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침실서 추행… 음란문자·속옷사진, 무릎에 입도 맞춰"… 경찰, 고소 당일 靑에 보고
  • ▲ 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 등 참석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성원 기자
    ▲ 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 등 참석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성원 기자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지 닷새째인 13일, 피해여성 A씨가 그동안 지켜온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이날 여성단체를 통해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며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이날 오후 2시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는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년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미투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박 시장의 성추행은 지속됐다"고 밝혔다.

    "집무실·침실·텔레그램 통해... 4년간 여비서 성추행"

    이들에 따르면, 박 시장은 딸 다인(38) 씨보다 어린 나이로 추정되는 A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속옷만 입은 사진을 보내거나 음란문자 발송 등의 가해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성추행한 기간은 A씨가 비서 업무를 시작한 2017년부터 다른 부서로 이동한 지난 2월까지였다. 

    지난 5월12일부터 A씨를 상담했다고 밝힌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돼 서울시청 아닌 곳에서 근무 중이었다"면서 "어느 날 서울시청의 연락을 받고 그날 오후 시장실 면접을 봤다. 그리고 비서실 근무 통보를 받아 서울시장비서실에서 4년간 근무했다"며 A씨가 박 시장 비서로 일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박 시장의 범행사실 개요와 관련해 "(A씨가) 비서직 수행하는 4년 기간, 다른 부서 발령된 후에도 지속적으로(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라며 "(장소는) 시장 집무실, 집무실 내 침실 등이었다. 상세 방법은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이) 피해자에게 '셀카를 찍자'며 촬영할 때 피해자 무릎의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 하고, 무릎에 입술을 접촉하는 행위를 했다"며 "(박 시장이 A씨를)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적 접촉하며 텔레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를 전했고, 속옷만 입은 사진을 전하며 성적으로 괴롭혀왔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7월8일 오후 4시30분경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시장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구체적으로는 통신매체 이용, 업무상 위력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이고, 제출 증거는 텔레그램 포렌식 결과"라고 말했다.

    A씨 측 "고소 당일 모종의 경로로 박 시장에 수사 상황 전달돼"

    특히 이들이 박 시장을 고소했을 당시 수사 상황이 피고소인인 박 시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고소 당일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 상황이 전달됐고, 피고소인의 극단 선택으로 피해자는 2차 피해로 더한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서울시장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사건 때 '성인지감수성' 강조... "피해자 기준으로 해야" 판사 비판

    이 소장은 아울러 "박 시장이 안희정 전 지사와 오거돈 전 시장 (성추문) 사건에 대해 가장 가까이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멈추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박 시장이 안 전 지사가 성폭력 사건으로 재판받을 때도 A씨를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 시장은 2018년 8월17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안 전 지사가 성폭력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자 "이런 사건을 판단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이 굉장히 중요하고, 피해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판사가) 비판받을 대목이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인권회복의 첫 걸음"이라며 경찰·서울시·정부·국회·정당에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책임있는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다음은 박 시장을 고소한 전 여비서 A씨의 성명 전문이다. 

    <성명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 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