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매체 뉴포커스, 탈북자 3명 인터뷰 통해 밝혀
  • ▲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전경 ⓒ 국정원 제공
    ▲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전경 ⓒ 국정원 제공

     

    지난 4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합신센터(입국한 탈북자들의 입국경로와 신상을 조사하는 기관)가 언론에 공개됐다. 2008년에 개관된 이곳에서 국정원이 32개의 언론매체 기자들을 공식 초청해본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있는 이곳에 국정원이 취재진에 공개한 것은 최근 불거진 '서울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된다. 탈북자로 위장한 화교출신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씨는 중국으로 추방된 후 국정원사람들로 부터 강압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바 있다.

    <뉴포커스>는 탈북자라면 누구라도 거쳐야 하는 이곳에서 정말 그가 말한 폭행이 벌어지고 있는지 2010년 입국한 A씨(42세), 2009년에 입국한 B씨(34세), 2012년 입국한 C씨(46세),탈북자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 이번 탈북자로 위장한 화교출신 유우성의 간첩사건에 대한 탈북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A: 이번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고 남한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그가 간첩인지 아닌지는 국정원에서 철저히 조사하면 밝혀진다. 유우성은 탈북자가 아니라 명백한 외국인이며 출신을 숨기고 남한으로 온 범죄자이다. 이 죄만으로도 그는 당연히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한다.

    B: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북한에서 살았다. 김정은이 정권에 오르면서 국경경비도 한 층 심해지고 행불자들에 대한 보위부의 감시도 배로 늘어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행불자로 처리됐을 유우성은 왜 북한으로 다시 들어갔으며, 무사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북한실정을 잘 알고 있는 탈북자들의 기존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C: 회사에서 사람들이 유우성의 간첩사건을 이야기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 자신도 간첩으로 오해할 것 같아서 머리를 들 수 없다. 한편 같은 민족이라고 대우도 해주고 따뜻하게 대해 준 남한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탈북자도 아닌 유우성의 이름 앞에 탈북자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제일 큰 불만이다. 그의 간첩활동은 시간이 지나면 증거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우선은 그의 존재를 부를 때 제발 탈북자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합신센터에 있을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탈북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을 이야기 해달라.

    A:  처음에는 국정원이라고 해서 많이 두려워했다. 북한에서 안기부에 대한 악담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천공항에 내려 제일 먼저 마중 나온 국정원 직원의 따뜻한 인사말에 예견했던 두려움은 조금씩 가셔졌다.

    B: 남한으로 올 때 6살짜리 아들과 같이 왔다. 아들 아빠가 한족이라서 괜히 민족차별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했지만 아들이 아프면 선생님이 주변 병원에까지 데리고 나가 치료를 해주었다. 물론 수많은 인원을 수용하다보니 규율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강압적으로 폭행했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 조사과정에 당했던 본인들의 심정을 이야기 해달라.

    A: 처음에 대기반에서 생활하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단독 심문을 받을 수 있는 1인실로 옮겨진다. 주말에는 신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5일 정도 걸린다. 혼자 있으면 고독한 점은 있으나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조사내용은 탈북 연도와 그 이유이다. 고향이나 가족관계 등 북한에서 살아왔던 일들을 물어본다. 신문과정에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에 팔려오게 된 사연과 공안에 잡혀 북송 당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중국에 살 때 두 번씩이나 공안에 잡혀 북송당한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신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 합신센터에서는 폭행과 구타로 뒤섞인 북한보위부 신문과는 차원이 다른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딱딱한 말투와 엄격한 빛이 감도는 조사관의 이미지에 다소 겁을 먹은 것은 사실이다. 첫날 조사에는 그냥 실무적인 물음과 답변으로 끝났다. 다음날 조사관이 벽에 걸린 조선 지도를 가리키며 고향을 보고 싶으면 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조사중간마다 커피도 타주고 사회에 나가면 잘 정착할 수 있는 조언도 많이 해 주었다.

    조사관의 속 깊은 말에 소리 내어 울었다. 만약에 조사관이 무섭고, 그가 폭행을 가했다면 아프고 두려워서 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따뜻한 그의 말 속에서 떠나온 고향을 그렸고 지금부터 내가 살아야 할 새로운 고장에 대한 두려움은 다소 사라졌다.

    C:  국정원에 있을 당시 나는 거짓진술을 해서 다른 사람보다 조사기간이 길어졌다. 거짓진술의 원인은 정부에서 주는 정착금 문제 때문이다. 한국에 먼저 온 지인으로 부터  탈북 후 중국에서 살았던 기한이 10년 이상이면 정착금의 줄어든다고 해서 탈북날짜를 거짓으로 진술했다.

    탈북 날짜와 중국에서의 생활을 진술하는 과정에 거짓진술이 드러났다. 조사관은 거짓진술을 하면 그에 대한 징벌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조사기일이 길어지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1인실에 있었다.

    조사관은 "우리가 탈북자들을 조사하는 것은 의심을 앞세워서가 아니다. 신원파악이 불가능한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심문은 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데서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담당조사관은 일 주일 동안 내가 진술한 내용이 거짓진술로 밝혀지자 화를 냈던 적은 있다. 그렇다고 구타를 한다거나 폭행을 가한 적은 전혀 없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내가 왜 거짓진술을 해서 조사관을 화나게 했는지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 

    - 본인이 당하지 않았지만 주변탈북자들이 폭행이나 특수한 심문을 강요당한 적은 없는가?
     
    A: 동기 중에 북한에서 잘 살다 넘어 온 동기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북한에서 잘 살다왔다고 진술하면 탈북동기를 의심할까 두려워 거짓진술을 했다. 그는 국정원을 감시하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북한보위부처럼 생각했다.

    결국 조사과정에 거짓말탐지기검사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 거짓말탐지기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속으로 많이 두려웠다고 한다. 만약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진짜 거짓말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아무런 제재도 없이 남한에서 잘 살고 있으며, 국정원에 있을 당시 거짓진술을 했다고 폭행당하거나 구타를 당한 적도 없었다. 10명 가까운 사람들과 석 달 동안 한 호실에서 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B: 국정원 합신센터에는 수 백 명의 탈북자들이 한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호실배치를 할 때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치해준다. 그러다보니 자기 호실을 이탈하여 다른 호실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저녁취침시간이 지정되어있는 센터에서 무질서한 호실유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가끔 점검 시간 전 다른 호실로 무질서하게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큰 소리로 규율을 세우곤 했다.

    C: 합신센터에 있을 당시 탈북자구성을 보면 독신이 제일 많다. 간혹 아이만 데리고 들어온 여성들도 적지 않게 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보니 복도까지 울음소리가 울린다. 담당선생님이 부모들을 데려다가 애들 때문에 지적을 한 적은 있다.

    또한 국정원은 운동하기 편리한 단체 체육복과 운동화를 신게 되어있다. 그런데 일부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입고 온 옷과 굽 높은 신을 신고 다니면 엄하게 질책했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