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다니던 병장, 전역 연기하고 ‘전문하사’ 지원병사들 “동생에게 ‘우리 부대 좋다’고 오라고 했다” 자랑
  •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군 생활. 실전이 없는 상황에서 군 생활 중 가장 어려운 건 수백 km를 걷는 행군도, 무거운 장비를 드는 것도, 고된 삽질도 아니다. 바로 ‘내무반 생활’이다.

    이런 ‘내무반 생활’이 앞으로는 영영 사라지게 됐다.

    기자는 1992년 군번이다. 과거 군 생활을 기억하면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이 걱정하는 게 상당 부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언론이나 '강제징집당했던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 '자칭 인권단체'가 말하는 '그런 구시대 군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어느 날 육군 8사단 136기보대대

    지난 7월 27일 평균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던 여름,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육군 8사단 136기보대대를 찾았다. '요즘 군대가 얼마나 달라졌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부대에는 어떤 '행사'나 '지침'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사진도 '몰카'를 찍다시피 했다.

    안내를 맡은 사단 공보장교 노형빈 중위는 136기보대대 병사들은 전날까지 훈련과 검열을 받느라 지친 상태라고 했다. 하기야 30도를 넘는 폭염까지 겹쳤으니 누가 안 힘들겠는가.

  • ▲ 스마트폰과 영상통화가 가능한 '페이스 타임'용 공중전화. 이를 포함해 대대 막사 내에 공중전화가 49대 설치돼 있었다.
    ▲ 스마트폰과 영상통화가 가능한 '페이스 타임'용 공중전화. 이를 포함해 대대 막사 내에 공중전화가 49대 설치돼 있었다.

    학교 건물처럼 생긴 생활관은 각 층 별로 중대가 나눠 쓰고 있었다. 중앙 계단에는 환기를 위해 대형 선풍기 2대를 틀어놓고 있었다.

    한 층마다 12개의 생활관이 있었다. 생활관 내부는 1인용 침대 10개와 그 뒤에 사물함이 놓인 형식이었다. 각 생활관은 10명이 쓰도록 돼 있었지만 일선 부대의 특성상 보통 8명 정도가 생활 중이라고 했다.

    기자는 복무 중 ‘기자들’이랍시고 부대에 와서 기웃거리면서 반말이나 해대며 병사들 놀리고 ‘자세’ 잡게 하는 게 싫었다. 내가 그런 ‘짓’을 반복하게 될까봐 병사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몰래 기웃거렸다.

    생활관의 병사들은 다들 반바지나 체육복 차림이었다. 침대에 누운 병사, TV를 보는 병사, 기타를 치는 병사, 총기를 닦는 병사 등 제 각각이었다. 누구 하나 제재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의무대에 들렀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병사들은 자유롭게 의무대에 출입하고 있었다. 지난해 4월 입대했다는 군의관 이진용 중위를 만났다. 그는 ‘동기 생활관’의 효과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현재 대대 의무대 입실환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병사들의 부대 적응률도 높아졌고 생활관 내부 문제도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혹시 언론에서 온다고 미리 ‘모범답안’을 준비한 건 아닐까. 생활관 바깥에 있는 작업장을 찾았다. 8사단은 기계화 보병부대로 개편됐다. 136기보대대에도 장갑차와 각종 차량들이 있었다. 전날 검열을 마친 후라 병사와 간부들이 함께 차량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 ▲ 막사 바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비반이 있었다. 날씨에 관계 없이 정비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 막사 바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비반이 있었다. 날씨에 관계 없이 정비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4.2인치 박격포 견인 차량인 K532(Bv 206)에 냉각수를 채워넣는 병사들, K200 장갑차를 정비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정비 공장 한 켠에서는 일단 병사(?)들이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가며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정비를 감독하고 있는 염환규 준위(궤도 정비관)에게 ‘이 더운 데 병사들에게 삽질 시키느냐’고 물었다. 염 준위는 ‘풉’하고 웃으며 삽질하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기 6명이 삽질을 하고 있죠? 저 중에 4명이 간부입니다. 병사들은 힘들다고 지금 그늘에서 쉬고 있습니다. 보이시죠?”

    간부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삽질하고, 병사들은 그늘에서 쉰다? 실제 그랬다. 작업하는 곳 왼편에 네댓 명의 병사들이 삽을 놓고 뒤로 퍼질러 쉬고 있었다.

    “우리 부대가 기계화 보병으로 개편된 데다 신막사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일부 시설이 부족합니다. 지금 인화물질 저장고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저기 자재들은 모두 사단 공병대에서 얻어온 겁니다.”

  • ▲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아래서 '삽질' 중인 장병들. 저들 중 네 명이 '간부'다. 병사들은 쉬고 있었다.
    ▲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아래서 '삽질' 중인 장병들. 저들 중 네 명이 '간부'다. 병사들은 쉬고 있었다.

