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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 살해 테러가 성공했다면?

살해 시도 테러범에 이불 덮어주는 한국경찰...온 세계가 놀랐다!

입력 2015-03-05 18:12 | 수정 2015-03-09 10:04

▲ 김기종의 테러 직후 강북삼성병원으로 가는 마크 리퍼트 주한 美대사. ⓒSNS 유포 사진 캡쳐

5일 오전 7시 30분경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이하 민화협)가 주최한 조찬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때 초대받지도 않은 김기종이 슬그머니 따라 들어왔다. 마크 리퍼트 주한 美대사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김기종은 아침 식사가 시작될 무렵, 마크 리퍼트 주한 美대사가 앉아있던 중앙 맨 앞 테이블로 다가갔다. 인사를 하려는 줄 알고 손을 건네던 리퍼트 주한 美대사는 김기종이 휘두르는 칼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다. 美해군 특수부대 실(SEAL) 장교 출신다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김기종의 칼은 리퍼트 주한 美대사의 손가락을 뚫고 그의 뺨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김기종은 현장에 있던 외사경찰과 형사들에게 체포됐다.

리퍼트 주한 美대사는 즉시 인근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뒤 신촌에 있는 연세大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다. 2시간이 넘는 수술 후 병원 측에서는 “수술은 잘 됐지만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기종은 테러를 저지른 뒤 경찰들에게 붙잡혀 나가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환자’라고 주장하면서. 김기종은 경찰서에 들어갈 때까지도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했다.

“왜 지난달에 이산가족 상봉을 안 했느냐.
군사연습 때문 아니냐.
군사연습을 중단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잘못된 일이겠지만, 내가 저지른 일은 정당하다.
내가 미국을 칼로 베었다.

놔라, 나는 괜찮다.
(美대사는) 별로 안 다친 거 같은데 놔라.
내가 알아서 걸어 나가겠다.
놔라.”
 


한국 언론 보도초점 vs. 해외 언론 보도초점


대다수 한국 언론들은 리퍼트 美대사 피습 직후부터 지금까지 김기종에 대한 ‘신상털기’ 수준의 보도와 함께 이를 단순 강력범죄 정도로 간주해 보도를 하고 있다.

좌파 성향 매체는 새민련의 주장을 받아 “김기종은 진보 진영에서도 내놓은 사람”이라는 식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문재인 새민련 의원은 “정치적 해석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우파 매체들은 김기종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통일부가 위촉하는 통일교육위원을 지냈고,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성공회대 외래교수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좌우를 떠나 많은 매체들이 김기종이 아직 미혼이며, 월세 50만 원짜리 집에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 그의 고향이 전남 시골마을(강진)이라는 점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 2010년 7월 주한 日대사 이임식에서 콘크리트를 던지는 김기종. ⓒ당시 영상 유튜브 캡쳐

미국은 물론 일본, 유럽, 중동 언론들도 리퍼트 美대사 테러 사건을 속보로 전하고 있지만, 그 관심사는 주로 김기종의 테러 의도와 과거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 여부다.

특히 일본 언론들은 김기종이 2010년 7월 주한 日대사 이임식에서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져 통역을 담당한 대사관 여직원에게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과 그가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김기종이 전과 6범이라는 점도 보도했다. 


김기종,
리퍼트 美대사 살해하려
열흘 동안 준비


국내 매체 가운데 일부는 김기종이 리퍼트 美대사를 테러한 이유를 단순히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성향 정도로만 해석한다. 하지만 김기종이 경찰에 끌려가면서 한 말을 보면, 美대사 테러의 궁극적 목적은 ‘한미동맹 해체’임을 알 수 있다.

美대사 테러현장에서 촬영된 영상, 김기종이 운영했던 단체 활동, 방북 행적을 보면 그는 전형적인 반일반미 주의자다. 그는 <6.15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나 <한국진보연대>와 같은 종북성향 단체들과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지난 2월 24일 광화문 광장에서 가진 <한미연합훈련 반대시위>에도 참가했다. 이런 활동에다 주한 日대사 테러, 주한 美대사 테러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합리화하고 있다.

반면 김기종은 북한 김씨 일가의 협박이나 中공산당의 내정간섭에 대해 항의한 적이 없다.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

5일 일어난 리퍼트 美대사 테러 또한 항의가 아니라 ‘살해’를 목적으로 했음이 수술을 한 의사들에 의해 드러났다.

▲ 김기종의 테러 직후 피를 흘리며 차량으로 이동하는 마크 리퍼트 주한 美대사. 김기종의 테러로 길이 11cm, 깊이 3cm의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채널Y 보도화면 캡쳐

리퍼트 美대사의 수술을 담당한 연세 세브란스 병원 측은 “리퍼트 대사의 얼굴에 길이 11cm, 깊이 3cm 가량의 깊은 상처가 났는데, 상처 부위가 너덜너덜해 80바늘을 꿰맸다”고 밝혔다. 리퍼트 美대사가 상처를 입은 부위에서 3cm 정도 아래 부위(경동맥)를 찔렸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했다.

