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비행기, 커피숍, 술집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 사회’
  • ▲ 지난 12월 27일, 부천 중동 현대백화점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일어났던 사건. 그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지난 12월 27일, 부천 중동 현대백화점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일어났던 사건. 그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12월 27일 부천 중동 현대백화점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일어난 한 모녀의 ‘갑(甲)질’.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사건의 파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 ‘백화점 모녀의 갑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과연 이 모녀만의 일일까”라고.

    부천 중동 현대백화점에서 일어난 ‘모녀의 갑질’이 사회 전반의 분노를 산 건 단순한 ‘갑질’ 여부가 아니었다. 백화점의 ‘협력업체(하청업체)’ 소속 계약직(또는 일용직)으로 일해 본 사람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대변한 것이다. 


    백화점에서 무릎 꿇은 주차요원,
    ‘을’도 ‘병’도 아닌 ‘정’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에서 ‘피해자’로 불리는 사람은 현대백화점의 주차관리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갑을 관계’로 따지면, 이 학생은 ‘병’도 아니고 ‘정’쯤 된다.

    이런 ‘정’의 위치에 있던 주차요원은 조금이라도 학비를 보태겠다고 일을 했다고 한다.

    아직 어려서 서비스 정신이 약했을 수도,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잘 몰랐을 수도, 백화점이라는 ‘생태계’가 얼마나 잔인한지 몰랐을 수도 있다. 여기에 ‘백화점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인 고객이 제대로 쓴 맛을 보여준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방학이 되면 백화점 또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주부들이 많이 늘었다. 이들이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점은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것’을 꼽았다.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다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백화점 생태계’는 대략 이렇다.

    최상위에는 고객, 그 바로 아래는 백화점 본사에서 고용한 모니터링 요원인 ‘미스테리 쇼퍼’, 그 아래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 순이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백화점 본사 직원, 계약직 직원, 매장에서 판매를 하는 협력업체 직원, 그 아래는 협력업체 계약직원 또는 파견 직원이다.

    2010년을 전후로 소위 ‘진상고객’으로 불리는 ‘블랙컨슈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백화점 또한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고객의 주장을 무조건 들어주지는 않는 식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외는 있다. 바로 협력업체의 계약직 사원들이다.

  • ▲ 90년대 중반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일본식 접객 매뉴얼'을 도입하면서 백화점은 '갑질의 온상'을 변질됐다. 이를 노린 '블랙컨슈머'도 급격히 늘어났다. ⓒSBS 블랙컨슈머 형사입건 관련 보도 캡쳐
    ▲ 90년대 중반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일본식 접객 매뉴얼'을 도입하면서 백화점은 '갑질의 온상'을 변질됐다. 이를 노린 '블랙컨슈머'도 급격히 늘어났다. ⓒSBS 블랙컨슈머 형사입건 관련 보도 캡쳐

    고객의 황당한 갑질, ‘판매자’도 ‘갑질’로 푼다?


    실제 백화점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 가운데 일부다. 

    매장에서 백화점 판매직원들끼리 이야기하며 웃고 있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지나간다. 여성은 갑자기 판매직원들을 향해 외친다.

    “야, 너희들 왜 시시덕거려? 나 비웃는 거야? 이것들이 어디 감히 비웃어!”


    이때 백화점 협력업체 직원(또는 계약직원)이 해야 할 대답은? “죄송합니다”다. 무조건.

    다른 매장. 한 남성이 지나가면서 매장 물품들을 구경한다. 이때 판매 직원과 눈이 마주친다. 남성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소리친다.

    “야, 너 지금 나한테 ‘맞짱’ 뜨자는 거야? 이게 어디 감히 ‘손님’을 똑바로 쳐다봐?”


    이때 판매 직원은 황급히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잘못했습니다”라고 빌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만약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객님 쳐다본 거 아닙니다”라고 말대답하면 이렇게 된다.

    “여기 책임자 누구야? 불러와! 나 오늘 저 XX 잘라버려야 겠어!”


