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외연 확대 기회 보지 못하고 정치판 '호구'임이 드러나"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상자 속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상자 속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아베 총리도 방미했고 곧 시진핑 주석의 방미도 예정돼 있으니, 지금이 (방미하기에) 괜찮은 시기인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 전격 연기 결정을 접한 뒤 한 말이다. "하루 이틀 메르스가 더 확산되는지 진정되는지를 보고 판단해도 됐을 문제"라면서도 "어쨌든 잘한 결정"이라는 평가도 내렸다.

    아베 일본 총리가 방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도 곧 방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문재인 대표가 이날 돌연 알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방미하기에 괜찮은 시기'라고 판단했다면 왜 진작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표가 '방미하기 괜찮은 시기'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꽁꽁 감추고 있는 사이,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여기저기서 방미 연기 주장의 불을 지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목희 의원은 8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문형표 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은수미 의원은 같은 날 인사청문을 받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를 상대로 대통령 방미 연기를 주장했다.

    심지어 유승희·이용득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면전에서 방미 연기를 부르짖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5일에 이어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재고하길 간곡히 말씀드린다"며 "국민 안전과 생명이 우선인가, 아니면 미국 방문이 우선인가"라고 주장했었다.

    유승희 최고위원이 '방미연기론'을 쉬어간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용득 최고위원이 나서 "어느 정도 (메르스가) 잡히면 나가고, 아니면 나가지 말라"며 "외교적 결례라면 국민은 중요치 않다는 말인가"라고 극언했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면전에서 이런 주장이 횡행하던 그 때에도 지금이 대통령이 방미하기에 괜찮은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자신의 뜻을 입밖에 내어 밝히지 않았을까. 굳이 방미가 연기된 뒤에야 "방미하기에 괜찮은 시기"라고 뒤늦게 말하는 심사는 무엇일까.


  • ▲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문재인 대표와 그 너머에 자리한 유승희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문재인 대표와 그 너머에 자리한 유승희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치권 관계자는 "상상력의 빈곤"이라며 "크리에이티브한 정치적 창의성이 전혀 없다"고 일갈했다.

    이 관계자는 "유승희·이용득 최고위원이 방미 연기를 주장할 때 문재인 대표가 이렇게 선을 그었더라면 어땠을까"라며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확산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뒤 '메르스는 메르스이고 국가안보는 국가안보'라고 말문을 연다.

    이어 '메르스에 대처하는 문제는 우리 당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이재명 성남시장 등 소속 지자체장은 물론 새누리당 소속 지자체장과도 손잡고 적극 대처하겠다'며 '대통령은 마음 놓고 방미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등 안보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과 깊은 논의를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 사태에 더해 느닷없이 양수겸장(兩手兼將)에 몰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마음 놓고' 미국에 가기도 꺼림칙하고, 그렇다고 야당조차 안보를 이유로 방미하라는데 연기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평소 나라에 무슨 일만 나면 야당이 대통령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던 중도보수층은 눈을 씻고 문재인 대표를 다시 봤을 것이다.

    "정국은 대통령이 미국에 가든 말든 문재인 대표가 칼자루를 쥐게 되는 꽃놀이패의 형국이 됐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문재인 대표는 그냥 흘려보냈다. 방미냐 아니냐며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까지 한 삽을 떠넣는 등 여야 정치권에서 한창 논란이 벌어질 때는 꿀먹은 벙어리더니, 연기로 가닥이 잡히자 뒤늦게 "참 좋은 때였는데…"라며 한탄이다. 타지도 않았을 버스가 떠나자 손을 흔드는 격이다.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렇게 '유능한 경제·안보 정당'이 되겠다고 떠들며 지난 3월 25일에는 김포에 있는 해병대 1사단을 방문하고 '천안함 폭침'을 운운했지만, 눈앞에 다가온 '중도 외연 확대'의 지름길을 보지 못했다.

    정책엑스포니 무엇이니 했지만 정작 새로운 것은 없다. 12일에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친노·운동권 일색인 인사들과 함께 혁신위원회의 첫 전체회의를 개최했지만, 처음인데도 전혀 새롭지가 않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7번째의 혁신위가 좌클릭 우클릭 여부를 놓고 또 한 번의 내홍을 예고했을 뿐이다.

    대권을 쥐고 싶어 중도로의 외연 확대는 꾀하지만, 내심은 중도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것이다. 중도 공략과 '유능한 경제·안보 정당'을 내키지는 않는데 대권 도전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다보니, 누구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려도 좀체 깨닫지를 못하는 모양새다.

    앞치마를 두르고 새줌마 투어를 하며, 메르스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는 돼지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병원에 마스크도 없이 방문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이러한 문재인 대표의 지극히 빈곤한 정치력 상상력을 바라보며 내심 얼마나 미소지을까.

    표정관리를 하던 김무성 대표의 진의가 언뜻 드러난 것이 지난 4월 28일이다. 4·29 재·보궐선거의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관악을을 찾았던 김무성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동안 참아 왔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허허허… (문재인 대표가) 4대0으로 패할 것이 너무 두려워 조금 정신을 잃은 것 같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평하는 말투가 영락 없이 도박판 은어로 이른바 '호구'를 향해 던지는 말투였다.

    도박판에서는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 항상 판돈을 잃는 사람을 '호구'라고 한다. 경멸받는 존재인 것 같지만 되레 그 바닥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돈을 잃어주는 호구가 없으면 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 대표를 야당의 당대표로서, 또 자신의 카운터파트너로서 더없이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 이번 메르스 정국과 그로 인한 대통령의 방미 연기를 계기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