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한 안철수' 등장, 후진정치 개혁의 꿈


    안철수 대통령 출마 드라마가 끝났습니다.
    안철수 현상이 한국 정치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또한 놀라움으로 이 현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역사가 변화하려면 어떤 계기를 통해 국민적 열망과 에너지가 솟아오르든가, 아니면 지도자가 그 열망과 에너지를 솟아오르게 하는 비전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 변화에 대한 열망과 열기는 가장 크게는 1945년 해방 당시를 시작으로 한국 역사에서 여러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모멘트는 25년 전 6.29였습니다. 당시는 시민들의 힘으로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으나 김대중 김영삼 두 야당 지도자가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해 역사적 모멘트를 개혁의 동력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29의 모멘트가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구현시키는 열망이었던 것과 달리, 안철수 현상은 정치 풍토, 정치 문화를 개혁하라는 열망이었습니다. 안철수가 국민들 잠재의식에 불을 지폈고, 안철수를 통해 국민적 열망이 불붙었습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선진 대열에서 주목받고, 한국 문화가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강남 스타일까지 세계인의 각광을 받는 마당에 한국 정치만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화의 목마름...그러나 그는 뱃심과 리더십 없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 개혁에 대한 목마름과 열망, 선진화로 가는 국민적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가 역사 변화의 에너지를 결집 시키는 능력과 자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안철수 현상 같은 정치적 태풍은 쉽게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논리나 이성을 능가하는 감동과 갈망입니다.

    안철수는 한국 정치 풍토에서 보기 드문 탁월한 품성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 개혁에 자신을 던지려는 열망과 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 세 후보 가운데 저는 안철수씨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안철수가 한국 정치 문화를 혁신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씨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한 뒤, 그가 음해와 왜곡과 극단주의가 풍미하는 한국 정치판을 개혁할 강인함과 뱃심과 리더십이 있을까 하는 불안이 고개 들었습니다. 안철수는 너무 선하고 착해 보였습니다.

    그가 젊은이들과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게 하는 추상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능력은 있었으나, 국민적 열망을 이끌고 갈 구체적 비전 정립되질 않은 것 같았고,  그가 처음에 표방했던 중도 정치의 철학에 구체성이 약해 보였고, 민주당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안철수 현상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 능력과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품격만으로도 저는 안철수씨에 대한 기대를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 '단일화' 자체가 잘못 된것...여론조사는 더욱 넌센스


    그러나 안철수씨가 문재인씨와 단일화 협상을 시작하면서 제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안철수씨가 문재인씨와 야권 후보를 단일화 할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민주당에 입당해서 경선해야 했습니다. 안철수씨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은 새누리당, 민주당으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한국 정치 개혁을 위해 독자적인 출마를 한 것입니다. 안철수 현상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한국 정치가 거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국민적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마를 한 이상 자기 길을 계속 가야 했고, 국민들을 설득해서 자기 목적의 성취를 위해 혼신을 다해야 했습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선진 대열에서 주목받고, 한국 문화가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강남 스타일까지 세계인의 각광을 받는 마당에 한국 정치만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 개혁에 대한 갈망과 열망, 선진화로 가는 국민적 자존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철수씨가 문재인씨와 단일화 협상을 하는 것은 안철수씨의 출마 명분을 상실시키는 것이고, 안철수씨에게 비전과 철학이 분명치 않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단일화를 하면 결국 정치 개혁은 연목구어가 될 것입니다. 더욱이 단일화 협상을 여론 조사로 한다는 것에 저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여론 조사로 야권 후보를 단일화 하자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정치 문화이고, 이런 것에 대해 비판이나 제동이 걸리지 않는 정치 풍토가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단일화 협상의 가장 큰 쟁점과 걸림돌이 여론 조사 질문서였을 만큼, 서로의 지지도가 가늠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여론 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 여론조사도 착오-실수 반복하는 판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수십 개의 여론 조사 기관이 모든 기량을 다 동원해서 여론 조사를 해도 그 수치가 크게 달라서 여론조사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갤럽이나 라스무센을 비롯해 권위를 자랑했던 여론 조사가 크게 틀려서 신뢰를 실추시키고 망신을 당할 지경이었습니다. 오랜 경험과 연구를 해 온 미국 여론 조사가 이렇게 큰 실수와 착오를 하는 마당에 아직 여론 조사의 기반이 단단치가 않은 한국에서 막상막하의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이없는 경선 방법으로 한국 정치의 기형성의 일면입니다.