    장갑차를 들락거리며 정비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또 병사가 아니었다. 상사란다. 상사와 병장이 함께 정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매뉴얼이 놓여 있었다. 정비반을 안내하던 홍진권 대위가 설명했다.

    “과거에는 매뉴얼 하나 만들려면 간부들이 자비를 털어 만느라 고생했습니다. 출력할 곳도 없어 문구점에 맡겼죠. 이제는 모두 바뀌었습니다. 필요한 비용도, 자재도 모두 보급 받을 수 있습니다.”

    기계화 부대 장병들의 생활도 바뀌었다. 구타는 '안드로메다로 떠난 지 오래'라 했다. ‘옛날 군대’처럼 선임병은 쉬운 일, 후임병은 어렵고 고된 일을 맡는 것도 사라졌다.

    “이제는 장비 정비도 모두 매뉴얼화 되어 있습니다. 보통 장갑차 1대 당 1개 분대가 맡는데 각자 임무를 리스트로 만들어 정해놓았습니다. 한 번 맡은 임무는 이병 때부터 병장 전역 때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 ▲ 이날은 검열을 받은 뒤 장갑차를 정비하는 분대가 많았다. 사진 속에도 간부와 장병이 함께 정비를 하고 있다.
    ▲ 이날은 검열을 받은 뒤 장갑차를 정비하는 분대가 많았다. 사진 속에도 간부와 장병이 함께 정비를 하고 있다.

    생활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모든 게 예전과는 달랐다. 대대 목욕탕은 ‘병사용’으로 지정돼 있어 ‘병사’라면 누구든 언제나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었다. 대대 곳곳에는 화상 전화기 2대를 포함 49대의 공중전화가 있었다. 세탁실, 이발소도 별도로 있었다. 심지어 훈련 후 군화를 털 수 있도록 에어 컴프레서도 따로 설치돼 있었다.

    각 생활관마다 비치된 TV는 IPTV였다.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돼 있었다. 각 층마다 냉수와 온수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정수기도 5대씩 설치돼 있었다. 샤워실에서도 온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동기 생활관’의 핵심은 이런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출퇴근 하는 병영생활’과 병사 간의 금지행위 준수가 더 중요했다.

    ‘동기 생활관’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동기 생활관’의 컨셉은 같이 입대한 전우끼리 군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와 제도가 필요했다.

    먼저 8사단은 ‘구타와 가혹행위, 인격모독, 사적 제재, 욕설과 폭언, 성군기 위반’ 등 ‘5금 행위’를 지정, 병사들끼리는 물론 간부도 병사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했다. 특히 간부들에게는 “병사들에게 큰 소리 치기 전에 당신부터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엄명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를 통해 병사들끼리는 물론 간부들도 병사들에게 쓸데없는 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제도화했다.

    그 다음 제도화한 것은 ‘간부와 병사의 출퇴근 개념 정립’이었다. ‘동기 생활관’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시에 교육훈련을 시작하고, 일과가 끝나면 교육훈련도 끝나는 게 중요했다. 8사단 지휘부는 이를 위해 먼저 간부들에게 ‘늦게까지 일하는 건 무능한 것이다. 불필요한 야근은 그만 하라’고 명했다.

    이런 분위기가 간부들 사이에 퍼지자 병사들도 따라가기 시작했다. 8사단 지휘부는 이어 병사들에게 ‘VDA(Vision Develop Academy) 시간’이라는 걸 만들어 어떤 지시나 교육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훈련성과가 좋은 병사들에게는 교육훈련 열외나 포상휴가와 같은 인센티브도 줬다.

    ‘당근과 채찍’이 함께 주어지자 병영문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동기생활관’을 실시했다. 2달 단위로 끊은 동기들끼리 같은 생활관을 쓰게 하자 ‘알아서 챙기는’ 분위기로 변했다. 교육훈련이나 각종 측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기들끼리 서로 상의하고 머리를 맞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 우리나라 '군대'의 평일 모습이다. 상상이 가는가?
    ▲ 우리나라 '군대'의 평일 모습이다. 상상이 가는가?

    다른 현상도 나타났다. 분대원과 소대원들이 일과시간에만 만날 수 있게 되자 선임병이 후임병을 챙겨주고, 후임병이 선임병을 반가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기생활관’ 제도를 시행한 뒤 긍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났지만 8사단 지휘부는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불미스런 일’을 막고자 병사들끼리는 다른 생활관에는 방문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동기들이 모두 휴가를 떠나 홀로 남은 병사들이 외로워하면서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되느냐’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결국 행정반에 신고하면 다른 생활관에도 들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대신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생활관 지도간부’를 임명해 놓고 24시간 관리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제도 시행 3개월 만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병사를 ‘꼬드겨’ 물어봐도 모두 ‘동기생활관’ 제도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KAIST 출신 전문하사 “동기생활관이었다면 군 생활 더 잘 했을텐데….”
     
