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표심 공략 위한 공약 내다 '아차'하면 세종처럼 '대못' 꼴 날 수도
  • 2017년 12월 대선으로 가는 길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동남권 신공항과 새만금 등 권역별 숙원 사업이 곳곳에서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을 생각하면 권역별로 지역민들의 표심을 자극할 공약을 내걸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역대 대선에서 제시된 권역별 공약이 통치 기간 중의 부담 요소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경우도 흔했다.

    예를 들어 전북의 미래, 나아가서는 호남과 대한민국의 미래라고까지 칭해지는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전북 지역 공약으로부터 비롯됐다. 이후 30년 가까이 장대한 청사진만 가진 채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말그대로 전북의 '숙원 사업'이 됐다.

    '공무원들의 시간이 길바닥에서 전부 버려지고 있다'는 행정비능률 논란의 주범 세종특별자치시도 2002년 대선에서 충청권의 표심을 노린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선 공약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이를 철회시킬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역시 대권을 바라보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충청 표심 의식으로 무위에 그쳤다.

    경기가 호황이고 나라 곳간에 여유가 있던 시절에도 무분별한 대선 공약이 파국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가 어려운 2017년 대선을 앞두고선 권역별 국책사업 현안을 들어줄 여력은 적은데, 제한된 파이를 나눠갖고자 하는 소지역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 ▲ 동남권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로 유치할 것을 주장하는 부산 시민들의 시위 모습. ⓒ뉴시스 사진DB
    ▲ 동남권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로 유치할 것을 주장하는 부산 시민들의 시위 모습. ⓒ뉴시스 사진DB

    ◆동남권 신공항 폭탄… 탈락 권역에 '큰 보상'?

    '흔들리는 여권 텃밭' 영남에서는 동남권 신공항이 표심을 뒤흔들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부산광역시가 밀고 있는 가덕도와 대구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경상북도가 지지하는 밀양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부지 용역 결과 발표가 이달 말로 다가왔다.

    '유치 경쟁을 하지 말자'던 양측의 신사 협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져버리면서, 가덕도와 밀양 중 어느 쪽으로 선정돼도 후폭풍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탈락한 지역이 용역 결과에 불복하려는 수순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점에서, 불과 1년 반 뒤가 대선인데 용역 결과대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선 표심을 겨냥한 정무적 제안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부지 용역 결과 발표와 거의 동시에, 탈락한 권역에 상응하는 '큰 선물'을 줘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동남권 신공항이 가덕도로 결정되면, 상실감을 느낄 TK를 배려해 경북도 신청사가 들어선 예천의 공항을 재개항해야 한다"며 "그 외에도 경남 서부의 진주·거제로 연결되고 간접적으로 사천과 마창진(마산·창원·진해)의 접근성도 개선할 남부내륙철도도 조기 착공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 만성 정체를 겪고 있는 중부고속도로가 동서울 영업소 부근에서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고 있는 모습. 충북도는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건설보다 서울과 충북을 연결하는 중부고속도로의 확장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만성 정체를 겪고 있는 중부고속도로가 동서울 영업소 부근에서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고 있는 모습. 충북도는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건설보다 서울과 충북을 연결하는 중부고속도로의 확장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대망론' 충청권… 반기문 고향 음성에 철도 놓이나

    '대망론'에 휩싸여 있는 충청권 또한 '대통령을 배출하면 어떠한 점이 좋아질 것'이라는 '당근'을 지역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권역별 대선 공약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중부내륙철도의 조기 착공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의 분기가 오송역으로 결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오송역의 교통 수요는 거의 전적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 의존할 뿐 정작 충북의 교통 사정은 여전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충주를 거쳐 괴산으로 연결돼 충북을 관통하는 중부내륙철도는 북으로는 여주를 거쳐 판교~광명으로, 남으로는 문경을 거쳐 김천~진주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열악한 철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보여, 조기 착공 요구가 분출될 것으로 점쳐진다.

    아울러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착공 결정에 따라 추진 여부가 미궁에 빠진 중부고속도로 확장 요구도 지역 정치권과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함께 제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 ▲ 1987년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전북 군산 연설회 현장의 모습.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87년 대선 당시 전북 지역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공약했다. ⓒ뉴시스 사진DB
    ▲ 1987년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전북 군산 연설회 현장의 모습.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87년 대선 당시 전북 지역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공약했다. ⓒ뉴시스 사진DB

    ◆신 3당체제 전북… 누가 새만금 실타래 풀 적임자?

