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 남겼던 39일
  • ▲ 19대 대선 개표결과. ⓒ그래픽=네이버 제공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19대 대선 개표결과. ⓒ그래픽=네이버 제공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낙승을 거뒀다. 하지만 워낙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홍 후보로서는 보수 결집과 TK를 지켜내며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지난 9일 실시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41.1%의 표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홍 후보는 2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3위는 안철수 후보로 21.4%, 4위는 유승민 후보로 6.8%, 5위로 심상정 후보가 6.2%의 표를 얻었다. 홍 후보가 당초 자신있게 말했던 양강구도를 세우는 데에는 실패한 셈이다.

    정치권은 홍 후보에 '절반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온갖 불리한 여건속에서 고군분투해 보수를 결집한 것만 해도 어느정도 성과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그간 보수진영은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좌고우면 하기 바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안으로 거론됐지만, 그는 20여 일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다음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황 총리 역시 침묵하며 대선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계파색이 옅은 홍 후보의 '성완종 리스트' 2심 결과가 무죄로 나오자 보수진영의 시선은 홍 후보에 몰렸다. 3월 18일, 대구 서문시장은 홍 후보를 보기 위해 3만의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이후 홍 후보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전당대회를 통해 홍준표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직후인 4월 초,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홍 후보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쯤되자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한 때 홍 후보가 15%를 넘기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선거 보전금을 받지 못한다면 당이 아예 사라질 위기라는 말도 나왔다.

    홍 후보는 강단과 결기로 맞섰다. "보수우파가 결집만 하면 이길 수 있다"며 더욱 보수색을 선명히 했다. "우리 부끄러워 하지 맙시다. 숨지 맙시다"라며 구심점을 잃은 보수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여론조사에는 언론과 날을 세우며 흔들리지 않았고, 강성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영남에서의 세결집을 시도, 한달 만에 TK를 지켜냈다.

  • ▲ 홍준표 후보의 대구 반월당 유세.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홍준표 후보의 대구 반월당 유세.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비록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만, 홍 후보의 선거 전략에 확장성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강력한 스트롱맨 콘셉트가 눈길을 끌긴 했지만, 디테일한 어필이 부족해 젊은층이나 수도권 표심을 완전히 놓친데다, 기대했던 부산경남 끌어안기를 실패한 것이 패착으로 보인다.

    홍 후보는 경제 정책에서 '기업 기살리기'를 제시했지만 법인세 유지 이외에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당과 엇박자가 뼈아팠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등은 다른 후보와 차별점이 없었다. TV토론회에서 강성귀족노조와 전교조를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어떤 기업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담뱃세, 유류세 인하 정도가 파격적인 서민 정책으로 제시됐다.

    홍 후보는 부산에 큰 공을 들였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고향인 부산에서 이기면 기세를 다른 지방에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한달에만 다섯 차례를 찾을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결국 부산 민심은 홍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선거전략인 '동남풍'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영남이 하나로 결집하지 않자 수도권, 충청, 강원 등 다른 지역이 호응하지 않았고 판세가 크게 불리해지는 원인이 됐다.

    아울러 보수진영의 분열도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꼽힌다. 선거 프레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중도보수층, 샤이보수층에 반감을 줄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치러진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그에 대한 입장을 두고 대립했다. 정치적 탄핵과 사법적 탄핵을 분리해서 접근한 홍준표 후보와 강한 반감을 내비친 유승민 후보, "탄핵 무효"를 여전히 외친 조원진 후보로 갈라졌다. 애당초 박 전 대통령이라는 변수를 떼고 싸워도 힘겨운 판에 불리한 지형에서 사분오열된 채로 전투를 벌인 셈이다.

    특히 바른정당 의원 14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 입당을 발표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였던 지루한 계파갈등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어렵사리 영남에서 지지세를 결집하며 이룬 상승세가 꺾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사실상 바른정당 의원 일부가 유승민 의원의 오르지 않는 지지율을 보고 백기투항한 셈이지만, 보수대통합을 외친 말과 달리 이들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유한국당 내 갑론을박이 잇따랐다.

    반드시 대선에 이길수 있다는 상황이었다면 홍 후보 말대로 '지게 작대기'라도 선거에 써야 할 판이었으나, 복당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시점에서 대선후 당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고스란히 유권자에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절반의 승리를 발판삼아 보수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향후 과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같은 선거 결과에 대해 홍준표 후보는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도중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자유한국당 당사 상황실을 방문해 "개표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출구조사가 사실이라면 자유한국당을 복원하는데 만족한다"며 "감사하다"고 짧게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