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갈등 종식 안 돼고, 중도층 못껴안아…선택의 기로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회의 행보 때문에 내심 곤란함에 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회의 행보 때문에 내심 곤란함에 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ㅇㅇ당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기 혁신을 거부하는 '망상의 정치(politics of delusion)'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에서 공개한 2015년 영국 총선 분석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보고서가 예로 들은 ㅇㅇ당은 올해 총선에서 참패한 영국의 노동당을 가리키지만, ㅇㅇ당에 새정치민주연합을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연거푸 패하며 그 이후 단 한번도 승전보를 울리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 패배 원인이 영국 노동당이 빠진 '망상의 정치'와 궤를 같이 한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가 함께 지적하는 대목인 '좋은 집에 살면서 자녀를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득권 세력이 영국 노동당 내에서 득세했다'는 점은 오히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우리나라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대권을 향해 한발짝이 아쉬운 문재인 대표가 이 '망상의 정치'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첫 전체회의를 열고 당 혁신의 닻을 올렸지만, 문 대표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독이든 성배로 불리는 혁신위원장직을 겨우 수락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혁신위원 인선을 친노성향으로 편성한데다, 정책적으로는 더 좌클릭할 뜻을 내비치면서 문재인 대표가 원하는 방향과는 정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 당(黨) 돌보면 대권 멀어지고, 대권 향하면 당(黨) 깨지고

    지난 4.29 재보궐 선거 까지만 하더라도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로 '대동단결'하는 분위기였다. 

    한국갤럽의 4월 7일~9일 성인 1006명에게 예비조사에서 선정된 정치인 8인에 대한 차기정치지도자 설문조사에서 문재인 대표는 22%를 기록해 여야를 막론하고 3월에 이어 압도적인 차이의 독주체제를 구축했다.(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6621명 중 1006명인 15%응답률,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이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받은 지지율 9%의 2배가 넘는 수치고, 새누리당 김문수 전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받은 5%에 4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러나 6월 9일~11일 조사에서는 그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 문재인 대표는 다자대결에서 야당 내 차기주자 1위 자리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내주었을 뿐 아니라 김무성 대표와도 1%차이로 좁혀졌다. (RDD 표본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5482명 중 1002명인 18% 응답률,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특히 김무성 대표와 양자대결에서 4월까지 3개월간 14~20% 가까이 열세를 보였지만, 5~6월을 지나며 양자 격차가  4%포인트 안으로 줄어든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근소하게 앞서 있는 상황이다.

    정당지지도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새정치연합은 2.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전당대회 직후부터 줄곧 25%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했다. 

    그러나 4.29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야당의 지지율은 20% 초반 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등 호재로 분류될 수 있는 사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패배의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동시에 계파 갈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다…

    분당까지 거론되는 심각한 계파갈등에 문재인 대표는 부랴부랴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6년동안 무려 7번이나 혁신위를 꾸렸다.

    문 대표는 혁신위원장직에 박지원 전 대표, 안철수 전 대표는 물론 조국 서울대 교수까지 여러 군데 손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이종걸 원내대표가 추천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을 내정했다.

    문재인 대표로서는 내심 이번 혁신위원회를 통해서 계파갈등을 잠재우면서 동시에 대권을 향한 '우클릭'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랐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혁신위 구성이 비노계의 더 큰 반발을 부른데다 대부분의 혁신위원들이 '좌클릭'을 표방하고 나서면서 문재인 대표가 가야할 방향과는 180도 반대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혁신위원들이 親盧계(친노무현계) 일색으로 채워지면서 당 안팎의 싸늘한 반응에 직면했다. 호남 민심을 결코 올바르게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초 인사로 계파갈등이 수습되길 바랬던 문재인 대표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날 열린 1차 회의에서 나온 목소리에도 문재인 대표는 웃을 수 없었다. 참석한 혁신위원들이 '을'들을 강조하며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범친노이자 을지로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같은 자리에서" 국민들의 인식, 이런걸 바꾸지 않고서는 새정치연합 경계를 넘어 야권전체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말로 하면 수구 기득권에 우리나라를 내준다는 것인데 정말 끔찍한 일"이이라고 했다.

    정춘수 위원도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등을 포함해 소수자와 함께 살았지만 아무리 정책 대안 내고 개별적으로 소리 질러도 되는 게 없더라"라며 "정치가 소수자들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로서는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셈이 됐다. 문 대표가 '대권에 나서려면 당을 등져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온다.

    2.8 전당대회 당시 문재인과 당 대표직을 놓고 경합을 벌였던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의원은 대여(對與)공세를 제대로 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 후보로는 적합할지라도 당 대표로는 적합하지 못하다"고 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또 "당 대표는 나에게 주시고 문 대표는 대권에 나가시라"며 "누구를 대권 후보로 지지하든 저와 함께 하자. 대권에 욕심이 없는 저만이 대권 주자를 키우며 여당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도 했다.

    그 당시 박지원 의원이 우려한 위기를 문재인 대표가 그대로 직면한 셈이다.


    ◆ 이쯤되면 막 가자는…

    직면한 위기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조직사무부총장을 지낸 김경협 의원이 트위터에 "비노는 새누리당 세작"이라며 "비노는 새누리당원이 잘못 입당한 것 ^^"등 의 글을 남기며 논란을 시작했다.

    김 의원은 트위터에 자신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향해 "천만의 말씀, 새누리 세작들이 당에 들어와 당을 붕괴시키려 하다가 들통 난 것^^"이라며 "이제라도 번지수 잘 찾아가시길…"이라고 답하기까지 했다.

    끝까지 김 의원이 "비노는 당원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트윗 내용을 정리하면서 친노가 비노를 향해 '분당을 할테면 해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 아니겠느냐 관측도 제기된다.

    후에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SNS를 통해 "수구 종편이 친노-비노로 갈라져서 당을 분열시키려 들고 있는데 이에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계파 수장이 아닌데 친노계파를 운운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다"고 해명했으나 혁신 위원들이 나서서 비판하는 등 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관계자는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집토끼를 단속하고 산토끼를 잡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가능하다"면서도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아무래도 산토끼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분열이든 분당이든 내홍을 겪는다고 해도 결국 문 대표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집토끼들은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친노)의 생각"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