장한다"고 우려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따라서 이 같은 조직 내부의 문제가 이번 대형 중계사고의 빌미가 됐을 것이라는 게 방송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박성제 사장은 "MBC 조직 개편으로 내부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사고는 조직 개편이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본사나 자회사 직원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뿌리 깊은 사내 차별 문화가 방송사고 근본 원인"

    이번 방송 사고의 원인을 MBC 사내의 '뿌리 깊은 차별 문화'에서 찾는 지적도 나왔다.

    MBC노조 관계자는 "MBC에서는 2017년 파업 이후 전근대적인 신분 차별이 자리 잡았다"며 "민노총 언론노조에서의 지위와 파업 참여 여부를 기준으로 이른바 귀족과 여러 신분들이 만들어졌고, 파업에 불참했던 기자들을 모욕해도 제재는커녕 그 반대의 대우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모욕해도 잘못이 아닌 문화가 자리잡았고, 이러한 MBC의 전근대적 의식이 한꺼번에 외부로 노출된 게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사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됐으니, 리허설을 본 수많은 사람들 누구도 차별과 모욕을 지적하지 않았다"며 "아직도 MBC 일각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공격을 받는다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개막식 중계로 대형 파문이 이는 와중에도 상대팀 자책골이 고맙다는 자막을 버젓이 방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MBC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참가국을 폄훼하는 중계를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당시 MBC는 개회식을 생중계하면서 카리브해의 케이맨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하다"고 소개했고, 키리바시는 '지구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는 나라', 짐바브웨는 '살인적 인플레이션', 차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등으로 묘사해 물의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