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 중앙위 통과, 권리당원·일반국민 여론조사로 호남 민심 안 돌아와그냥 물러날 수 없다면, 광주·전남에서 전당대회 소집해 재신임 물어야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오후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의 중앙위 통과 및 국민·당원에게 묻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받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오후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의 중앙위 통과 및 국민·당원에게 묻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받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택시비는 안 받겠습니다."

    9일 전북 전주 남부시장에 도착한 택시 기사 김모 씨는 돌연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전북도청에서부터 오면서 이른바 '호남 민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였다.

    김 씨는 이날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회동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사실상 촉구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대표에 대해 여기 사람들이 실망한 게 많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안철수 대표는 다시 나오면 여기 사람들이 많이 찍어줄텐데, 문재인 대표는 이제 많이 갔다"며 "안철수 대표까지 물러나라고 할 정도면, 문재인 대표가 좀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동영 전 장관이 내년 총선에 전주 덕진에서 출마하면 당선될 것이라며 "전북 사람들이 그렇게 야박하지 않고, 딱 잘라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을 풀어나가던 김 씨는, 목적지인 남부시장에 도착하자 '딱 잘라서 하지 않던 이야기'를 마침내 꺼내놨다. 택시비를 받지 않을테니, 서울에 가서 '좋은 일' 좀 많이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좋은 일'이란 문재인 대표의 퇴진 촉구였다.

    문제는 전북 민심이 전남에 비해 훨씬 점잖았다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호남 민심'이, 혹시 새정치연합 내의 비노·호남 의원들이 문재인 체제를 흔들기 위해 '민심 팔이'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시작했던 호남 출장.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목포시·무안군, 그리고 전라북도 전주시와 익산시를 돌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민심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문재인 대표 사퇴'였다.

    무안군 남악신도시에 자리잡은 전남도의회 앞에서 목포역으로 가는 택시에 승차했을 때 택시 기사 서모 씨의 목소리가 가장 강경했다. 서 씨는 뜸도 들이지 않고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야지, 당장 물러나야지"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와 경선할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문재인 대표로는 이번에도 안 되고, 다음에도 안 되고, 영원히 안 된다고 그랬다"며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도 안 되고, 대선도 안 되기 때문에 물러나는 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이날 오전 안철수 전 대표와 천정배 의원의 회동과 관련해서는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워낙에 훌륭하시고 또 그 때 여러 가지로 김종필 씨라든지 이인제 씨라든지 여러 가지로 이로운 게 있어서 어렵사리 (대통령이) 됐지만, 전라도 사람으로는 아무리 똑똑해도 (대선에서) 어려운 게 있기 때문에, 천정배 의원이 힘을 몰아주고 안철수 대표가 나섰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평범한 호남 시민인 서 씨의 대선 구도 속에서 문재인 대표는 아예 존재 자체가 배제된 것도 모자라, 오히려 걸림돌로 기능하는 듯 했다.

  • ▲ 9일 전라북도 전주 및 익산에서 만난 전북도민들은 이 지역 출신 정동영 전 장관, 정세균 전 대표, 장영달 전 의원 및 정치권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밝히면서도, 문재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사진은 전북 전주의 전북도청 청사.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9일 전라북도 전주 및 익산에서 만난 전북도민들은 이 지역 출신 정동영 전 장관, 정세균 전 대표, 장영달 전 의원 및 정치권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밝히면서도, 문재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사진은 전북 전주의 전북도청 청사.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이러한 민심은 안철수 전 대표와 천정배 의원의 회동, 그리고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발표 기자회견 등으로 이어지는 급박한 정국 속에서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전날인 8일 저녁 목포역에서 목포 평화광장으로 향할 때 만난 택시 기사 정모 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정 씨는 "여기(목포)가 박지원 대표라고 마음에 썩 들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박지원 대표도 지난 번 지방선거에서 인기 없는 이상열 씨를 후원하면서 예전의 총기를 잃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때 목포 사람들은 박지원 대표가 되기를 참말로 간절히 바랐다"며 "그 때부터 문재인 대표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선거도 다 지고 점점 더 마음에 안 드니까…"라고 지역 민심이 문재인 대표로부터 완전히 떠났음을 시사했다.

    그는 "손님들 중에서는 라디오 듣다보면 당을 깨야 한다, 이번 기회에 아예 갈라서야 한다는 분들도 많다"면서도 "그러면 전라도당이 돼버리고 총선도 지고 대선도 지는 건데, 문재인 대표만 물러나면 안 갈라서고 같이 갈 수가 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택시에서, 식당에서, 시장통에서, 목욕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정치권과 새정치연합을 향한 '호남 민심'의 목소리는 하나로 표현할 수 없었다.

