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대 필즈 연구원 "이승만, 미국의 우호적 대한정책 수립에 결정적 기여"
  • ▲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31년 동안 작성한 영문 일기 발간을 기념한 국제학술회의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공동 주최로, 23~24일 이틀 동안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31년 동안 작성한 영문 일기 발간을 기념한 국제학술회의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공동 주최로, 23~24일 이틀 동안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1910년 강대국들은 일본의 세계 정복 계획을 알지 못했다. 단지 한국을 희생하면 일본이 이에 만족하고 만주에서 개방정책을 펼칠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 세계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한국은 일본의 침략 야욕의 첫 번째 단계이고 만주가 다음 단계이며, 이것이 결코 끝이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극동의 평화를 실현하고 국제연맹을 존속시키기 위해 강대국들은 서로 함께 모여 일본을 그들이 원래 속한 섬나라로 돌려보낼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나의 의견을 피력했다.

       - 이승만 박사 영문 일기, 1933년 1월13일 기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권대사 자격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했을 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30년 동안 자필로 써 내려간 영문 일기 발간을 기념한 국제학술회의가 23일과 24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김왕식)과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원장 김명섭)이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학술회의에는, 국내는 물론 미국, 대만 등에서도 학자들이 참석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는 이승만 박사 영문 일기는 지금까지 학계에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로, 이승만 박사가 펼친 외교독립운동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독립에 대한 당시 국제사회의 시각 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 ▲ 이승만 박사의 영문 일기 원본. ⓒ 자유경제원 제공
    ▲ 이승만 박사의 영문 일기 원본. ⓒ 자유경제원 제공
     
  • ▲ 이승만 박사가 쓴 영문 일기(사진 왼쪽). 1933년 제네바 국제평화회의 참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사진 오른쪽). ⓒ 조선닷컴(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제공)
    ▲ 이승만 박사가 쓴 영문 일기(사진 왼쪽). 1933년 제네바 국제평화회의 참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사진 오른쪽). ⓒ 조선닷컴(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제공)

    이승만 박사의 영문 일기는 1904년 11월 4일부터 1934년 12월 28일까지 만 30년과 해방 직전인 1944년 1월 5일부터 같은해 12월 31일까지 만 1년, 합해서 31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들 일기는 서로 다른 크기의 수첩, 노트, 일기장, 그리고 타이핑한 B4 사이즈의 종이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묶은 편책 등으로 구성돼 있고,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원래 이 자료는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가 보관하던 것으로, 그는 이들 자료를 1997년 연세대에 기증했다. 자료를 기증받은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은 그 내용을 번역-분석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이번에 발간된 '이승만 일기'는 원문영인본, 영문활자본, 국문번역본을 한 세트로 묶어 출간됐으며,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편집과 번역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인쇄와 발행을 각각 맡았다.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이승만 일기'.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이승만 일기'.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승만 일기' 발간을 기념해 열린 학술회의 첫날, 데이비드 필즈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원(미국 외교정책사 전공)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활동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춘 논문을 발표했다.

    필즈 연구원은 '이승만의 활동과 한반도의 분단'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당시 미국 전쟁성은 군사 전략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대한 가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와 달리 미 국무성은 한반도 전체를 확보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필즈 연구원은 미군이 한반도의 남쪽에 진주한 것은 미 국무성과 전쟁성의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필즈 연구원은 "한반도에 대한 미 국무성의 관심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 국무성과 의회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필즈 연구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활동이 미 국무부의 태도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도 분석했다.

  • ▲ 이승만(왼쪽)과 서재필.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 도서출판 기파랑 제공
    ▲ 이승만(왼쪽)과 서재필.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 도서출판 기파랑 제공

    필즈 연구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독립운동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활발한 대중 강연과 1882년 체결된 한미수호조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국 정부의 부채의식 등 두 가지를 꼽았다.

