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신고했는데도 무덤덤… 일주일 만에 육지 밟고도 ‘태연’… 담배까지 피워
  • 북한 목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에 들어온 지 11일째다. 사건 직후부터 계속된 정부의 모호한 해명에, 청와대 관계자들의 ‘수상한’ 행태까지 확인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군 당국은 월남자 4명 중 2명을 왜 ‘이례적’으로 황급히 송환했나? 삼척항 입항 당시 목선의 상황은 귀순을 추정하게 하는데 선원들은 왜 “단순 표류”라고 말했을까? 검역작업이 지연된 원인은? 이들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1. ‘위장 귀순’ 확인도 않고 하루 만에 돌려보냈다?

    선원 4명 중 2명은 ‘본인 의사’로 하루 만에 판문점을 통한 송환이 결정됐다.

    합동조사팀의 초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애초 귀순 의도로 월남했다. 목선에 담겨 있던 물품만 봐도 출항 때부터 귀순 목적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목선에서는 조업 및 항해를 위한 통신기와 위성항법장치(GPS), 배터리와 안테나, 전선, 연료통, 손전등, 어망 등이 발견됐다. 생쌀, 양배추, 소금, 감자, 된장 등 식료품과 칫솔, 알약, 옷가지 등 생필품도 있었다. 귀순을 목적으로 한 ‘고의 탈북’ 가능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들은 "고기잡이를 하다 기관고장으로 5일간 표류, 엔진을 고쳐 삼척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잡은 고기를 넣어두는 '어창'은 비어 있었다. 이들은 오징어를 잡았다고 했지만 삼척지역 어민들은 의구심을 표했다. "오징어를 잡으면 먹물이 튀어 굉장히 지저분해지는데, 이들이 타고 온 배는 너무 깨끗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중 30대 남성과 50대 남성 2명이 돌연 “귀순 의사가 없다”며 송환을 요청했다. 정부는 빠르게 수락했다. 북한 주민이 귀순할 경우 군‧경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이 1차 조사를 하고, 국가정보원이 2차 조사를 하는 게 통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발견 하루 만에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송환을 결정했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16일 오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선원을 송환하겠다는) 대북통지 계획을 사전에 전달했고, 17일 오전에 (북측) 선원의 송환계획 통지문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17일 오후 “신병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송환된 2명은 왜 귀순 목적도 없이 월남했는지,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거쳤는지, 15일 발견된 이들을 왜 하루 뒤인 16일 서둘러 송환을 결정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2.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무덤덤… 일주일 만에 육지 밟고도 ‘태연’

    삼척항에서 포착된 이들의 태도가 너무도 태연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최초 신고자 김경현(51‧회사원) 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발견 당시 2명은 배 안에, 나머지 2명은 방파제 부두에 올라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1명은 부두에 앉아 있고, 1명은 서성거렸다”고 전했다.

    김씨는 특히 “(인민복을 입은) 젊은 사람은 옷을 깔끔하게 입고 있어 놀랐다. 옷에 주름까지 잡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욱 수상했던 것은 김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도 이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가 ‘어떻게 왔느냐’고 묻자 “고기 잡으러 나왔다가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 가장 가까이 떠밀러온 곳이 삼척항”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이 삼척항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 김씨에게 설명한 바는 “단순표류”였다. 이 같은 주장은 ‘귀순 목적’을 유추할 수 있던 정박 당시 목선의 모습과는 다소 불일치한다.     

    관련 논란이 확산되자 군 당국은 추가 수사에 나섰다. 국방부는 25일 “‘북한 소형 목선 상황'과 관련해 조사 대상 부대와 확인할 사항들이 추가로 식별돼 합동조사단의 조사기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의 이 같은 대처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3. 북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난리인데… 검역작업도 '미적미적'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국인 북한에서 온 이 목선에 대한 검역작업마저 뒤늦게 이뤄진 사실이 25일 <동아일보> 보도로 확인됐다. 

    신문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이개호 장관 명의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방지대책과 관련 공문’을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경두 국방부장관 등에게 보냈다. ‘삼척항 입항 북한 어선 대상 소독 등 검역 협조 요청’이었다.

    농식품부는 공문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인 북한의 어선이 삼척항으로 입항했으며 동 선박을 군부대 등에서 보관 중임이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며 “선박 및 입항자에 대한 소독을 실시하고 남은 음식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농림축산검역본부에 협조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북한 목선 귀순사건에 대한 군의 은폐‧축소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정부 부처 간 정보교류 미비로 검역작업이 6일이나 늦춰진 셈이다. 군은 당초 “목선을 폐기했다”고 발표했다가, 지난 19일 “동해 1함대에 목선이 보관돼 있다”고 번복했다. 

    농식품부는 뒤늦게 군의 목선 보관 사실을 인지하고 20일 검역작업에 착수했다. 15일 입항한 이후 6일이 지나서야 검역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농식품부는 21일 검역작업을 완료했다. 국방부는 지연 이유에 대해 “아쉬운 대처”라고만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