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과 협상학(23) 협상은 함께 '파이'를 키울 사람들 간에 가능한 투쟁의 결과
  • ▲ 미국 민간업체 '디지털 글로브'가 촬영한 北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궤도식 이동 발사대. ⓒ美38노스 화면캡쳐.
    ▲ 미국 민간업체 '디지털 글로브'가 촬영한 北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궤도식 이동 발사대. ⓒ美38노스 화면캡쳐.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 모두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북한은 협상 압력수단을 되살리기 위해 미사일 시험장 복구 움직임을 보였다. 미 의회와 정부가 이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도 "아직은 두고 봅시다"라면서도 "매우 매우 실망스럽다"며 그간 공개적으로 칭찬하던 모습에서 벗어날 명분을 쌓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산업자원부 통상본부장을 청와대 안보2차장으로 임명하며 남북경협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협상 상대들에게 밝혔다. 차라리 ‘우리는 핵이 없고, 수십 기에 달하는 북핵이 무서워 그런다’고 양해를 구하면 모를까, 이해하기 어려운 ‘무조건 직진’ 양상이다. 

    남북한과 미국 당국자들의 태도를 분석해 향후 대응 방안을 찾고, 흐름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협상학과 가장 가까운 심리학의 ‘확증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 구분이 명확해진다. ‘확증편향’이란 객관적 현실보다 자신이 보고 싶거나 믿고 싶은 대로 계속 움직이려는 태도다. 먼저, 트럼프는 오랜만에 여야 모두로부터 칭찬받으며 하노이협상을 결렬시켰다. 다수의 생각에 올라타는 객관성이다. 김정은을 높이 칭찬하다가도 주변에서 모두 아니라고 하면 ‘그렇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두었다. 강성발언은 핵심 측근인 존 볼튼 보좌관을 내세워 발표한다. 사업가 출신답게 확증편향성이 셋 중 가장 적다. 

    김정은은 120시간에 걸쳐 열차를 타고 베트남을 오가는 일정 속 사진에서처럼 180도 달라진 표정으로 부족한 경륜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인정했듯 그간 트럼프의 칭찬에 취했다 "뜻밖의 결렬"로 당황한 모습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러나 귀국 이후에는 반격 수단으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다시 끄집어냈다. 미사일 시험장 같은 공세적 협상수단을 내세우면서도 미국 대신 일본을 향한 노골적 비난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협상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리지는 않았다. 하노이로 향할 때는 확증편향을 보였으나 '뜻밖의 결렬'로 전열을 가다듬은 셈이다. 
  • ▲ ⓒ뉴시스
    ▲ ⓒ뉴시스
    문제는 우리 정부만 여전히 확증편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대북제재 완화를 거듭 주장한다. 핵을 동족에게는 쏘지 않을 것이라는 김정은의 말을 어떤 상황에서도 믿는다는 듯한 대응이다. 물론 협상에서는 상대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협상학에서의 정확한 표현은 ‘신뢰를 공유하라’이다. 결코 일방적 신뢰를 보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중재자론’ 역시 확증편향의 하나다. ‘중재’는 법적 강제력이 포함된 단어다. 그러나 미북이 우리 중재안을 무조건 따를 리는 없다. 이처럼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스스로 자꾸 중재자라고 칭한다면 이 또한 확증편향이다.

    실제로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는 우리의 일방적 경제협력 주장이 이상하게 비쳤다. 설득력은 객관성 있는 주장에서 나온다. 차라리,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정상국가인 우리도 자위권 차원에서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더 그럴 듯할 것이다. 그 허용 여부를 떠나, 우리는 현실적이고 절실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야당에도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하기 어렵다면 야당이라도 대신 나서서 한국과 일본의 연쇄 핵 보유 가능성을 경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친일'이라는 비방에 휩쓸릴까 두려워 일본을 '우호적 이해관계자'로 만드는 노력도 못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안보의 근간과 군사훈련이 송두리째 변하고 있다. 확증편향은 누군가 깨우쳐주기 전에는 스스로 깨우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누구도 남한의 주장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협상은 '함께 파이 키우기'라는 과학이다. 이 말은 곧 협상이란 함께 파이를 키울 역량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나 가능한 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 권신일 전 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