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선거 전국 정당득표에서 더민주 제친 2위… 결정적 자산될 것"
  • 4·13 총선이 끝나자 제1야당 대표가 연일 제2야당 대표를 향해 맹공을 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최근에는 특히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당했던 통일국민당에 빗대며 몰아붙이고 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국민의당 38석은 총선 석 달 전에 창당해 31석을 얻었던 1992년 정주영당(통일국민당)과 비슷하다"면서도 "대선에서 정 씨가 떨어진 뒤 그 당은 소멸됐기 때문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같은날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도 "통일국민당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만든 당인데, 국민의당과 창당 시기 등도 비슷하다"며 "안철수 대표가 당선되면 그 당이 지속하겠지만, 낙선되면 당이 존재하겠나"라고 폄하했다.

    재미있는 것은 두 답변 모두 질문에서는 전혀 통일국민당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먼저 국민당과 정주영 회장을 언급한 셈이다. 피상적인 공통점을 들어 '국민의당=통일국민당' 식의 프레임 덧씌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사진 오른쪽)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를 92년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회장에 빗대 거센 비난에 나서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사진 오른쪽)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를 92년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회장에 빗대 거센 비난에 나서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김종인의 '안철수=정주영' 프레임, 근거는…

    정치권에 따르면,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과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사이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당대표가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 △그러한 기업인이 자신의 사재를 투입해 창당했다는 점 △총선을 앞두고 급히 창당됐음에도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는 점 등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정주영 회장은 1992년 12월에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그 해 1월에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2월에 통일국민당의 정식 창당이 이뤄졌는데 이는 3·24 총선까지는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무지막지한 물량의 사재(私財) 투입과 최영한(최불암)·강부자·정주일(이주일) 등 인지도 있는 유명 연예인, 김한길 등 문인·언론인 등 정치권 밖의 인물들을 대거 수혈·공천해 지역구에서 24명·전국구에서 7명의 당선자를 냈다. 31석으로 당당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 것이다.

    ◆기업인 출신 창당, 사재 투입… 첫 총선서 교섭단체 구성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창당도 올해 2월 2일에야 이뤄졌다. 4·13 총선까지는 두 달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지체되면서 정당보조금 확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왔었는데, 안철수 대표는 사재 투입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당사 임대료는 물론 당직자 급여까지 총선 전까지 당이 굴러가는 비용 중 많은 부분을 안철수 대표의 사재 투입에 의존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 결과 국민의당은 4·13 총선에서 지역구 25명·비례대표 13명의 당선자를 내며 38석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차원이 다른 문제,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러한 표면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내실을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훨씬 많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22일 이에 대해 "차원이 다른 문제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일축했다.

    △창당 이전까지의 정치 경력과 검증 과정 △창당 및 이후 정당 운영 과정에서 기업 의존도 △창당된 정당의 내부 역학관계 △전국적인 지지 기반과 정국에서의 비중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창당 시점만 따지면 국민의당은 확실히 총선 직전의 급조 정당이 맞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벌써 정치를 시작한지 올해 햇수로 6년째를 맞이한다.

    지난 2011년 9월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에 입문했으며, 이후 대선 예비후보와 제1야당 공동대표까지 이미 지냈다. 지난 6년 동안 번번이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에게 양보하고 '야권연대'라는 허울좋은 이름에 헌신했음에도 늘 뒤통수 맞고 패권세력에 이용당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강철수'로 거듭나 뚝심있게 당을 끌고 나갔다.

    정치적인 경력을 놓고 따지면, 통일국민당 전격 창당 이전까지 경제인이었을 뿐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행보가 없고, 따라서 평가받을 것도 없었던 정주영 회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안철수 대표의 그간 6년 간의 정치 행보에 대해 충분히 지켜보고 검증한 국민들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며 "국민들, 특히 호남을 중심으로 그간 안철수 대표에 대한 뒤통수 때리기와 배신으로 일관해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을 심판한 것이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 ▲ 통일국민당 정주영 회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통일국민당 정주영 회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김기춘도 혀 내두른 정주영의 '현대가족' 총동원

    둘 다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이지만 정당 운영 과정에서 기업의 힘을 얼마나 끌어왔느냐도 차이가 난다.