    친노·친문패권의 '1당 독재' 아래 있다가 이번 4·13 총선을 계기로 '독립 선언'을 해 야권의 '스윙 스테이트'로 격상된 호남을 겨냥한 권역 공약도 다수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전북은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최초 제안된 이래 드디어 30주년을 맞이하는 새만금 사업이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태우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는데 이후 강산이 세 번 바뀌고, 여섯 번째 대통령을 맞이할 때까지 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전북의 소외 의식이 극에 달했고, 지역 민심이 폭발 직전이다.

    특히 최근 새만금에 투자하기로 했던 기업들이 연이어 철회와 번복 의사를 밝혀 지역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하고 있다.

    지난 총선을 계기로 전북은 3당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 국민의당이 지역구 10석 중 7석을 석권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2석을 가져갔고, 새누리당도 정운천 의원을 배출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전북 지역 표심 공략을 진두지휘하게 될 이들 전북 의원들에게 '획기적 공약늘 내라'는 압력이 점증될 것으로 점쳐진다.

  • ▲ 전남 서부의 무안 남악신도시에 들어선 전남도청 신청사의 개청 당시 모습. 전남 동부에서는 행정기관 등이 서부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다는 불만 여론이 높다. ⓒ뉴시스 사진DB
    ▲ 전남 서부의 무안 남악신도시에 들어선 전남도청 신청사의 개청 당시 모습. 전남 동부에서는 행정기관 등이 서부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다는 불만 여론이 높다. ⓒ뉴시스 사진DB

    ◆전남… 동부와 서부 서로 "소외됐다" 목소리 높여

    전남은 서부와 동부 간에 서로 '발전이 뒤쳐졌다'는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대권 주자들도 전남 전체보다는 서부와 동부별로 각각 맞춤형 권역 공약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남도청이 무안 남악신도시로 이전하는 등 행정기관이 대거 전남 서부로 집중됨에 따른 전남 동부의 불만이 상당하다. 전남 동부에서는 도지사가 수십 년째 계속해서 서부에서 배출(박준영 전 지사는 전남 영암, 이낙연 지사는 전남 영광 출신)되는 것이 문제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을 정도다.

    반대로 전남 서부에서는 동부에 산업 시설이 집중돼 있어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서부가 얻어맞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동부의 광양에 제철소가 있고 여수에는 국가산단이 있는 반면 서부는 거의 소비도시라, 불경기 때 광양·여수가 감기에 걸리면 목포는 폐렴에 걸린다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 여수에서 해양엑스포, 순천에서 정원박람회가 성공적으로 열리고, 이 행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라선 KTX 개통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집중되면서 되레 서부에서 소외론을 주장할 정도다.

    전남 동서 지역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소외·홀대' 주장은 최근 동부 지역의 정치력이 급성장하면서 파열음이 한층 커질 조짐을 보인다. 전남 여수을의 4선 국민의당 주승용 의원이 전국적 정치인으로 성장한데 이어, 이웃 순천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을 3선 고지에 올려놓으면서 사상 최초로 호남 출신 집권여당 대표의 배출을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전남 서부를 대표하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전남도교육청에서 열린 교육정책설명회에서 "전남의 교육 현안이 지나치게 동부에만 치중돼 있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피력하기도 했다.

    여수 국제교육원·순천 잡월드 등 교육 현안이 모두 전남 동부에만 집중된 것에 대해 전남 서부를 대표해 견제구를 던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겨냥한 권역별 맞춤형 공약을 전남은 서부와 동부 따로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전남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보성~임성리간 남해안철도와, 서부경전선 선형 개량 사업 등에 대한 요구 등이 제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강원·제주… 올림픽 부지 활용과 신공항이 관건

    강원권의 경우 대선이 치러지는 시기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이기 때문에, 동계올림픽 부지·시설의 사후 활용 및 적자 방지 대책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훼방에 부딪쳐 있는 설악 오색케이블카의 국비 추가 확보 및 조기 완공 요구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제주권은 포화 상태에 다다른 제주공항의 수요를 분산시킬 성산읍 제2국제공항의 조기 착공 요구가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