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경찰서 탈북자 합동차례, 경찰의 온정·탈북자의 눈물 어우러져추석 앞두고 아사하신 부모님 생각 "이런 음식이 그 때 있었다면…""북한은 정말 미개한 국가" 민생치안보다 수령옹호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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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이맘때면
    평양에 있는 저의 어머님 묘소가 무척 그립습니다.

    세상에 한 분뿐인 훌륭한 어머님이었기에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도
    생전에 못한 효를 후회하며 울고 또 웁니다.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에 즈음하여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은
    제가 평생토록 지고 갈 또 하나의 고통입니다.

    이런 아픈 마음을
    올해에는 멋진 제복을 입은 분들과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여성경찰서장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 ▲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5층 체육관에서 탈북자들이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 조선닷컴
    ▲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5층 체육관에서 탈북자들이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 조선닷컴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마포경찰서 이은정 서장님과 직원들이
    관내 탈북자들 중 어려운 사람 20여명을 초청했습니다.

    경찰서 5층 체육관에서 합동차례를 갖는
    조촐한 행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경찰관들이 십시일반 얇은 지갑을 열어
    주변시장에서 구입한 제사음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꾸며진 차례상을 보니
    고향에 계시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 고향 평양에서
    보통시민들이 꿈도 꾸지 못할 [진수성찬]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누리고 있는 일상의 생활이
    얼마나 고급스럽고 값진 것임을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먹을 것이 흔한 이곳 남한에서
    매일 푸짐한 음식을 보면서

    고향 청진에서 10년 전에 굶어죽은 부모님이
    마냥 생각난다는 40대 중반의 여인,

    협동농장에서 옥수수 한 이삭 훔친 것이 죄가 되어
    노동교화소에 끌려 간 아들을 생각하면
    꿈에서도 피눈물이 난다는 60대 할머니,

    모두 조용히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는 서장님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북녘 땅을 향해 조상님들께 큰 절을 올리고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음복을 하면서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다소 침통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서장님이
    이렇게 묻습니다.

    - 이은정 서장:

    "림 작가님!
    북한의 경찰서에도 체육관이 있나요?"

    - 림일 작가:

    "정확히 말씀드리면
    [체육관]은 없고 [혁명연구실]이 있습니다."

    제 답변에 서장님은 또 "그게 뭐예요?"합니다.

    북한에는 모든 보안서(경찰서)에
    [김일성 혁명사상 연구실]이 있습니다.

    가령 보안서가 5층짜리 건물이라면
    3층은 전부 [혁명연구실]입니다.

    이곳은 김일성의 흉상과 어록, 사진 등이 있는 여러 개의 방인데
    보안원(경찰관)들이 여기서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김일성 사상학습과 강연, 생활총화 등 온갖 정치회의를 합니다.

    그러니 북한의 보안원들은
    민생치안보다 수령옹호 업무가 가장 먼저입니다.

    다시 말해 도둑이 침입한 범죄현장수사에서
    김일성 사진과 전집 등의 안전 확인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일상적으로 문단속을 잘 했어야지요."

    이것이 제가 살았던 북한의 현실입니다.

    저의 설명을 들은 서장님이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미개한 국가에서 사는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면
    저는 막 미치겠습니다.

    모두 같은 심정인 동료 분들이 저의 등을 떠밉니다.

    자신들의 감사한 심정을 꼭 표현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울마포경찰서 이은정 서장님과 직원 여러분!

    고향에 못가는 저희들에게 차려 준 이 차례상을
    북녘 땅에서 한 끼라도
    배불리 밥을 먹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소원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난 우리의 부모님들과 형제분들이
    꼭 받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관들인 여러분들이
    바로 저희들의 부모님이고 형제들입니다.

    오늘의 이 사랑, 이 은혜 오래도록 잊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모범적인 시민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 ▲ 탈북작가 림일 ⓒ 뉴데일리DB
    ▲ 탈북작가 림일 ⓒ 뉴데일리DB

    ※ 탈북작가 림일 =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근무했다.

    이어 1996년 쿠웨이트 주재 '조선광복건설회사'에서
    노동자로 파견돼 일하던 중 탈출해
    1997년 3월 한국에 왔다.

    대표작 ‘소설 김정일 1,2’ 는
    독재자 김정일의 잔인한 면모를 극대화한 소설.

    또한 평양의 거리와 건물,
    가정집 내부와 국영상점,
    시장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북한의 현 주소를 알리고 있다.

    '평양으로 다시 갈까?' 는
    그가 서울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엮은 책이다.

    평양 출신으로서 전혀 다른 세상인 서울에서 살면서
    북쪽 사람 입장에서 다르게 보이는 세상사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