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복판서 울려 퍼지는 아리아의 물결상인․손님 등으로 위장한 가수들 깜짝 공연스페인 시장서 공연 각국 잇달아 벤치 마킹
  • ▲ 스페인 발렌시아 (Valencia)의 중앙 시장 (Central Market)에서 벌어진 오페라 ‘플래시 몹’을 담은 동영상 ⓒ 유투브 동영상 캡처
    ▲ 스페인 발렌시아 (Valencia)의 중앙 시장 (Central Market)에서 벌어진 오페라 ‘플래시 몹’을 담은 동영상 ⓒ 유투브 동영상 캡처
     

    손님들로 북적이는 어느 전통시장, 과일가게 점원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 그것도 알프레도의 아리아다. 쥬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타아’의 남자주인공이다. 어디선가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들려온다.

    주변 손님들은 엉뚱한 상황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는 얼굴이다. 테너와 소프라노는 아예 함께 춤을 추며 대화를 하듯 광장으로 나오면 어디선가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바리톤 남저음으로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때 맞춰 옆 가게 채소 파는 아주머니가 시장통으로 나서며 사연을 떠벌리고 식당 종업원이 시원한 목청으로 알프레도의 친구 노릇을 할 즈음이면 유모차를 끄는 엄마도, 신문을 읽고 있던 손님도 차례로 화음을 맞추며 ‘라 트라비아타’의 비극을 완성한다.

    “어디서 이 목소리가 들리지? 어디지?”하며 노래를 따라온 사람들로 시장은 어느새 가득찬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행운의 공연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거나 몸을 흔들기도 하고 ‘축배의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한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오페라가 마무리되자 모든 관객들이 기립하듯 열정적으로 박수를 친다. 갑작스러운 감동으로 눈물을 보이는 여성도 보인다.

    2009년 11월 13일 스페인 발렌시아 (Valencia)의 중앙 시장 (Central Market)에서 벌어진 오페라 ‘플래시 몹’을 담은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N3sLHPjkpNE)이다. 예술의 힘이 전통시장에 모인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군중을 사로잡는 현장이다.

    이 흥미로운 광경은 전통시장을 무대로 삼은 오페라단의 플래시 몹이다. ‘플래시 몹’이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 장소에 모여 동시에 춤을 추거나 깜짝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을 말한다.

    클래식 공연계에는 이런 ‘깜짝 공연’이 자주 벌어진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은 세트럴 파크에서 해마다 ‘공원 오페라(Opera in the Park)’를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미국 필라델피아 오페라 컴퍼니와 네덜란드 오페라단은 쇼핑몰에서 오페라 공연을 플래시 몹 형태로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클래식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것이지만 이를 맞은편에서 보면 전통시장이 오페라 공연을 유치한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오페라와 전통시장이 주민과 관광객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을 준 것이다.

    이른바 대중과 고급문화를 잇는 각별한 문화마케팅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우리 전통시장에도 이와 비슷하게 공연을 활용한 사례가 많다. 지난 달 31일 서울 황학동 중앙시장에서는 ‘황학동별곡, 시장의 소리가 열린 날’이라는 공연이 열렸다.

    예술가,주민,상인 400여 명이 힘을 합쳐 세 달간 준비한 축제로 주민과 상인들이 직접 제작한 200여 개의 등공예 점등식, 윤매례 판소리 명창의 공연, 상인 100여 명의 대합창, 예술가들의 오픈스튜디오와 전시회 등이 펼쳐졌다.

    금천구 남문시장은 예술가 창작공간인 금천아트캠프, 서울시 시범사업인 마을예술창작소, 예술과 기술을 접목하는 금천생활 속 창의공작플라자, 주민들로 구성된 축제추진위원회가 추진하는 벚꽃하모니축제, 문화존 거리공연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전통시장의 공연 문화는 아직 지역적이고 아마추어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 오페라 플래시 몹’처럼 보다 파격적인 문화 마케팅이 시장에 활기를 줄 것이라고 진단한다.

    “전통시장이 편리함이나 상품의 가격·품질로 대형마트와 경쟁하려고 한다면 이미 승부는 결정 나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도 문화 사업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지만 SNS시대에 맞게, 무엇보다 외부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오페라 플래시 몹’같은 깜짝 공연을 접목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 나라에 형성돼 있는 전통시장 방문을 원한다. 그것은 그 나라의 생활문화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는 요즘, 우리의 전통시장도 특유의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문전성시 사업단 김종대 단장 

    “전통시장과 어색했던 고급문화를 도입해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시기가 온 것 같다. 시장 내에서 ‘오페라 플래시 몹’이라는 공연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머지않았으면 좋겠다.”
    -추계예술대 정원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