경찰과 병원 관계자들은 김기종이 칼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는 살해의도를 가진 범죄자들이 하는 행동 가운데 하나다.

김기종이 리퍼트 美대사를 살해하기 위해 열흘 동안 준비했다는 점, 연세대 노정선 교수에게 전단지를 건넨 뒤 그의 이름을 수차례 외치며 “노정선 교수에게 맡긴 전단지를 읽어보라”고 외친 부분도 유심히 살펴볼 대목이다.

김기종이 美대사에게 테러를 가한 뒤 한 행동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이번 테러를 하나의 ‘의거’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독립투사’와 같은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정신상태도 엿볼 수 있다.

▲ 김기종이 리퍼트 美대사를 테러하기 직전 연세대 노 모 교수에게 맡겼다는 유인물.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韓언론 “김기종 개인 소행”
외신들 “남북통일 요구하는 한국인 소행”


김기종은 리퍼트 美대사를 살해하면 한미동맹을 해체할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의도는 리퍼트 美대사 테러만 보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놓고 中공산당이 내정간섭 발언을 했음에도 침묵한 한국 정부의 모습, 지난 2월부터 한국 내 종북성향 세력들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한 점, 지난 2월 27일 웬디 셔먼 美국무부 정무차관이 한 발언에 한국 언론과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한 점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

“한국이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면 다른 나라의 핵타격을 당할 수 있다”거나 “한국에 사드 미사일이 들어오면 한중 관계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중국의 협박에도 아무 소리 않던 한국 언론들은 지난 2월 27일 웬디 셔먼 美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이 일제의 편을 든다”며 미국을 비난하는 한편,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왜 미국에 항의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여기다 종북성향 단체들의 한미연합훈련 반대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미국만 때리기”는 마치 2002년 의정부 여중생 교통사고 사망사건 당시의 국내 여론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 인사 가운데 가장 친한파’라는 리퍼트 美대사를 대상으로 한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우리 형님 신체가 활발한 나이도 아닌데 美대사 경호원들은 뭐했냐”고 오히려 항의한 김기종의 동생 발언이나 “김기종은 종북좌파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전하며, 김기종이 리퍼트 美대사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 ‘개인의 문제’라는 식으로 풀이한다.

하지만 해외언론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구글이나 야후만 살펴봐도 “남한에서 美대사 피습…통일 요구하는 세력 소행”이라는 제목으로 보도가 나가고 있다.

              리퍼트 美대사, 김기종의 의도대로 됐다면?


만약 김기종의 리퍼트 美대사 테러가 ‘목적’을 달성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단 美정부의 입장부터 봐야 한다.

2012년 9월 20일, ‘재스민 혁명’이 휩쓸고 지나간 리비아에서 美대사관과 영사관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 리비아 과도정부와 국민들은 자신들을 ‘친미적’이라고 했지만, 리비아에서 美공관을 습격한 것은 무슬림 무장단체였다. 이들은 벵가지의 美영사관을 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美대사를 포함, 미국인 4명을 살해하고 공관을 불태웠다.

美대사가 부임지에서 공무수행 중 살해당한 것은 1979년 이후 33년 만이었고, 美 사상 6번째 일이었다고 한다. 이후 美정부는 리비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것은 물론,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테러조직이 설치던, 무장단체끼리 도적질을 하던말던 ‘방치’했다. 해당 지역은 무정부 상태가 됐다.

▲ 2012년 9월 리비아 무장세력들은 美공관에 침입해 건물을 불태우고 美외교관들을 살해했다.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는 폭도. ⓒ美CBS 뉴스 보도화면 캡쳐

리비아의 경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적성국이었다. 하지만 만약 수십 년 동안 동맹국이었던 나라에서 美대사가 살해 당한다면 美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게 한국이라면.

美정부는 2002년 12월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반미 시위 때 한국에서 손을 떼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 바 있다. 미군 수뇌부에서는 “왜 우리가 우리 돈을 들여 한반도를 지켜야 하느냐”는 반발까지 나왔다. 하지만 당시 부시 행정부와 친한파 정치인, 고위급 군인들의 설득으로 미군과 美정부는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미군과 한국군 예비역, 한국 우파진영의 노력,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노력으로 ‘한국은 반미국가’라는 미국 내 여론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이런 불만이 일고 있다. 2015년을 끝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하고, 아시아 태평양에 집중하려는 美정부 입장에서는 아시아 동맹국들이 매우 중요하다. 그 거점이 될 만한 한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인구가 많고, 상당한 규모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 종교적 성향이 약한 나라로는 한국과 일본, 호주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일본과 호주는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반면 한국은 ‘통일’을 지상명제로 내세워 중국과 친밀한 관계로 가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중이다.

