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시녀'로 전락한 대법원… "文 정권, 국가 차원에서 민주주의 전복시켜"
  •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전 국회의원).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전 국회의원).
    ‘문재인 검찰’의 성창호 판사 불구속 기소와 이에 화답한 김명수 대법원의 성창호 판사 재판 배정 배제 결정은 단순히 김경수 실형선고에 대한 보복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 나라 민주주의 권력분립의 근간인 3권분립의 토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김경수의 상고심 담당 고법 재판부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겁박 행위이고 그 1차적 효과는 금명간 김경수에 대한 보석 결정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이 같은 사태 전개를 보면서 지금부터 61년 전인 1958년 크리스마스 전야(前夜)인 12월 24일 저녁 태평로의 국회의사당(지금의 서울시의회) 2층의 기자석에서 22세 약관의 초년병 정치부기자로서,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새삼스럽게 뇌리(腦裏)에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당시 아래층의 본회의장에서는 자유당 정권이 동원한 200여 명의 ‘무술경관’들이 ‘국가보안법’ 개정 저지를 위해 농성 중이던 야당 의원들을 한 명씩 마치 쌀자루처럼 들어다가 본회의장 밖의 지하실 계단으로 집어 던지고 있었다.

    불과 5분 사이에 이 같은 방법으로 본회의장 정리가 완료되자 어딘가 모여서 대기했던 자유당 소속 의원들이 물밀 듯이 본회의장 의석으로 들어와서 착석하기 무섭게 의장석의 한희석(韓熙錫) 부의장이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상정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이의 없음으로 통과된 것을 선포합니다”라는 세 마디의 말로 안건을 처리하고 곧장 산회를 선포했다.

    성창호 판사 기소, '3권분립' 파괴…자유당 시절 '언론파동' 떠올라

    이때 자유당이 이 같은 폭력으로 국회를 통과시킨 ‘국가보안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국가보안법’의 “목적범(目的犯) 처벌” 조항을 “결과범(結果犯) 처벌” 조항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이듬해 3월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장면(張勉) 부통령(민주당)과 재대결하게 된 이기붕(李起鵬·자유당)의 승산(勝算)을 자신하지 못한 자유당이,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폭행이었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이날의 사태를 “언론파동”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다음날인 1958년12월 25일자 필자가 근무했던 <한국일보>의 제1 사설 제목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었다. 당시 필자는 그때부터 100년 전인 1858년 12월 25일자 영국의 일간지 <런던 타임스>(The Times of London)의 사설 제목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국과 이 나라의 언론 자유 사이에는 최소한 100년의 시차(時差)가 있구나”라는 탄식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문제의 ‘2.4 보안법 파동’은 자유당의 묘혈(墓穴)이 됐다. 자유당은 급기야 1960년의 3.15 정부통령선거 때 부통령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4할 사전 투표”라는 엉뚱한 짓까지 연출한 끝에 4.19 학생 의거를 불러 일으켰고(비록 5.16 ‘군사정변’이라는 ‘딸꾹질’을 거치면서 역설적으로 ‘산업화’를 통해 국력 비상(飛翔)의 호기(好機)를 포착하기는 했지만), 결국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주화’의 진통을 시작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이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의 전체 국정 영역에서 이른바 ‘촛불혁명’과 ‘적폐청산(積弊淸算)’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폭주(暴走)를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폭거(暴擧)가 급기야 이 나라 3권분립의 토대를 파괴해 사법부를 행정부의 시녀(侍女)로 전변(轉變)시키는 데 이르러 민주주의의 역린(逆鱗)까지 건드리는 데 미치고 있다.

    文정권 '폭거',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길 답습

    이 같은 상황은 '문재인의 대한민국'이 1932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다음해인 1933년 ‘수권법’(Enabling Act)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서 의회의 입법권을 행정부가 ‘합법적’으로 찬탈함으로써 ‘나치’(Nazi) 당의 일당독재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길로 매진(邁進)했던 히틀러(Adolf Hitler)의 길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는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1949년 서독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방어적 민주주의'(abwehrbereite Demokratie)라는 전에 없었던 정치적 개념이 등장하는 길을 열어 줬다. “민주주의는 내부에서 민주주의에 의해 무너지는 취약성을 지녔다”는 개념과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수호돼야 하지만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요소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朴槿惠) 정권 때의 대한민국은 바로 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개념에 근거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고 이석기를 투옥시켰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팽개치고 국가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선거 때 이른바 ‘매크로’라는 컴퓨터 기법을 악용해, 자행하는 SNS의 ‘댓글 공감순 조작’이라는 원천적 선거 부정행위는 물론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부 안팎의 모든 공직 인사에서 파렴치하고 광범위하게 만연하고 있는 지연(地緣)·학연(學緣)·이념(理念) 등에 기초한 ‘코드’ 인사(人事)에 더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堡壘)인 사법부의 독립성을 도살(屠殺)하는 공공연한 3권분립 파괴 행위가 이토록 노골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몽환(夢幻) 상태가 얼마나 더 지속돼야 하는가. 가깝게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법원이 김경수의 보석 신청을 덜컥 인용할 경우 우리 국민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믿겨지지 않는 공중파TV…나폴레옹 시대 '르 모니퇴르' 연상

    또 하나, 뜻있는 이들의 경각심을 더욱 자극하는 일은 이 나라 언론의 믿겨지지 않는 작태(作態)다. 오늘날 대한민국 언론의 실태(實態)가 역시 짧지 않는 시간 동안 언론에 몸을 담갔던 필자의 뇌리에 되살려 주는 상념(想念)이 있다. 1815년 2월 26일 구금돼 있던 엘바(Elba)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테(Napoleon Bonaparte)가 3월 20일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에 귀환하기까지 20여 일 동안 프랑스 신문들의 보도 내용의 변천사(變遷史)가 그것이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 신문들의 나폴레옹 관련 기사 제목은 “야수(野獸), 우리를 탈출하다”에서 시작해 “나폴레옹 보나파르테, 프랑스 본토 상륙” “전 황제 리옹(Lyon) 통과” “황제 파리(Paris) 입성”을 거쳐 “황제 나폴레옹, 베르사이유에 개선(凱旋)”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작금 대한민국 언론, 특히 공중파 TV 방송들의 광란적인 편파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앞으로 또 다른 정변(政變)을 통해 문재인 정권이 실권(失權)을 하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을 때 대한민국의 언론들이 어떠한 도생책(圖生策)을 찾아낼 것인지를 상상해 보는 것 자체가 역겹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