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회담은 판문점선언의 실천적 회담' 文 스스로 밝혀… '모법' 없는 대통령령 자인
  •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23일 청와대가 9월 평양남북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를 비준한 가운데, 청와대가 평양공동선언이 그 자체로 독자적 선언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양공동선언문에 판문점선언의 후속 선언 성격이 명시돼 있어 독자적 선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판문점선언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평양공동선언 비준은 모법(母法) 없는 대통령령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재가가 나서 평양남북공동선언문이 비준됐다"며 "남북군사합의서는 북측과 문본을 교환하면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9월 평양남북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를 심의·의결했다. 같은 날 곧바로 비준 절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결과로, 지난 4월에 남북이 합의했던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9월에 이룬 합의가 먼저 대통령을 통해 비준된 것이다.

    이와 관련, 앞서 다른 관계자는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성격도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선언이기 때문에 이 문서에 담겨 있는 내용 자체로 효력을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며 "후속 조처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독자적인 성격도 있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실장 "이미 법제처 판단도 받았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과거에도 원칙과 선언적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것은 없었다"며 "구체적 합의들이 남북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만들 때 국회의 (비준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지, 원칙과 방향, 합의, 선언적 합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임종석 실장은 "이미 법제처 판단도 받았다"며 "판문점선언도 국민적 합의와 안정성을 위해서 우리가 추진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평양공동선언, 과연 독자적 성격일까

    하지만 평양공동선언 이전의 청와대 분위기와 선언문의 전문을 살펴보면 '독자적인 성격의 선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공동선언 직전인 9월 17일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저는 이제 남북 간의 새로운 선언이나 합의를 더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4.27 판문점 선언을 비롯해서 그간의 남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있었던 남북 합의를 차근차근 실천하면서 남북관계를 내실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양남북정상회담이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의 실천을 위한 회담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기조에 따라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판문점선언에서 언급됐던 도로·철도 연결의 착공식 시기 등이 구체화된 9월 평양공동선언문을 내놓았다.

    이는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에도 적혀있는 부분이다. 전문에는 "양 정상은 판문점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남북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제반 문제들과 실천적 대책들을 허심탄회하고 심도있게 논의하였으며, 이번 평양정상회담이 중요한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고 서술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독자적 성격'이라고 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모법없는 대통령령' 된 평양선언

    또 이번에 비준된 평양선언이 "대통령령으로서 모법 없는 시행령에 불과하다"는 법조계의 지적도 나온다. '모법'이라 볼 수 있는 판문점선언이 국회비준동의안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변호사는 "남북관계발전법이 법령 등 공포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공포를 시키는 이상, (여기에 근거가 되는) 법률은 국회의 의결이 적시돼야 한다"며 "명령이라는 것은 결국 법률의 구체화 및 법률이 위임한 사항의 집행을 위해서 만드는 것인데, 평양선언의 경우 어떤 모법을 구체화하고 또 어떤 모법이 위임한 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현장에서 이같은 취지의 질문을 받았고, 이 관계자는 "이번에만 이런 게 아니고 2007년도에도 남북 총리 회담 합의서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황에서 후속 합의서인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서해협력추진위원회, 국방장관 합의서 등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비준한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당시)남북 총리합의서가 계류 중에 있다가 끝나버려서, 나머지 합의서나 위원회도 줄줄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다시 따져 묻자 "(판문점 선언의) 비준 동의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와대 역시 평양공동선언이 모법 없는 대통령령이 됐음을 인정한 셈이다.

    북한과는 '조약' 맺을 수 없어 

    문재인 정부의 국회 동의 없는 평양공동선언 비준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상호호혜'에 관련한 부분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상호원조'나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은 국회가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헌법 제60조 1항은 국회 비준 동의 대상에 대해 ⓵상호 원조 또는 안전 보장에 관한 조약 ⓶중요한 국제 조직에 관한 조약 ⓷우호통상·항해조약 ⓸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⓹강화 조약 ⓺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⓻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 등의 7가지를 규정하고, 이에 대해 “국회가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정했다.

    이 7가지 사항 중 판문점선언(후속 합의서 포함)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게 학계 일각의 의견이다. 

    이동복(81)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은 '조약'인데 판문점선언이 조약에 해당하는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며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요구는 '국헌문란'에 해당하는 내란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동복 대표는 판문점선언은 ⓵헌법에서 명시한 '조약'이 아니라는 점과 ⓶북한이 한반도에서 국가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2가지 이유 때문에 이를 국회에서 비준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북한과의 조약을 비준하는 행위 자체가 무효라는 의미다.

    남북관계법에 밝은 야권 인사는 "남북 사이의 합의는 국제법적으로는 신사협정 또는 공동성명"이라며 "재정적 부담 또는 입법사항에 관련된 부분이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그 남북합의를 조약과 유사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남북관계 발전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