    정주영 회장은 일명 '왕회장'이라는 별명답게, 자신이 제왕적 사주로 있던 현대그룹의 힘을 총동원했다. 이른바 '현대가족'들이 당시 1인당 10명씩 통일국민당 당원배가운동을 펼쳐 대선 직전에는 국민당의 '종이당원'이 전 국민의 4분의 1을 넘는 120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러한 '현대가족' 총동원 실상은 1992년 12월 치러진 대선 직전에 전격 공개된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의 녹취록에 생생히 나타나 있다. 당시 초원복국집 비밀회동에 자리했던 참석자들은 대화가 녹음되는 줄 몰랐기 때문에, 이는 국민당의 운동 방식을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한 의도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겪고 보고 들었던 내용을 토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 회동을 주도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본고장인 거제도도 한 면(面)이 전부 현대(국민당)"라며 "(현대그룹에서) 거제도가 본적인 놈들을 전부 컴퓨터로 뽑아서 휴가를 보내면 (고향에 돌아가) 입당원서를 받고 (선거)운동을 할 수가 있다"고 털어놨다.

    나아가 "지금 민자당·민주당은 정주영 씨가 하는 기업식 선거운동에 손을 들었다"며 "보험회사 외판원·월부책장사에게 붙들렸다 하면 한 번 사지 않고는 못 견디듯이 기업판촉식으로 그렇게 파고드니까 정당들이 해볼 재주가 없을 정도"라고 곤혹감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통일국민당은 정당인데도 마치 현대그룹의 하나의 계열사 같았다"며 "안철수 대표가 기업인 출신이지만 안랩(AhnLab)을 전혀 자신의 정치에 동원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평했다.

    ◆'안철수 사당'이라지만 국민당에 비하면야…

    창당된 신당(新黨)의 구성과 내부 역학관계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국민의당도 한때 '안철수 사당(私黨)'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92년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국민당은 말그대로 정주영 회장의 사당이었으며, 오로지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만을 위한 정당이었다. 이 때문에 그해 12월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서 낙선하자 소멸되는 운명만이 남게 됐다.

    정주영 회장이 YS로부터 극심한 정치보복을 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더 이상 정주영 회장의 사재가 투입되지 않는 국민당은 추동력을 잃게 됐다. 심지어 정주영 회장이 빌려줬던 건물마저 회수해, 당사조차 없는 상황에서 해체 수순을 맞았다.

    반면 국민의당은 이번 4·13 총선을 계기로 '안철수계'가 세력을 늘렸지만 본래 △천정배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구 국민회의계 △박주선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하는 구 통합신당계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DY계 △주승용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구 비노(非盧)계 등 다양한 계파를 끌어안고 있어 사당이라 보기 어렵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지난 3월 당을 중대 위기로 몰고갔던 '통합·연대 논쟁' 같은 계파 갈등의 위험성이 수면 아래 잔존해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특정 개인의 사당이 아닌 이상 당내 계파의 존재는 당연하고 이들 사이의 논쟁은 되레 공당(公黨)이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평이다.

    ◆3원2차방정식 아닌, 진정한 3차 방정식

    정국에서의 위상과 지지 기반에 있어서의 차이도 확연하다.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은 당시 여러모로 민자·민주 거대 양당에 비해 세력에서의 열세가 뚜렷했다.

    단순히 세력에서 열세였을 뿐만 아니라 1992년 3·24 총선에서 집권 민자당이 149석으로 과반에 1석 모자라는 결과를 거뒀으나, 이같은 여소야대 상황은 이틀만에 무소속 이승무 의원(경북 점촌·문경)과 서석재 의원(부산 사하) 영입을 시작으로 곧 여당 과반의석 확보로 뒤바뀌어 원내에서의 위상 또한 대수롭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정국은 민자·민주·국민의 3당 체제라기보다는 민자당과 민주당이 맞서는 가운데 국민당이 있는 2+1당 체제에 가까웠다"며 "이러한 2강 1중 구도는 대선 때까지 유지됐다"고 회고했다.

