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장 제정과정 비민주성 뚜렷, 전문위원 ‘이념편향’ 의혹도
  • ▲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DB
    ▲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 ⓒ뉴데일리DB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이하 인권헌장)’이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좌초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헌장 조항 중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정책에 반영한다는 입장을 밝혀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의 비민주성과, 일부 전문위원들의 이념 편향적 행태, 시민대표인 시민위원들을 들러리 정도로 대하면서 불거진 마찰 등은 두고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서울시는 부랴부랴 기자설명회를 여는 등 불붙은 비난여론을 진화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시민들의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효관 서울시 서울혁신기획관은 지난달 말일 서울시청 브리핑에서 “헌장의 일부 미합의 사항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확산돼 왔다”며, “서울시는 (6차 시민위원회에서) 최종적인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더 광범위하게 경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권헌장 문항에 대한 합의가 실패하면서 ‘세계 인권의 날’인 10일, <서울시민인권헌장> 발표를 통해 [인권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던 박원순 시장의 꿈도 실현이 어렵게 됐다.

    앞서 지난달 28일 오후 7시께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 6차회의는, 절반 이상의 시민위원이 회의과정의 비민주성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퇴장하는 등 파행으로 얼룩졌다.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최종회의였던 이날, 시민위원회는 5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이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180여명의 시민위원 중 절반이상인 100여명이 회의 진행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중에 퇴장했다.

    이번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미 합의된 조항들은 다음과 같다.

    <일반원칙 분과>

    ▲제4조

    1안: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2안: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제5조 서울시민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모든 이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관용의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복지와 안전 분과>

    ▲제15조 서울시민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서울시는 가정, 학교, 일터, 다수인 보호시설, 지역사회 등에서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한다. 서울시는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처한 시민을 특별히 고려한다. 서울시는 피해자와 피해・가해 가족에 대한 지원을 한다.
    ※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처한 시민을 고려한다”에서 여성, 아동, 노약자,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언급할지는 분과에서 별도 논의.

    <헌장의 이행 분과>

    ▲헌장의 이행 주체와 책임
    제42조 이 헌장에 제시된 권리는「대한민국 헌법」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 근거하여 실천되어야 한다.

    ▲ 헌장이행의 방법
    제45조 시는 헌장의 이행을 위해 필요한 규범과 기구 등 제도를 마련하고, 인권실태조사를 통하여 종합적인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

    ▲제46조
    서울시민은 스스로 인권을 지키고, 인권친화적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며,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시는 헌장의 권리를 적극 알리고, 인권 친화적인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 교육 및 홍보를 시행한다


    미합의 조항과 관련돼 반대의견을 표명한 시민위원들은, 4조 1안에서 성별, 종교, 나이, 외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이 포함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토론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일부 전문위원과 사회자가 ‘직권상정’을 악용해, 표결에 붙이는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 ▲ 서울 지역 224개 시민단체가 지난 10월 2일 오후 1시 서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을 서울시민인권헌장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 서울 지역 224개 시민단체가 지난 10월 2일 오후 1시 서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을 서울시민인권헌장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시민위원으로 참여한 한 시민은 “5차회의 회의록을 보니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이 사라지고 전문위원이 다 고쳐서 가지고 왔다”며, “일반원칙에서 시민위원들은 1안과 같이 성별, 종교, 나이, 출신국가, 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고, 성소수자가 포함되는지 여부만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퍼실리테이터(사회자) 진행 하에 1안과 2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결과, 1안은 7명, 2안 10명으로 2안이 다수결에서 우세했다”며, “그럼에도 퍼실리테이터는 ‘이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를 수 없다’며 강제로 미합의 사항에 넣었다”고 폭로했다.

    ‘헌장의 이행 주체와 책임’ 제42조에서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관습법에 근거하여 실천돼야 한다“라는 조항의 경우에도 시민들의 의견이 갈렸다.

    일부 국제기구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인권제약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수차례 폐지를 권고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헌장조항은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다.

    시민단체들은 45조에서 “헌장이행을 위해 필요한 규범과 기구 등의 제도를 마련한다”는 조항과, 46조의 “인권교육 및 홍보를 시행한다”는 내용에도 의문을 나타냈다.

    서울시가 인권헌장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힌 것과 달리, 위원회와 감시기구, 시의 예산을 쓰는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안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 시민위원들이 적지 않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편향적 인권교육’ 가능성을 지적하며,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 ▲ 서울시인권헌장에서 독소조항으로 거론된 바 있는 '탈가정 성소수자 청소년 지원' 풍자 퍼포먼스 ⓒ뉴데일리 유경표 기자
    ▲ ▲ 서울시인권헌장에서 독소조항으로 거론된 바 있는 '탈가정 성소수자 청소년 지원' 풍자 퍼포먼스 ⓒ뉴데일리 유경표 기자

    한효관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사무총장은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인권헌장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동성애를 혐오하자는 것이 아니”라며, “공정한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명확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사무총장은 특히 “서울시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과 문경란 부위원장을 비롯해 대다수 전문위원의 이념적 성향도 매우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한 사무총장은 “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에 참여 중인 전문위원 가운데 이석기 탄원 운동을 벌였던 인물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혁신기획관 김태명 인권담당관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헌장 자체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라며,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인권헌장 공표와 관계없이 이행할 계획이며 미합의된 5개 사항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문위원의 규모가 30명에서 37명으로 늘어났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명예부시장 등이 전문위원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늘어나게 된 것”이라며, “비례대표의 성격으로 전문위원에 위촉했다. 이런 부분이 오해가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