    "호남이 살기는 좋은데 먹을 게 없다" "노무현 때 전북에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야당이 발목만 잡고 반대만 하니 나이 든 '골수팬'들도 실망한다" "이 지역에 큰 인물이 없기 때문에 정동영 전 장관이 나오면 예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아도 당선될 것"이라는 말부터 "그래도 내 어린 시절보다 살기 좋아졌다" "지금 정부가 하는 못된 짓에 비하면 노무현 때가 좋았다" "야당이 화끈하게 싸울 줄을 모른다" "정동영 전 장관도 인심을 많이 잃었고, 젊은 사람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말까지 쟁점마다 사안마다 의견들이 엇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사안에 있어서는 거짓말처럼 의견이 일치됐다. 문재인 대표가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목포~무안~광주~익산~전주를 도는 동안,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냐 무소속이냐를 고민하는 거지, 민주당 안에서 문재인이 그거(대표) 하느냐 박지원이 그거 하느냐는 국민들이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한 나머지 한 사람조차 "문재인 대표가 좀 그런 건 사실"이라고 당대표로서 자격 미달임을 밝혔다.

    새정치연합의 뿌리이자 심장인 호남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문재인 대표. 당 내홍의 근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당내 몇몇 정치인이 단순히 흔드는 것이라면 당이 이렇게까지 될 수는 없다. '분노한 호남 민심'이 견인하고, 이 때문에 호남은 물론 수도권까지 흔들리자 민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 ▲ 8~9일 전라남도 목포 및 무안에서 만난 전남도민들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면서도,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즉시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9일 오전 전남 무안의 전남도청 청사 앞에 영광군·함평군 등 관내 시·군들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8~9일 전라남도 목포 및 무안에서 만난 전남도민들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면서도,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즉시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9일 오전 전남 무안의 전남도청 청사 앞에 영광군·함평군 등 관내 시·군들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 "당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던 문재인 대표가 마침내 위기를 인식한 뒤 고작 내놓은 카드가 '중앙위에서의 혁신안 통과 및 당원·국민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당원·국민에게 묻는 방식으로는 권리당원·일반국민 각 50% 여론조사가 유력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와 친노 세력에 묻고 싶다.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되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표에 대해 재신임 의견이 나오면, 그러면 문재인 대표를 떠났던 호남 민심이 돌아오는가. 증상과 처방이 이렇게까지 엇나갈 수가 없다.

    재신임이 되면 더 이상 왈가왈부 말고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끝내자지만, 525만 호남인이 여전히 문재인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상 그러한 목소리는 반드시 다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선출직 정치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에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에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順天者存逆天者亡)'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민심은 곧 천심이다. 민심에 거스르는 정치인이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5일 전남 무안에서 열린 '도민의 소리를 듣다' 행사에서 ""민심의 흐름을 이기는 정치 지도자는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치를 설명했을 뿐, 제발 저린 친노 정치인들 반응마냥 항명(抗命)으로 곡해해서 들을 이유가 없다.

    김한길 전 대표도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문인 이상(李箱)의 말을 인용했다. 위기 때문에 희한한 기교를 발휘해 민심의 눈을 속이고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하겠지만, 결국 그러한 기교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호남 민심은 문재인 대표가 기이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당장 깨끗하게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만일 아무래도 이대로는 승복할 수가 없다고 하면 방법은 있다.

    새정치연합의 심장인 광주광역시나 전라남도에서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소집하는 것이다. 시간은 토요일 아침 정도로 해서, 전국의 수많은 대의원들이 전날 저녁에 미리 모이도록 하면 금상첨화이겠다.

    수많은 대의원들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전당대회가 열리는 광주나 전남으로 모여들고, 또 광주송정역이나 광주종합터미널, 그 어딘가에서 교통 수단을 타고 이동하면서, 식사를 하고 숙박을 하면서 자연스레 호남 민심을 체감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서 호남 민심도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판단해보는 기회를 갖고, 새정치연합 대의원들도 문재인 대표를 향한 호남 민심이 어떤지 체감하는 기회를 갖게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마련한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떳떳하게 재신임을 받는다면, 호남 민심도 비로소 문재인 대표에게 다시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위기의 근원을 진정하게 해소하고, 거취에 대한 왈가왈부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은 이러한 조치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현재 당의 위기와 내홍의 바탕이 되고 있는 냉담한 호남 민심에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는 혁신안의 중앙위 통과나 권리당원·일반국민 여론조사 따위로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재인 대표의 모습이 딱하다. 이러한 모습이 호남 민심을 문재인 대표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는 점을 깨닫고, 더 이상의 진정성 없는 기교는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