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의 운명

    로버트 김

  • 동양에서 제왕학(帝王學)의 교본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아래 서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실패하지만 역사를 알고 생각할 줄 아는 자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 북한은 개성공단을 잠정폐쇄한다고 하면서 거의 5만 명의 직장을 강탈하고 그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될지도 모르는 개성공단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공단이 위치 해있는 개성의 역사를 한 번 되새겨보고 앞으로 개성이 어떻게 되어 갈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개성(開城)이라는 곳은 고려가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기 전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원래는 백제 땅이었다가 고구려의 팽창으로 고구려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며 그 후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할 시기에는 신라 땅이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이곳은 송악(松岳)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 후 송나라와의 활발한 교역 때문에 상업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출신의 왕건이 서기918년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도읍으로 삼고 474년간 고려의 수도로서 기능을 하면서 이 도시 이름은 송악에서 개성(開城)으로 불리다가 개경(開京)으로 불리게 됩니다. 서기1010년 요나라가 침입하고 1231년에는 몽고에게 강점당하여 고려가 강화로 천도까지 했습니다. 그 후 60년 만에 몽고와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했는데 조선의 태조이며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개경 즉 개성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성은 당시 주요 상업교역지로 남아있었는데 이는 개성상인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이 개성상인은 조선후기에도 중국과 일본과의 국제무역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며 이들은 조선독립운동과 의병운동의 자금줄이 되기도 했는데 일제(日帝)의 강제합병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근면성, 성실성 그리고 상인정신은 우리나라를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한일합병은 1910년 8월에 이루어졌는데 그 후 우리국민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을 못 쓰게 하였으며 교육도 일본말로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씨(姓氏)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면서 일본은 조선을 멸족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정부의 눈을 피해 전국방방곡곡과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우리민족의 존재를 알리고 독립의 염원을 해외만방에 알렸습니다. 그러다가 일본경관들에게 들키면 그들은 죽음으로 대신했습니다.

    합병된 후 35년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얻게 되는데 그 후 3년 간 연합군의 군정 하에 있다가 1948년에 38선을 가운데 놓고 남과 북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북은 소련의 스탈린의 개인교습을 받은 김일성이 평양을 수도로 정하고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을 그곳에 세웠는데 그 당시에는 인공기가 없어서 얼마간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38선 이남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이승만 박사가 맥아더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도움으로 일제 때 경성(京城)이라고 불리던 서울에 수도를 정하고 대한민국민주주의공화국(ROK)을 탄생시켜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남한을 적화하려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사를 창단하여 2년간 남침훈련을 시킨 후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을 침략했습니다. 그러나 이 침략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불법이라고 규정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엔참가국들이 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3년간 전투에서 수많은 전사자와 민간인들의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북한과 유엔군 사이에 정전협정을 맺게 되었습니다. 양측은 싸우던 곳에 총을 내려놓으니 38선은 없어지고 휴전선 혹은 군사분계선(DMZ)이 대신하면서 이남에 있던 개성이 북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성은 파란만장의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이제 개성공단의 운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개성공단은 개성공업지구라고도 하는데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있으며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10km 서울에서 차로 1시간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 공단은 2010년 금강산관광소를 북한에 몰수당한 현대아산과 북한과의 합의로 2000년에 시작되었는데 2004년에 15개사의 입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123개사가 입주하고 있습니다. 거의 5만 명에 달하는 북한근로자와 800명의 남한 근로자가 함께 일하면서 이 공단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유류 그리고 모든 자재와 근로자들의 숙식비와 교통비는 남한 측이 부담하고 있으며 북한근로자의 임금은 북한정부가 현금으로 매월 8백만 달러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들의 ‘존엄’을 건드렸다고 북한은 개성공단을 잠정폐쇄했습니다. 잠정이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말인데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를 믿고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소와 같은 운명에 처할 지도 모릅니다.

    4월8일자 월스트리트져널(WSJ)의 사설에서 김정은 정권연장을 도와주는 개성공단을 북한 스스로 차단한 만큼 이 기회에 영원히 폐쇄해야한다고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근로자를 그곳에서 철수 시키고 개성공단 입주업체에 투자손실을 보상하는 것이 북한정권의 버팀목을 제거하는 것 보다 적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 남한을 호시탐탐하고 있는 한 아마 이것이 정답(正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성은 기막힌 운명의 도시입니다.

    로버트 김(robertkim0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