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 비리와 직결된 과거와 달리, 玉石 구분해 기업인 사면하면 될 일
  • ▲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 예상치. ⓒ조선닷컴
    ▲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 예상치. ⓒ조선닷컴

     

    한국 경제가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내수 소비가 침체된 가운데 대외 경제 여건이 만만치 않다.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1998~2007년) 평균 4.9%에서 금융위기 이후(2008~2015년) 평균 3.1%로 하락했다. 특히 투자 부문 중 민간 부문의 경제성장 기여도 하락 폭이 정부 부문 하락 폭보다 컸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지만 기업이 위축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활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기순환 사이클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 대한 인식 재정립을 바탕으로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 좋고, 나라에 좋은 것이 기업에 좋다는 명제가 성립하는 기업가형 국가(Entrepreneurial State)의 정립이 필요하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지난달 26일 최고경영자 세미나 특별강연에서 한 말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 낼 돌파구를 기업에서 찾자는 설명이다.

    국민 전체가 힘을 합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도 모자랄 판에, 극도의 대립이 반복돼 암운(暗雲)이 가시질 않고 있다.

    여야(與野) 정치권은 대체로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데는 인식이 비슷하다.

    하지만 해법에 있어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려 서로를 비난하기에만 급급하다.

    8.15 특별사면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야당 측은 "경제인과 대기업 총수를 풀어주는 방식은 안 된다"며 반대 몰이에 급급하다. 반면 광복절 특사를 제안한 새누리당은 사회통합적 조치를 강조하고 있다.

     

  •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야당 의원들이 지난 5월 17일 오후 광주 금남로 일원에서 열린 제 36주년 5.18 기념식 전야제에서 팔뚝질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야당 의원들이 지난 5월 17일 오후 광주 금남로 일원에서 열린 제 36주년 5.18 기념식 전야제에서 팔뚝질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애타는 목소리가 재계에선 쏟아져 나온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기업인들에 대해 특별사면이 있을 경우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가 조기에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15 광복절 특사와 관련, "가능한 한 많은 기업인들이 사면을 받아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나가도 되겠다 하는 사람은 사면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면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사면을 받은 기업인들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야당 측이 기업인 특별사면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부 재벌들의 일그러진 '갑(甲)질' 문화 탓으로 풀이된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폭언과 폭행, 강매나 부당계약 등을 놓고 여론이 악화되자 기업 총수를 타깃으로 삼고 있는 야당이 기세등등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을 등진 일부 재벌들,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가 정신' 근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재벌들에게 그러한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일부에 대한 얘기다.

     

    #1. 최근 삼성가(家)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이혼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그가 과거 베풀었던 따뜻한 선행(善行)이 뒤늦게 조명받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해 2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일어났던 사고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택시기사 홍모(83)씨는 호텔 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아 직원 4명과 투숙객 등이 부상을 입었다. 홍씨는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운전 부주의로 결론이 나 4억원 이상의 변상금을 물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부진 사장은 사고에 대해 보고받은 후 "택시기사도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 같지 않은데, 이번 사고로 충격이 클 것이다. 집을 방문해 보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한인규 부사장에게 부탁했다. 이부진 사장은 이후 홍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사고로 발생한 피해를 회사가 해결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후 가족들을 둘러싼 다른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이부진 사장의 이러한 선행(善行)은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2.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인 최민정(24) 중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지난 3월 최민정 중위가 아덴만 파병에 이어 서해 최전방 북방한계선(NLL)을 방어하는 부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의 딸로서 장래가 보장된, 안정된 자리를 가져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최민정 중위는 험난한 군(軍) 생활을 자처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특권층이다. 그러나 최민정 중위는 자신의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해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종북(從北)-친북(親北) 세력 외에 최민정 중위에게 비난을 보내는 이들은 없었다. 국민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재벌들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무색케 하듯, 최민정 중위는 사회 전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의미를 되새겼다.


     

    사실 일부 기업 총수에 대한 재계의 특별사면 요구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 정부는 이를 거부하기도 애매하다. 또 다른 역차별(逆差別) 논란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反)재벌 정서에 떠밀려, 여러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법치주의(法治主義), 법의 형평성과 엄격한 기준을 거치면 될 일이다.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지킬 수 있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다.

     

  • ▲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 전례를 살펴보면, 야당도 반대 명분(名分)이 빈약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정권별 사면 횟수는 김영삼(9회), 김대중(8회), 노무현(8회), 이명박(7회) 순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까지 2차례 사면을 실시했다. 

    가장 많은 사면이 이뤄진 것은 김대중 정부 때다.

    김대중 정부는 8차례 특별사면을 단행해 7만여명에게 형 집행을 면제했다. 일반사면을 포함하면 규모는 1,0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거물급 비리 경제인들에게 대거 혜택을 줬다. 2002년 외환위기 파동 당시 주범으로 꼽혔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 회장을 포함해 회계부정에 연루됐던 대우그룹 임원들이 포함됐다.

    이용호-최규선 게이트 연루자인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최일홍 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 등 93명도 포함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도 1999년 8.15 특사 때 풀려났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가장 많은 기업인 특별사면(121명)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은 2003년 8월 광복절 기념으로 2만3,000여명의 특별사면과 12만5,000여명의 징계사면을 단행한데 이어 2005년 8월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1만2,000여명에게 특별사면 조치를 내렸다. 8번의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을 통틀어 422만명을 사면했다.

    특히 2005년 구속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사면했다. 임기 중반인 2006년 사면 대상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신계륜 전 의원 등이 포함됐다. 임기 말이었던 2008년에는 최도술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을 석방했다.
     
    특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 정부의 실세였던 야당 핵심 인사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임기 말 특별사면을 두고 큰 파문을 일으켰던 과거 정부다. 당시 정부의 중추였던 이들이 기업인 특별사면 반대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矛盾)이라는 지적이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과거 정부처럼 법의 형평성과 사회적 통념을 크게 벗어나 남용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범죄 유형이나 죄질, 남은 형기 등을 살펴 사면 대상자를 선정하는 옥석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통 큰 결단'은 대기업 총수와 박근혜 정부 양쪽 모두에서 필요하다. 기업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어우러진다는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면 기업인 특별사면은 우리 사회 전반에 있어 독(毒)이 아닌 약(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