    곧 달려온 백화점 정직원은 ‘고객을 정중히 모시고’ 가서 자초지종을 듣는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를 들을 뿐 판매직원 편을 들지는 못한다. 고객이 만약 ‘백화점 VIP’라거나 ‘고집불통’이면 백화점 측에서는 협력업체 판매직원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저기 ○○씨,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우리 백화점에서 일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사표를 쓰는 것이다. 이래야 ‘법률상’으로 ‘해고’가 아니라 ‘사직’이 되어서다. 

  • ▲ 개그맨 장동민은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놔 화제를 일으켰다. ⓒJTBC 관련 프로그램 화면 캡쳐
    ▲ 개그맨 장동민은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놔 화제를 일으켰다. ⓒJTBC 관련 프로그램 화면 캡쳐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한 남성이 유명 백화점 명품관을 찾는다.

    작업복에 작업화를 입은 남성이 명품관 매장에 들어서자 판매직원들이 위아래로 행색을 살핀 뒤 마치 ‘도둑 감시’하듯 뒤에 따라 붙는다. 이 남성이 마음에 드는 물건의 가격을 묻자 판매 직원이 비꼬듯이 답하며 다시 위아래를 훑어본다.

    “왜요? 사시게요? 이거 좀 많이 비싼데….”


    남성이 물건을 내려놓자마자 판매직원은 이를 가져가 깨끗이 닦기 시작한다. 기분이 나빠진 남성은 아무 말 않고 매장을 나선다. 뒤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남성은 다른 백화점으로 가서 같은 물건을 구입한다. 

    백화점만 이럴까? 아니다. 대형 마트, 커피숍, 비행기, 버스, 술집 등 우리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언론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기상 악화로 다른 공항에 내려 발묶인 비행기,
    일부 승객들 “책임자 나와!”


    지난 5일 오전 3시 45분 무렵 청주국제공항. 사이판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소속 7C3401편이 비상착륙을 했다. 비행기에는 17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제주항공 측은 기내방송을 통해 “기상이 나아지면 곧 출발하겠다”며 승객들에게 비행기 내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상 상황은 오전 7시를 넘겨서도 좋아지지 않았다. 승객들은 청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몇 시간을 비행기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아무튼 사이판을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6시간을 기다렸던 승객들은 결국 ‘폭발’했다.

    제주항공 측은 “오전 4시 30분부터 5시 사이에 비상연락망을 통해 출입국관리사무소, 세관, 검역소 등에 입국 수속을 긴급 요청, 입국 수속 시간을 애초 계획보다 30분가량 앞당겼다”고 밝혔지만 탑승객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제주항공 측은 오전 7시를 넘겨, 급히 대절한 버스로 승객들을 인천공항으로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20여 명의 승객들이 “몇 시간이나 비행기 안에서 기다렸다”고 반발하며, 비행기에서 내리기를 거부했다.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오전 8시 40분쯤에는 15명의 승객이 제주항공 측의 거듭된 설득에다 기다리다 지친 탓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하지만 5명은 끝까지 남아 제주항공 측의 해명과 ‘보상’을 요구했다.

    결국 제주항공이 “항공기 점거는 항공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통보한 뒤에야 5명의 승객은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한다.  

    이때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장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자칫 사상 초유의 ‘항공기 점거 사건’이 될 수 있었다. 

    한편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는 사람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기상문제로 갇힌 게 아니라, 제주항공 측의 안일한 대처로 기내에서 기다려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긴급 입국수속 문제 또한 제주항공 측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탑승했다는 승객이 "승객 대표분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해명을 요구할 것"이라며 보내 온 메일에 따르면, 제주항공 측이 "기장이 유니폼을 안 가져왔다"는 등의 변명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주장했다.

    제주항공 측이 "기장이 유니폼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등의 황당한 이유를 들며, 남은 승객들의 청주공항 수속을 막았다"거나 "제주항공 측에서 마련한 버스는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날 오후부터 굶다시피 하던 승객들에게 "도시락을 준비했다"고 거짓말을 해 내리라고 회유하는가 하면,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3시간 뒤에야 승객 숫자보다 모자란 도시락을 내놨다고 한다.

    책임자를 불렀던 이유도 제주항공 사이판 지점장, 청주공항 지점장, 인천공항 담당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안내를 번복해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한다.

