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투병 중 병세 악화돼...'호떡장사'하다 신상옥 감독 발탁, 507편 영화서 주연 활약
  •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60~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이 4일 새벽, 향년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측은 이날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신성일 명예 이사장이 오늘 새벽 2시 30분께 별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최근 병세가 호전돼 지난달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지난 3일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전남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유족 측이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빈소를 예약하면서 일부 매체가 '신성일 별세'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3일 늦은 밤 고인의 호흡이 돌아오면서 빈소 예약을 취소했던 유족 측은 4일 새벽 고인이 숨을 거두자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30호실)에 빈소를 마련하고 조문객을 받고 있다. 발인은 11월 6일. 장지는 생전 고인이 살던 경북 영천 '성일각'으로 확정됐다.
  • 신상옥 감독이 배우로 발탁… 예명도 지어줘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등 고학 생활을 하다 1957년 신상옥 감독을 만나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신성일'이라는 이름도 '뉴스타 넘버 원'이 되라는 의미로 신 감독이 붙여준 예명이다.

    1960년 23세 때 신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60~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맨발의 청춘', '청춘 극장',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의 숱한 히트작을 냈다. 2013년 개봉한 '야관문'까지 합치면 총 507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1964년 11월, 서울 워커힐에서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여배우 엄앵란과 웨딩 마치를 올렸다. 당시 결혼 초청장이 암거래 되고 4천여 하객이 몰려들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연애교실', '어느 사랑의 이야기', '그건 너' 등을 연출했고, 1983년에는 성일씨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고인은 90년대 후반 정치 쪽으로 눈을 돌려 예명인 '신성일'에 원래 성인 강을 붙여 '강신성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영화와 관련된 일에 앞장서기도 해 2002년에는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았다.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196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1968년) △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 남우주연상(1977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78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1987년) △이천춘사대상영화제 공로상(2005년)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2017년) △황금촬영상 공로상(2017년)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엄앵란과 장남 강석현씨, 장녀 강경아씨, 차녀 강수화씨가 있다. 강석현씨는 부모의 뒤를 이어 연기자 생활을 하다 현재는 드라마 제작사 지피워크샵 대표로 활동 중이다. 고인의 친형, 고(故) 강신우 회장의 아들이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