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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개헌의 필요성에는 일응 공감하면서도, 개헌론(改憲論)이 여의도 안에서만 속도를 더하며 자가발전의 양상을 띄고 있는 것에는 회의감을 나타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에) 정치개혁특위를 설치하자"며 "정개특위에서 개헌 문제, 선거구 개편, 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개혁에 대한 전반적인 의제들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개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국회 내에 설치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87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 논의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여의도의 개헌론자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형태로 논의에 탄력을 더해가고 속도를 붙여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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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직후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정세균이 '개헌론' 불붙이자 여야 가리지 않고 기름 끼얹기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뒤이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개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내각제도 논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같은 당의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도 "개헌 필요성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제2야당에서도 호응이 뒤따랐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개헌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나서줬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운을 띄웠다.
이렇게 되자 집권여당에서도 장단을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현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내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이주영 의원은 "대선까지는 아직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개헌을 추진해서 신속히 국민투표까지 한다면 역사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이며 역시 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장관을 지낸 친박 정종섭 의원도 "올 연말까지 통치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이원집정부제로 가야 한다"고 시한과 방향까지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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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한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이며 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정종섭 의원은 연내 통치구조 개편을 통한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개헌론 앞에는 계파 갈등도 없이 '위 아 더 월드'
개헌론에는 친박~비박의 계파 구분도 없다. 비박(非朴)으로 분류되는 권성동 사무총장은 "87년 헌법 체제는 운명을 다했다"며 "의원내각제 등 통치구조 개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정치적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비박인 나경원 의원도 "더 늦기 전에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해야 한다"며 "일단 통치구조 개편을 내년 재보선이나 대선까지 하자"고 거들었다.
여기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국회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면서 개헌론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간 국회사무총장으로는 이른바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강기정 전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렸었는데, 정세균 의장이 예상을 뒤엎고 자계파 챙기기 대신 우윤근 전 원내대표를 국회사무총장으로 내정한 것은 오롯이 '개헌 드라이브'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다.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내정자는 이러한 정세균 의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너무 많이 노정됐기 때문에 제도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내년 초나 늦어도 4월 재보선 쯤에 국민투표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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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지만 개헌 논의는 별도 개헌특위가 아닌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정진석 "여의도만의 개헌 논의, 의미 없다" 제동 건 이유는
문제는 여의도의 개헌론이 너무 앞서간다는데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이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식에서였다. 불과 사흘 밖에 안 지났는데 여의도의 개헌론자들이 서로 북과 장구로 장단을 맞추면서 개헌의 내용과 국민투표 시기까지 조율하고 있는 모양새다.
본지 류근일 고문도 지난 14일 칼럼을 통해 "개헌이라는 논제 자체는 언제든 거론될 수 있는 문제"라며 "개헌은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들만의 잔치'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지금의 개헌 논의 형태는 전형적인 '여의도만의 말잔치의 향연'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진석 원내대표 또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개인적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개헌특위 설치'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이 때문으로 관측된다.
이날 비대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개헌특위를 별도로 구성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곧바로 개헌 논의에 들어갈만큼 국민적 관심과 합의가 이뤄져 있는지는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며 "범국민적 공론을 거치지 않은 여의도만의 개헌 논의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민들은 경제살리기 등 고단한 삶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우선 해결하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여러 현안의 우선 순위에 자리잡기 되면, 국민적인 추동력을 담보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게 내 경험칙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