    게다가 언론들이 '여객기 점거'라고 보도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며 제주항공 측에 의해 승객들이 "감금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만 보면, 승객들의 입장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풀려진 소비자의 권리’를 보여준다. 화가 난 것은 이해하지만 꼭 그렇게 위험천만한 항의를 했어야만 할까.

    무려 10시간 이상 지연된 비행기 운항에 승객들이 불만을 갖고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비행기가 청주공항에 비상착륙한 원인은 '기상악화'가 아니었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불편함을 겪었다고 비행기를 점거하고 “책임자 나와”라며 고함을 친다고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걸까. 이날 분노한 탑승객의 요구대로 제주항공 최고 책임자가 나온다고 기상이 좋아질까? 그렇다면 그는 '인디언 주술사'다.

    이처럼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무조건 ‘큰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한 일처럼 돼버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갑질’ 만연한 한국,
    마지막 제물은 ‘최하위 비정규직’


    언급한 사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매일 직장 상사의 갑질, 거래처의 갑질, 고객의 갑질, 승객의 갑질 등 많은 ‘갑질’을 겪거나 구경한다.

    이를 보면서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쉽게 보기 어려운 현실, 이게 문제 아닐까. 

  • ▲ 2014년 10월 7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하던 용역업체 계약직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주민들로부터 심한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한다. ⓒMBC 관련 보도화면 캡쳐
    ▲ 2014년 10월 7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하던 용역업체 계약직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주민들로부터 심한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한다. ⓒMBC 관련 보도화면 캡쳐

    아무튼 백화점 모녀든 마트 직원들에 대해 함부로 하는 ‘블랙 컨슈머’든 직장 상사든 이런 갑질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2010년 10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불러들여 “한 대에 100만 원 줄게”라며 야구 방망이로 폭행한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씨 사건, 2013년 4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현관에서 지갑으로 직원의 뺨을 때린 중소기업 오너, 2014년 10월 7일, 한 용역업체 소속 경비원을 분신자살하도록 만든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일부 주민의 갑질, 2014년 12월 5일 뉴욕 JFK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후진’하게 만들었던 ‘땅콩회항’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자신보다 더 영향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면, 이런 ‘갑질’을 할 생각이나 했을까. 상대방의 ‘힘’ 또는 ‘돈’을 보고 행동하는 비열함과 천박함이 ‘갑질’의 근본 정서다. 

    언론들이 부천 현대백화점 모녀 사건에 관심을 쏟는 가장 큰 이유도 ‘갑’이 ‘을’이나 ‘병’도 아닌, ‘정’에게 ‘갑질’을 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은 지난 12월 30일 일본의 한 편의점에서 '유사한 갑질'을 하다 경찰에 체포된 사례와 비교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언론은 헌법에 나와 있는 ‘언론의 자유’를 생뚱맞게 ‘국민의 알 권리’라고 포장해 곳곳에서 ‘갑질’을 일삼는다. 그것도 주로 ‘약자(광고주가 아니면서 만만한 기업 또는 홍보담당자)’를 향한다.

  • ▲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현 새민련 의원의 갑질도 문제다. ⓒMBC 관련 보도화면 캡쳐
    ▲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현 새민련 의원의 갑질도 문제다. ⓒMBC 관련 보도화면 캡쳐

    ‘갑질’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기는커녕 되레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누구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상대로 ‘갑질’을 벌이는 게 일상화 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마지막 제물’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계약직 경비원, 부천 현대백화점의 주차관리용역업체 아르바이트 등 ‘최하위 비정규직’이 돼버렸다.

    즉 사회에 진출할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젊은 세대와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산업화 세대가 '갑질'의 최종 제물이 되고 있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의 친척이나 가족이 비슷한 일을 한다면, 과연 그렇게 ‘갑질’을 하겠는가라고.

    지금 ‘갑질’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생각해야 할 점은 하나다.

    “내가 지불한 돈은 상품의 가치와 서비스까지만 포함돼 있다.
    내가 고용한 사람들에게 주는 돈 또한 그의 노동과 성과에 대한 댓가다.
    그 ‘푼돈’으로 상대방의 인격까지 산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