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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최고의 ‘휴민트’를 잃었다

국정원 창설 이래 최고의 ‘휴민트’..일심회-왕재산 사건 해결 [대북 정보집산지] 선양, ‘휴민트망 구축’에 온 힘 쏟아

박수근 전 국군정보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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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4-02 09:25 수정 2014-04-02 17:47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다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권모 과장이 지난 22일 발견돼 현재 서울아산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수근 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전 국군정보사령관)


[대한민국]
최고
[휴민트]를 잃었다


▲ 박수근 전 국군정보사령관.ⓒ 뉴데일리 DB

대북첩보작전의 핵심 자산인 [휴민트](인적정보자산, HUMINT)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미화하는 것이 아님을 전제한다.
국정원 권모 과장.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는 수행하고 있던 기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다.
자신의 안위부터 보호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기밀 보호를 목숨보다 중시했다고 한다.
자신이 용도폐기처분된 것에 대해서도 괴로워했다.

그가 더욱 참기 어려웠던 것은 일에 대한 욕심을 내다가 예기치 못하게 벌어진 실수 때문이다.
결국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탈북자로 위장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는 본말이 전도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돼 검찰의 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권모 과장은 베테랑 대공수사요원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음지에서 조국을 위해 묵묵히 일해 왔던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본의 아니게 조직에 큰 누를 끼치게 된 사실에 구차한 삶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미국의 CIA나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보요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익을 위한 정보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역시 활동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국익을 위한다는 대의가 있기에 조직의 실체를 까발리기 보다는 보호를 받아 왔다.

그리고 이들의 업무기밀 보호에는 국민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권 과장은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중국에서 [휴민트](인적정보자산)를 구축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스스로를 [선양 거점장] 즉, 북한을 들여다보는 [망루]라고 표현했다.

1986년 [깐슈사건] 수사관으로 보국훈장을 수훈했고, 2006년 [일심회사건], 특히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결정적으로 해결한 전문가였다.

국정원 창설 이래 최고의 정보관 중 한명이란 평가를 받던 최고의 대공요원이었다.

선양이 어떤 곳인가? 중국 동북지역으로 북한 왕래자가 많은 곳이다.
군사적으로는 40만명의 병력을 보유한 중국인민해방군 선양군구가 있어 북한접경지역을 담당하며,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2월말에는 미군 고위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미 육군참모총장 오디어노 장군이 이곳을 찾아,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미-중 양국의 군 당국간 협력체제 가동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폐쇄된 북한체제의 특성상 [인적자산(휴민트)]에 의한 정보수집은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선양은 인권운동가, 선교사, 대북사업가가 모이는 [정보집산지]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체포 위험과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곳이다.
감시와 미행이 일상화 된 곳, 권 모 과장과 같은 [블랙요원]들에게는 주요 작전지역이면서 동시에 적지나 같은 곳이다.

휴민트(HUMINT)는 사람과 정보의 합성어로, [사람]에 의한 첩보활동을 뜻한다.

옛날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는 첩자양성에 전쟁승패가 달렸다며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였는데,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유명한 [간첩운용지침]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CIA와 소련 KGB는 상대방의 깊숙한 곳까지 간첩을 심었다.

미 육군의 서머스 대령은 저서 [미국의 베트남전쟁 전략]을 통해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결국 패배한 이유를 스파이전쟁에서 찾았다.

당시 월남에는 월맹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원과 인민혁명당원 5만명이 암약하고 있었다.
1975년 월남 패망의 결정적인 요인은 사상전 패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0년대초 이라크전쟁 때 다국적 군이 이라크도심의 핵심시설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폭격하는 장면을 안방에서 쇼를 즐기듯 TV 화면을 통해서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선제 정밀타격은 이라크에 심어둔 [휴민트]를 통해서 정확한 표적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계최강의 미국도 전 세계 곳곳에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면서 [휴민트망] 구축 및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잘 키운 정보원 한명이 열 개의 첩보위성 안 부럽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대치국가이다.
쓸 만한 정보원 한명을 양성하려면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으로 [대북 정보집산지]로 알려져 있는 선양에서 스스로를 [거점장]이라고 표현했던, 국정원 창설 이래 최고의 [휴민트]를 잃었다.
가장 중요한 지역의, 가장 중요한 [휴민트망]이 사실상 붕괴됐다.

냉정을 되찾았으면 한다.
여론의 비난에 직면한 국정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성숙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너져 내린 대공수사팀의 팀웍을 복원해야하고, 이들의 사기진작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도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언행인지를 되돌아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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