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독소조항' 삭제해달라 또 조건 내걸어… 장기화 가능성도
  •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테러방지법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테러방지법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에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자"고 말해 귀추가 주목된다.

    더민주에서 뒤늦게 출구전략을 들고나온 것으로 풀이되지만, 테러방지법이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작 양당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26일 의원총회에서 "사실 선거구 획정이 결론이 돼서 국회에 왔을 때 우리는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어려운 결정사항들이 있어 오늘 의원님들의 고견을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제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테러방지법에 담겨있는 국정원의 독소 조항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통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국민의 안전한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잘 협상해서 선거구 획정과 함께 테러방지법을 부족하나마 처리해서 이번에 국민 지키기로 큰 역할을 했다는 성과를 가지고 지역에서 국민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실 산하 기구 대신 국가정보원이 하도록 양보하면서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새누리당이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했다.

    더민주가 요청한 정 의장 중재안의 핵심은 테러방지법 중 국정원이 통신제한조치(감청)를 할 수 있는 사유를 현행 통신비밀 보호법과 같도록 하는 것이다. 즉, '테러방지를 위해' 대신 '국가안전보장의 우려가 있는 경우 테러방지를 위해'로 고치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 ▲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는 지난 23일, 야당의 강경한 태도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이 원내대표는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직권으로 본회의에 안건으로 심의돼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방법들을 동원한다면, 그것은 지난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보다도 더 심대하고 중대한 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그런 절차 진행에 대해서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드린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26일 이종걸 원내대표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다. 현재 부의 된 법안 자체도 야당의 요구와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이 여러 차례 포함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절대 고칠 수 없다고 맞섰다.

    다급해진 더민주는 그간 쟁점법안 동시 처리를 요구하는 새누리당과의 원만한 협상을 위해 무쟁점법안을 처리하려 외교통일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그 결과 외통위에서는 북한 인권법이 처리되기도 했다.

    더민주의 고민점은 선거구 획정을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이미 새누리당과 합의했다는 데 있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동안 국회는 산회 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또한, 필리버스터는 일단 중단되면 곧바로 법안에 대한 표결절차가 진행된다. 이대로 필리버스터를 계속 진행한다면, 앞으로 선거구 획정 지연의 책임은 고스란히 야당에 넘어가는 것이다. 출구 전략이 필요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기세 좋게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만큼 쉽게 발을 빼기 어려워졌다.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면 곧바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안대로 표결절차에 들어간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이는 사실상 새누리당에 밀린 것으로 비치기 쉽다.

  •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종걸 원내대표에 대해 "사실상 항복 선언을 했다"면서 "선거 연기의 독박을 혼자 다 쓰게 되면 본인 정치생명이 날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처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종걸 원내대표에 대해 "사실상 항복 선언을 했다"면서 "선거 연기의 독박을 혼자 다 쓰게 되면 본인 정치생명이 날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26일 페이스북에서 이 점을 꼬집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며 "정의화 의장 중재안이나 원안이나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국정원은 상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분인데 왜 처지가 바뀌었을까요? 필리버스터로 선거 연기의 독박을 혼자 다 쓰게 되면 본인 정치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록 태도를 바꿨지만 필리버스터 중단의 명분으로 부칙 제2조 등 '독소조항 삭제'를 내건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민주가 태도를 바꿨다지만 정작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는 양당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견을 좁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필리버스터 정국이 길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필리버스터 5일째인 27일 오전 현재 17번째로 단상에 오른 정청래 더민주 의원이 연설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총선을 연기하지 않는 이상 현역에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양당 모두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구도가 계속되고 있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