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통합 지지, 중통합으로 지지하는 것" 입장 표명의 배경은?
  • ▲ 25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통합이 전격 발표된 뒤, 양당 관계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5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통합이 전격 발표된 뒤, 양당 관계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급작스럽게 발표된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국민의당과 천정배 창당준비위원장의 국민회의의 통합 선언에 여러 신당 추진 세력은 극명히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각자가 처해 있는 입지와 상황에 따라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격 통합 합의의 후폭풍이 범야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천정배 위원장의 국민회의 소속으로 총선을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주로 호남에 분포하고 있던 이들 후보들은 안철수 위원장의 국민의당 출현 이후로 떨어지는 당 지지도에 악전고투하고 있었는데, 통합으로 인해 활로가 열렸다며 경선~본선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 일정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전 전북도의회 부의장으로 국민회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한 배승철 전북 익산갑 예비후보는 통합이 전격 발표된 25일 오후 본지와 통화에서 "여러 야권 신당들이 나와서 안개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전격적으로 (통합이) 합의된 것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며 "패권주의 반대와 패거리 정치 일소라는 측면에서 정치가 새롭게 재편됐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오늘 오전에 익산시민 열댓 명이 모여 있었는데 '참 잘한 일' '새로운 정치의 기틀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반응이었다"며 "우리 익산시민들이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 현지 민심의 반응을 전했다.

    양당의 전격 통합 선언에 따라 국민회의 천정배 창당준비위원장은 당장 26일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리는 국민의당 전북도당 창당대회부터 일정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이미 전북에 구축돼 있는 국민회의 조직도 천정배 위원장을 따라 가담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승철 예비후보도 "내일(26일) 국민의당 전북도당 창당대회에 참석할 생각"이라며 "이제는 국민회의든 국민의당이든 한 지붕 속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국민회의 예비후보들이 반색하는 것과는 달리, 전날 민주당으로의 합당에 합의하며 선(先)통합에 시동을 걸었던 민주당과 신민당 등 호남 원외(院外) 신당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선통합을 배경으로 호남 지역에서의 세몰이를 위해 이날 광주광역시를 찾았던 민주당 김민석 새로운시작위원회 의장과 신민당 박준영 창당준비위원장은 광주 지역지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그간 논의해오던 파트너들 앞에 투명한 협상 과정 없이 이렇게 급히 전격적인 통합을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지 천정배 의원은 책임있게 답변하라"며 "통합은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민석 의장은 "원칙과 비전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당 간의) 통합을 늦추던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과의 통합 논의에서는 충분한 원칙과 비전을 확인했는지 모르겠다"며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을 수용한 이유 △광주물갈이 포기 여부 △더민주와의 비호남 연대 등을 조목조목 따져물었다.

    이처럼 호남 원외(院外) 신당들이 분노의 반응을 보인 것은, 원내(院內) 정당 간의 전격 통합으로 신당 통합 논의의 중심이 원내로 옮겨가면서 원외 정당이 시야 밖으로 사라질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른바 소(小)통합 후 친노(親盧) 제외 대(大)통합으로 이어지는 2단계 통합론이 호남 원외 정당의 존재감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책인데, 소통합 과정이 생략되고 국민의당에 개별 합류하는 방식으로 통합이 진행되면 자칫 통합에 합류하지 못했는데 개문발차(開門發車)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원외 정당들의 반응과는 달리 통합신당 박주선 창당준비위원장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통합의 길에 계속해서 매진하겠다는, 다소 차분한 반응을 내놓았다.

    통합신당 측은 전날 심야까지 국민회의 측 실무진과 함께 소통합 논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회의 천정배 위원장이 같은 시각, 국민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과 김한길 상임부위원장을 만나 통합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당초에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박주선 위원장은 정제된 표현으로 천정배 위원장 측의 '뒤통수'에 유감을 표명했다.

    박주선 위원장은 "23일 천정배 의원과 회동한지 이틀 만에 오늘 천정배 의원과 국민의당이 전격 통합의 합의를 발표했다"며 "사전 협의 없는 천정배 의원의 국민의당 전격 합류로 호남 정치 복원은 어려워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아가 "신뢰는 최고의 정치 자산이고 상호 신뢰 없는 리더십은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꼬집으면서도 "지난 석 달간 통합 논의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은 모두 내 가슴에 담고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통합의 길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주선 위원장이 민주당~신민당과 달리 유감 표명 속에서도 차분하게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것은, 현역 국회의원이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중심이 된 원내(院內) 정당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내달 2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당은 최소한 이 때까지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교섭단체 구성에는 원내 20석이 필요한데, 천정배 위원장의 국민회의와의 통합이 대단한 일처럼 떠들썩하게 포장됐지만, 의석이라는 측면에서는 1석이 추가된 것에 불과해 통합신당과 그 비중이 다르지도 않다.

    국민회의와 통합으로 원내교섭단체 달성이 이뤄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박주선 위원장이 이끄는 통합신당의 개별 합류가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민의당 김한길 상임부위원장도 박주선 위원장과 접촉해, 국민회의와 같은 방식의 개별 통합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호남 신당 추진 세력들끼리의 소(小) 통합 과정은 전면 생략된 채,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여타 원내 신당인 국민회의와 통합신당이 차례차례 합류하는 방향으로 정계의 밑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더민주를 탈당한 이후 현란하게 전개되는 야권발 정계 개편의 과정을 관망하고 있는 무소속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통합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박지원 전 대표는 "국민의당과 국민회의의 통합선언을 지지한다"며 "통합신당·정동영 등의 소통합을 지나 중통합으로 직행하는 것"이라고 현재 정국의 흐름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이처럼 박지원 전 대표가 통합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유일하다시피 하게 국민의당~국민회의 양자 간의 전격 통합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러한 통합의 흐름 자체가 결코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목포에 출마해 4선 고지를 노리는 박지원 전 대표에게는 출마의 명분이 필요하다. 지금 박지원 전 대표는 그 출마의 명분을 야권 통합에서 찾고 있다. DJ와 호남 세력을 대표하는 자신이 제3지대에 무소속으로 머물며 야권의 통합을 촉진하고, 나아가 총선 이후에는 더민주와 신당의 대통합까지 중재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수많은 용어들이 창조되는 정치권에서조차 생소한 단어인 '중(中)통합'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박주선 통합신당, 천정배 국민회의, 박준영 신민당, 김민석 민주당, 정동영 전 의장 등 5개 호남 세력의 통합을 '소통합', 이들 소통합 세력과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대통합'이라 부르며, 이를 2단계 통합론으로 칭해 왔다.

    그러나 박지원 전 대표는 '대통합'을 '중통합'으로 격하하고, 총선 이후 중통합 세력과 더민주가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대통합' 과정을 제시하며 3단계 통합론을 제시했다.

    이는 총선 이전 '대통합'으로 모든 게 완결돼버리면 본인의 출마 명분이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총선 이전까지는 불완전한 '중통합'이고 총선 이후에 비로소 '대통합'이 예정돼 있어야 총선에서 본인의 출마 명분을 '대통합 추진'으로부터 찾을 수 있게 된다.

    야권 관계자는 "박지원 전 대표는 모든 신당 추진 세력들이 국민의당으로 뭉쳐도 '아직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더민주와 대통합해야 한다'고 외칠 것"이라며 "그래야 유권자들에게 총선에서 대통합을 위해 박지원에게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