    당시 조약은 "조선이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은 즉각 이에 개입해서 조선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 의회와 국무성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미국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묵인하면서 한미수호조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이런 논리는 당시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필즈 연구원은 미국이 친한(親韓)적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활동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필즈 연구원의 이런 평가는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간에 걸친 외교독립운동의 가치를, 해외 학자가 객관적 시각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 ▲ 1941년 이승만 대통령이 펴낸 'Japan Inside Out'. ⓒ 뉴데일리DB
    ▲ 1941년 이승만 대통령이 펴낸 'Japan Inside Out'. ⓒ 뉴데일리DB

    이승만 대통령의 활발한 강연활동과 그가 교류한 인사들의 면면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승만 일기'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3차례나 강연을 했으며, 1941년 일본의 미국 침략을 예언한 'Japan Inside Out'을 통해, 미국 주류사회에서 명사로 급부상했다.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이승만 박사는, 1940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웬델 윌키, 아인슈타인 박사 등을 만나기도 했다.

    이승만 박사는 자신이 가진 인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미국 의회에서 친한파 의원을 확보했으며, 이들을 통해 미 국무부에 압력을 넣었다.

    필즈 연구원은 "이승만의 활동은 한반도의 분단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높여 우호적인 대한(對韓)정책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 ▲ 이승만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태극기 우표. ⓒ 뉴데일리DB
    ▲ 이승만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태극기 우표. ⓒ 뉴데일리DB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일기에는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회의 참석 당시 상황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신분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기록이 그대로 담겨 있다”며, “출발지와 도착지, 경유지, 출ㆍ도착 시간, 둘러본 장소, 회의장과 단체명, 만나고 찾아간 사람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영섭 교수는 “이승만 일기는 1933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에서의 외교활동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며,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 일기'가 지니는 사료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승만 일기' 발간 기념으로 열린 국제학술회의는 2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이틀 동안 총 5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개막식에는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김명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이인수 전 명지대 법정대학장(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손세일 전 국회의원,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등이 참석했다.

    23일에는 ‘이승만 일기 속 이승만의 해외활동’(1부), ‘이승만 일기를 통해 본 한국독립운동’(2부)을 주제로, 국내외 연구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됐다.

    정구종 동서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발제는 오영섭 연세대 교수, 데이비드 필즈 위스콘신대 연구원이 각각 맡았으며, 홍선표 독립기념관 학술팀장과 김용호 인하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김영래 동덕여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2부에서는,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윤종문 국가보훈처 연구원이 각각 발제 논문을 발표했다. 주익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영명 한림대 교수,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연구사 등은 토론자로 참여했다.

  • ▲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행사에 앞서, 김왕식 관장은 축사를 통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선 이승만 대통령의 일기를 출간한 것은 현대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문일기를 번역한 류석춘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 오영섭 연구교수, 데이비드 필즈 연구원 등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 김명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김명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김명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은, 대만 장개석 총통의 일기가 자국이 아닌, 미국 스탠포드대학에 소장돼 있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일기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일기를 통해 그의 공ㆍ과를 공정하게 볼 수 있는 국민이 한명이라도 늘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4.19사태로 하야한 뒤, 당시 이 대통령의 거쳐였던 이화장의 모든 물건을 정부로부터 압류당했다”며, “다행히 한 경비원이 몰래 이승만 대통령의 일기를 숨겨놨다가 건네줬다”고 회고했다.

    이인수 박사는 현재 대한민국이 ‘반(反) 이승만 시대’에 놓여있다고 토로하면서, “주위로부터 일기를 스탠포드대학에 보내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1994년 유영익 박사 등을 만나 상의한 끝에 이화장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학술회의 기조강연을 맡은 손세일 전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을‘기록의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손세일 전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 초고만 4가지가 있고, 그 내용을 보면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를 다녀온 일을 비롯해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 이승만 일기 발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강연을 맡은 손세일 전 의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승만 일기 발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강연을 맡은 손세일 전 의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손세일 전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은 1904년 출국하는 날부터 항해일지라는 뜻의 로그북(Log Book)을 작성했다”며, “이 표현에는 그가 가진 신념과 선구자적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손세일 전 의원은 ‘나는 환경보다 신념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이라고 말한 이승만 대통령의 어록을 소개하면서, ▲애국심 ▲항일정신 ▲반공주의 등이 이승만 박사가 가진 신념의 바탕이 됐다고 분석했다.

    학술회의를 공동주최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다음달부터 시중 서점에서 '이승만 일기'를 정식 판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