    대선이 2강 1중 구도로 진행됐기 때문에 김영삼 후보를 내세운 집권 민자당에서는 '정주영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프로파간다에 열중했다. 정주영 후보는 당선권 후보가 아니라고 선전한 것이고, 실제로 그 선전이 먹혀드는 정국이었다는 말이다.

  • ▲ 안철수 대표가 지난 13일 국민의당이 전국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에서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상파3사 출구조사 화면을 지켜보다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안철수 대표가 지난 13일 국민의당이 전국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에서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상파3사 출구조사 화면을 지켜보다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92년 대선서 '정주영 찍으면 김대중 된다'

    초원복국집 사건의 녹취록을 보면, 당시 회동에 참석한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은 "(정주영 씨의 대선 출마로) 우선 제일 기분좋은 사람은 김대중 씨"라고 언급한다.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도 "(정주영 회장과) 김대중이의 합당(단일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렇게 해버렸으면 좋겠다"며 "합당(단일화)해서 김영삼~김대중 이렇게 붙으면 싸움도 안 되고 간단하게 거저 먹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김영환 부산직할시장이 표 계산에 돌입하는데 "(영남에) 호남향우회원이 70~80만 명 된다고 하는데, 13대 대선에서 DJ한테 9.2%가 갔다"며 "YS가 저쪽(호남)에서 받은 0.5%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영남에서 DJ) 10%는 무조건 고정표"라며 "박찬종이 5%, 나머지 85% 가지고 그 중에 정주영 씨가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 그에 따라서 나머지가 YS 표인데 (정주영 회장이) 15%를 가져간다면 끝난 것이고, 10% 미만으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참석자들이 '현대가족'의 저인망식 선거운동에 학을 뗐는데도, 표 계산 단계에서는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 당선 가능성은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정주영 후보에게 표를 얼마나 빼앗기면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지만을 우려하고 있다. 2강 1중 구도였던 것이다.

    반면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38석을 얻었는데, 단순 의석 수 이상의 영향력을 원내에서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권 새누리당이 122석, 제1야당 더민주가 123석으로 '황금분할'을 이뤘기 때문에 당장 국회의장단 선출 과정에서부터 국민의당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립(鼎立) 구도가 대선 때까지 계속되면,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의 정국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선까지도 실질적인 3강 구도로 이끌고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정당득표에서는 더민주 눌러

    지역 기반이 없던 통일국민당과는 달리, 호남을 굳건한 근거지로 하면서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국민의당은 호남의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싹쓸이'했다. 또, 비례대표 투표의 전국 정당득표율에서 26.7%를 획득해 더민주(25.9%)를 제치고 새누리당(33.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서울특별시에서는 국민의당이 28.8%를 득표해 새누리당(30.8%)과는 불과 2%p 차이였던 반면 친노·친문패권 사당 더민주(25.9%)를 3%p 가까운 격차로 눌렀다.

    특히 광주광역시에서는 53.3%의 압도적인 정당득표율로 더민주(28.6%)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전남(국민의당 47.7 더민주 30.2)과 전북(국민의당 42.8 더민주 32.3)에서도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다. 이는 지역 기반을 잃고 '공중에 붕 떠버린' 더민주 대신 새누리당에 맞서며 내년 12월 대선까지 국면을 실질적 3강 구도로 끌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분석이다.

    ◆정당 지지 2위 지속… "대선 가도에서 결정적 자산"

    이러한 추세가 선거 때 일시적으로 표출되는 표심에 그친 것도 아니다. 22일 한국갤럽이 발표하고 국민일보 등이 보도한 2016년 4월 3주차 정당 지지율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25%의 지지를 얻어 24%에 그친 더민주를 오차범위 내에서 제치고 새누리당(30%)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광주·전라에서는 국민의당이 46%의 정당 지지율을 획득해 26%에 그친 더민주를 압도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1992년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은 민정·민주 양당 체제에서 '하나의 혹'처럼 +1에 불과했던 반면, 이번 4·13 총선을 통해 성립된 정국은 새누리당·더민주·국민의당이 3당 정립, 3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며 "특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전국 정당득표에서 더민주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안철수 대표가 대선 가도를 달릴 때 결정적인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