    안철수씨가 물러가면서 선택은 문재인 박근혜로 압축되었습니다. 문재인씨의 긍정적인 점은 오늘 한국의 진보나 좌파 세력에게 부족한 겸손함과 성실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재인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질이나, 리더십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언어 능력이 부족하고, 시대를 이끌고 갈 비전과 철학이 보이질 않고,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와 그늘을 씻어버리지 못했습니다. 문재인은 지도자의 이미지 보다는 참모와 비서의 이미지, 정치 테크노크라트의 한계를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정치 기술자인 문재인씨가 노무현을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그를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노무현 세력, 좌파 세력의 영향력을 탈피하지 못할 것이고, 개혁의 대상인 민주당의 입김을 벗어 날 수 없을 것입니다. 



  • 노무현 그림자 문재인, 한미FTA 뒤집고 NLL 거래설 위험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완벽성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이나 결함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보완해 가면서 현 시대에 국가와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정책 실현을 위해 항상 반대자가 있다는 것을 유념하는 실용성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기 신념과 이념을 접어두고 타협하고 절충하는 열린 마음과 신축성,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문재인씨는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통과되었고, 자신이 참모로서 거기에 일익을 담당했던 한미 무역자유협정, FTA(Free Trade Agreement)를 지금 와서 반대하고 폐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한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을 지금 와서 번복하는 것은 이중적인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집권하고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인식해서 찬성을 했으면서도, 지금 지지 세력의 지지를 받기위해 자기 결정을 뒤집는 것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기회주의적이고, 신뢰성을 상실시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관과 안보관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 거래설이 논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의 적합성을 더욱 의심받게 합니다.

    지구촌 경제의 흐름과 거기서 경쟁해야하는 한국의 장래를 헤아릴 수 있는 지도자라면 FTA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사 노무현 정부가 이것을 반대했었더라도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용기와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통과된 것 까지 뒤집으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문재인씨는 지도자의 자질을 의심 받게 합니다. 만약 그가 속으로는 그것을 지지하면서 지지 기반 때문에 입장을 바꾸었다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더욱 떨어집니다. 문재인씨는 너무 진보 이념의 틀에 갇혀 있습니다.  

    신념-비전 실현위해 남북전쟁도 피하지 않은 링컨

    최근 미국에서 개봉되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이라는 영화에서 신념과 비전의 위대한 정치가 아브라함 링컨이 자신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노회함과 이중성이 정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노예 해방이라는 신념을 위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남북전쟁을 치룬 신념의 정치인의 이런 모습이 교활하고 위선적으로 지적될 수도 있지만, 국가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순수까지 더럽히는 위대한 정치인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대와 신념의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러한 과도기가 지나면 신념은 걸림돌이 됩니다. 정치의 핵심은 자기 신념과 철학을 지키면서도 더 큰 비전과 국가를 위해 타협하고 양보하는 신축성과 유연성입니다. 한국에서 신념의 정치가로 가장 성공하고 실패한 지도자가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해결하는 경제 건설이 국가와 국민의 최대 명제라는 신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나, 국가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영구 집권이 필요하다고 하는 잘못된 신념으로 유신 독재를 통해 그의 치적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연좌제의 빗장을 풀다


    박근혜씨에 대한 제 선입견은 냉소와 거부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정치 입문을 했을 때,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이 저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었습니다. 유신을 극력 반대하고, 전두환 정부를 미워하고, 광주항쟁으로 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 사람으로 저는 박근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에 반사적인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적 각광을 받는 것에 대한 냉소와 거부감은 박근혜씨가 정치권에서 오랜 좌절과 비바람 속에서 견디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비록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 출발을 했지만, 아버지의 후광과 그늘을 극복해 가는 역량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변화가 박근혜를 아버지로부터 놔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혈연의 인연에 매달려 있는 제 사고와 의식의 한계에 회의하기 시작했고, 제가 혐오했던 연좌제에 저 또한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딸은 딸이 아닌가, 아버지의 과거에 딸의 현재와 미래를 묶어 둘 수 없지 않는가, 하는 정치 연좌 의식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그 자신이 연좌제로 고통 받았고, 그러했던 그 자신이 사상 연좌제를 통해 정치적 탄압을 했지만, 박정희 유신을 비판했던 사람이 그 딸 박근혜를 아버지에게 묶어 두려는 것은 자기모순이고 낡은 정치 유산이란 자성이 제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에 걸었던 기대, 문재인보다 박근혜