한국의 행태를 본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은 친중국가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고, 일본 아베 정권이나 김정은 집단은 이 같은 미국 내 여론을 악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여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친중반일’을 외치고 있다.

▲ 방한한 시진핑과 그를 반기는 한국 어린이들. 美일각에서는 한국을 '친중국가'로 보기도 한다. ⓒ英텔레그라프 보도화면 캡쳐

이런 상황에서 만약 리퍼트 美대사를 살해하려던 김기종이 목표를 이뤘다면?

한미동맹관계에 강한 균열을 일으키는 큰 충격을 가했을 것이다.
여기에 내정간섭 발언을 일삼는 중국, 시도 때도 없이 도발하는 북한, 한국을 ‘친중국가’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 일본이 김기종의 테러를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나선다면, 그 결과 한국에는 커다란 정치적 위기가 몰아닥치고, 동북아 지역 정세의 불안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커졌을 것이다.
즉 김기종의 테러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사라예보의 총성’처럼 국제정세의 변화를 초래케 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말이다.  


김기종,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


불행 중 다행으로 리퍼트 美대사는 치명상은 면했다. 하지만 김기종의 테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꼴이 됐다. 한국 정부나 정치권의 논평이나 해명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브레이킹 뉴스를 통해 미국 대사가 피를 철철 흘리는 광경과 테러범 김기종을 극진하게 모셔가는 모습을 본 美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힐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서방 국가들에서 테러범이나 암살범을 체포·호송할 때는 ‘모셔가지’ 않는다. 테러범이나 암살범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마음대로 떠들어대고 이를 보도할 수 있도록 하지도 않는다.

테러범 김기종은 경찰에 의해 ‘침대로 실려가는’ 과정 내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경찰은 이를 제지하지도 않았다. 이는 그대로 방송을 탔다. 그가 말하려던 “한국은 본질적으로 반미국가”라는 메시지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퍼지도록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김기종의 美대사 테러 이후 北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의 독자게시판 등에서 종북세력들이 쾌재를 부르며 '의거'라고 찬양하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외교관 살인미수 테러범을 들 것에 실어 가면서 이불까지 덮어주는 경찰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경찰이 유일할 것이다.

▲ 종편에 출연한 한 정치평론가는 "김기종을 모시고 가는 경찰의 모습을 본 외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현지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SBS 관련 보도화면 캡쳐

그럼에도 현재 청와대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美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회의나 벌이고 있다.

김기종의 테러는 2002년의 여중생 교통사고 사건과 그 이후의 반미분위기, 2013년 3월 말 김정은의 개성공단 폐쇄 및 전쟁준비 선언 후 드러난 이석기 前의원의 내란음모 만큼이나 한미 동맹을 해체하려는 세력들의 또다른 공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20세기 이후 美대사 사망사건은 6건…우방국은 없어
 


역대 미국 대사가 부임한 나라에서 테러 또는 공격으로 사망한 사례는 모두 6건.

이 가운데 우방국에서 살해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대부분 분쟁지역이나 반미국가에서 일어난 테러, 납치, 시위공격 등이었다. 

1968년 존 고든 메인 駐과테말라 대사가 현지 영사관 부근에서 과테말라 반군의 총격으로 숨졌다. 과테말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었으나 이때는 과테말라 내전이 한창인 때였다.

1973년 클레오 앨런 노엘 駐수단 대사가 테러조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조직원들에게 납치된 뒤 살해 당했다. 

1974년 로저 데이비스 駐키프로스 대사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반미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1976년 내전 조짐을 보이던 레바논에서는 프랜시스 멜로이 駐레바논 대사가 수도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에 납치된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약 열 달 전인 1979년 2월 14일, 아돌프 덥스 駐아프가니스탄 대사가 수도 카불에서 무슬림 무장세력 4명에게 납치당했다. 이후 아프간 대테러 부대가 납치범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돌프 덥스 대사가 숨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건 이후 33년 동안 미국 대사가 부임지에서 살해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9월 11일 리비아에서 또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리비아는 ‘재스민 혁명’ 이후 수많은 무슬림 무장 세력들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리비아 동부 도시 벵가지에 있는 美영사관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반미시위 수준이었으나 곧 무슬림 무장세력들이 RPG-7 로켓, 자동소총,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영사관을 공격,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駐리비아 대사와 美외교관 3명을 살해하고, 공관을 불태웠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 대사가 공격을 받은 것은 두 차례였다. 

1964년 3월 24일 에드윈 라이샤워 駐일본대사가 도쿄의 대사관 안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소년이 휘두른 칼에 허벅지 동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때 일본인의 피를 수혈받은 라이샤워 대사는 “이제는 내 몸에도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2012년 9월 18일 게리 로크 駐중국 대사가 반일 시위대에 포위돼 협박을 당한 바 있다. 게리 로크 駐중국 대사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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