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절규하고 테러 위협 커지는데...국회 존재 이유, 묻지 않을 수 없어"
  •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 12월 14일, 오전 9시 55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를 5분여 앞두고 이병기 비서실장, 김성우 홍보수석, 현기환 정무수석,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이 회의장을 들락거리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조신 미래전략수석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일부 수석들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종종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회의장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감추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박 대통령이 또 다시 중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촉구할 모양이다.

    이윽고 초록색 재킷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했다. 10시 정각이었다. 일제히 기립한 수석들의 시선이 박 대통령에게 고정된다. 자리에 앉은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한정된 시간을 가장 풍부하게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 바늘로 꿰맬 것을 열 바늘 이상으로 꿰매는 경우가 있다"고도 했다.

    뼈가 담긴 서두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지난 9일, 19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종료됐지만 안타깝게도 국회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돼 버렸다.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 테러방지법을 비롯한 시급한 법안들이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테러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 핵심법안 처리를 호소하는 것도 벌써 2주째다.

    박근혜 대통령의 답답한 속마음이 날선 한마디 한마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국회가 경제활성화 법안과 국민의 생명, 안정과 직결된 법안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내부 문제에만 매몰되고 있는 것은 국민과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17년 만에 노사정 대타협 성과와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들의 절규에 응답한 노동개혁 5개 법안의 경우, 임시국회 개회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안 심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의 탈당(脫黨) 선언을 지켜본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 5법의 처리가 안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 어떻게 법안을 처리해야 할지가 막막하다. 이런 가운데 '분당 사태'라는 야당발 악재(惡材)가 추가되자 "협상 파트너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앞선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갈등 탓에 법안 처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 났다는 말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이어갔다. 이번엔 노동개혁 관련 법안이 대상이었다.

     

  •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파견법안은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중장년일자리법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되지만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인력난이 매우 심각한 용접, 금형, 주물 등 뿌리산업에 대해서 근로자 파견을 허용하면 최대 1만3,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전문기관의 연구 결과가 있다. 중장년들의 일자리 걱정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이런 법을 통과시킴으로서 한쪽은 구인난으로 고생하고 한쪽은 구직난으로 고생하는 우리 국민들과 기업에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지... 맨날 일자리 걱정만 하면 뭐하겠나?

    또 기간제 법안은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위한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이다. 전문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들의 71.7%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 연장하는 방안에 찬성했다고 한다. 가장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그 사정을 누구보다도 체감하고 있는 비정규직, 그 근로자들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5법이 통과돼서 노동개혁이 본격 추진이 된다면, 향후 5년동안 총 37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는데... 정치권은 일하고 싶다고 절규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호소와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어 경제활성화를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 제조업처럼 재정, 세제, 금융상의 지원근거를 부여하고 표준화, 전산화 등 서비스 산업의 인프라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왜 이렇게 누구를 위해서 오랜기간 동안 방치돼야 하는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 서비스 산업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의료분야가 왜 이러한 지원 대상, 혜택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주력사업들은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를 겪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 기업들에게 무섭게 추격을 당하면서 기업의 사활을 건 선제적 사업 재편을 통해 핵심역량 집중과 유망 신산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기업활력제고법은 이것을 신속하게 지원하고자 하는 법이다.

    우리 주력산업을 대표하는 13개 업종 단체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일각에서 대기업에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방지 장치까지 마련한 만큼 하루속히 통과시켜서 선제적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급과잉으로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업종을 사전에 구조조정 안하면 업종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대량실업으로밖에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대량실업이 발생한 후에 백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5법의 처리가 불투명한 탓에 개각(改閣)도 뒤로 미룬 터다.

    '야권 분열'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국회 운영의 불안정성을 높이면서 결과적으로 국정운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야당발 대혼돈 속에서 속앓이만 거듭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여야는 10일 시작된 임시국회 기간 중 15일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여당은 이어 22일, 29일에도 본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터져나온 내홍 탓인지 연일 반대와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 협상조차 원활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 여야 지도부 합의대로 중점 법안의 연내 처리를 강조하는데, 국회는 하염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다.

    누굴 위한 국회인가? "단 하루만이라도 정치적인 논란을 내려놓고 국회가 중요 법안을 처리해주길 바란다"는 박 대통령의 속마음은 과한 욕심이었을까?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된지 오래다. 공천권을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갈등. 온통 선거에만 신경 쓰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온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답 없는 국회는 현재 시계(視界)가 제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