    박근혜씨에게도 정치적 비전이 뚜렷하게 보이질 않았고, 그의 가치관이 저와 다른 것이 많았지만, 그가 정치하는 모습이 제 생각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박근혜씨 에게는 기성의 한국 정치인과 다른 진지함, 성실성, 진정성이 있어 보였고, 경망스럽거나 술수적인 것이 없어 보이고, 사고와 언어에 절제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확고한 애국심, 자기 갈 길에 대한 소명감 같은 것이 있어 보였습니다. 박근혜씨도 타협과 양보가 부족한 모습이었으나, 최근 대통령 후보자가 된 후, 과거의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과거 박정희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의 행동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열고 변해가는 모습이 저의 생각을 결단케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서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그동안 부패와 음모와 권모술수로 병든 남성 정치인 풍토에 새로운 여성 정치문화를 수혈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 수 있게 했습니다. 안철수에게 기대를 걸었던 개혁의 가능성이 문재인 보다 박근혜가 더 많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문제인은 좌파적인 이념으로 변화를 추구하려 하기 때문에 정치 풍토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민주당의 낡은 정치 풍토에 이끌려 갈 것으로 보여지고, 박근혜는 진보 정책을 접목시키는 것과 함께 정치 풍토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저는 느낍니다. 박근혜에게는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순수와 품격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동안 박근혜씨가 초지일관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이 기대에 대한 신뢰를 더 해 주었습니다. 비서였던 문재인이 노무현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딸 박근혜는 박정희를 극복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제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장군을 역사에서 만난 것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 해, 1961년 5월 16일 새벽, 저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웅성웅성 둘러서 있는 동네 아저씨들 틈에서 아나운서의 혁명 공약 낭독을 가슴 설레며 들었습니다. 군사 쿠데타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군사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16세 된 소년이 무슨 정치적 식견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 저의 생각은 몹시도 가난했던 당시 제 주위 의식의 반영이었고, 기성 정치인에 대한 환멸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입니다. 4.19 혁명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무절제와 무분별의 데모 속에 감격이 환멸로 변한 가운데 가난했던 사람들은 빵이 시급했습니다. 저는 박정희가 쓴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을 탐독하면서 박정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학원가를 휩쓸고,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한일 협정 시위에 앞장섰을 때, 저는 한일 협정을 찬성하는 외로운 이단아였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변한 것은 3선 개헌 부터였고, 유신이 선포되면서 저는 격렬한 박정희 반대자가 되었습니다.

    한 때, 진보주의자였던 저는 많은 사상적 방황을 하면서 서서히 중도의 길을 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가슴과 사고에는 늘 보수와 진보의 두 이념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미국 정치에서도 공화당 민주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른바 독립 투표자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보수 진보의 이념에서 탈피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이념이 배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 박정희와의 화해 어떻게? 산업화+민주화 화해로 선진화!

    한국 정치와는 멀어졌지만, 제 가슴에는 늘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 있었던 박정희에 대한 극단적인 두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국의 근대화와 조국의 민주화에 함께 열광했고, 거기에 제 젊은 시절의 열망과 열정이 함께 있었기에 제 철학에서 박정희의 산업화 독재와 화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제 철학에서 박정희와 화해하고, 근대화와 산업화가 화해한 바탕에서 조국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제 내면의 심리적 화해의 실마리를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비극적으로 잃었던 박근혜를 통해, 한국 정치의 과거와 현재가 화해하고, 산업화와 민주화가 화해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역사의 상처를 아물리고, 화해를 통해 조국 정치가 도약하고 선진 정치로 웅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근혜씨가 아버지의 성공한 신념의 품성을 계승받고, 아버지의 실패한 신념의 잘못을 극복할 수 있다면, 역사에 공헌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씨가 이런 기대에 부응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박근혜를 통해 저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제 희망과 기대가 옳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 마음에 박정희와 화해하고 미래의 조국이 더 큰 도약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박근혜씨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국에서 투표권은 없지만 마음의 성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