    백 대위는 마침 자신의 부하 중 KAIST 출신의 전문하사가 있다고 말했다. ‘KAIST 출신 부사관’을 만나러 행정반을 찾았다. 행정반에 들러보니 더위를 잠깐씩 피하려는 병사들로 와글거렸다. 에어컨이 있어서다. 그 틈으로 한재현 하사가 보였다.

    한재현 하사는 원래 올 초에 전역할 예정이었다. 해외로 MBA 유학을 떠나고 싶었던 한 하사는 원래 가정형편 등으로 유학을 포기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전문하사 제도를 알고서 지원했다고. 백 하사는 전문하사 생활을 통해 돈을 모은 뒤 MIT의 MBA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백 하사도 ‘동기생활관이었다면 좀 더 군 생활을 잘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입대했을 때 주변의 기대감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KAIST 출신이면 뭐든 다 잘 할 줄 알더라구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으니…. 지금 동기생활관으로 신병전입을 왔었다면 훨씬 더 적응 잘 했을 거 같습니다. 동기끼리 서로 격려도 되구요.”

    행정반을 나와 다시 생활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복도에는 연간 부대 훈련일정과 각 생활관 별 임무표, 불침번 근무표 등이 게시돼 있었다. 홍진권 대위의 설명이다.

    “생활관 마다 각자 맡은 업무가 있습니다. 예전처럼 청소할 때 계급별로 맡아 하는 게 사라졌습니다. 불침번 근무도 언제 누가 서는 지 모두 알게 돼 있고, 훈련일정도 공개해 휴가와 겹치지 않도록 스스로 알아서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 중위와 백 대위는 “136기보대대에는 전문하사와 형제가 함께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고 자랑했다. 가장 큰 원인이 ‘동기 생활관’ 제도와 여기에 맞는 병영문화 덕이라고 했다. 136기보대대장인 김상우 중령도 같은 설명을 했다.

  • ▲ 생활관 옆에 마련된 흡연공간. 여기서도 병사들끼리 장난은 칠지언정 서로 '군기'를 잡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 생활관 옆에 마련된 흡연공간. 여기서도 병사들끼리 장난은 칠지언정 서로 '군기'를 잡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침 오늘 전입 온 이등병이 19명입니다. 그 중 3명이 친형의 추천을 받고 이곳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자기 부대에서 군 생활 할 만하다고 추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됐겠습니까. 그런데 저희 부대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문하사도 136대대에서만 상반기에 4명 지원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자 ‘군 생활이 이 정도면 계속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백 하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이게 진짜 한국군대 맞나? 아, 배 아파!’ 사실은….

    정말 자유롭고 편하게 보였다. 미군이 부럽지 않았다. 과거 군 생활에 비해 가장 큰 차이는 병사들 간에 서로 서먹하거나 강압적인 부분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집합? 구타와 함께 이미 딴 세상으로 사라진 뒤였다. 생활관에서도, 담배 피우는 곳에서도, 정비작업을 하는 곳에서도 선임병과 후임병이 서로 장난치는 모습은 있어도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주눅 든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90년대 초반 군 생활을 할 때 교육훈련이 없는 날에도 ‘고참’이 부르면 이리저리 달려가야 하거나 각종 작업을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이등병 때와 일병 때 상병, 병장 눈치 보며 늘 긴장해 있던, 그런 모습을 여기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90년대 당시 동기들끼리 모였을 때마다 이야기하던, 꿈에 그리던 ‘선진 병영’이었다.

    그런데 8사단과 육군 측에서는 ‘동기생활관’ 제도를 시행하면서 ‘큰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회와 언론의 ‘삐딱한 시선’이었다. 특히 언론이 ‘동기생활관’의 편한 부분만 강조하면서 전투력이 손실되는 게 아닌가 하는 예비역의 비판이 비등해져 걱정이라고 했다.

    “예비역이나 언론의 눈에는 자기 군 생활 때와 비교해 편하다는 점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누구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에서 이런 제도를 시행하게 된 건 바로 ‘전투력’ 때문입니다.

    저희 사단 지휘부는 물론 군에서는 ‘비전투력 손실’ 부분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군인들도 쉴 때는 편하게 푹 쉬어야 훈련도 더 잘 받는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지금까지 ‘힘든 군 생활’이라는 게 훈련보다는 내무반 생활 때문이었다고 보고 ‘동기생활관’ 제도, 신막사 공사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이나 언론에서는 ‘군 생활이 편하면 군기가 빠진다’는 식으로 말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들의 말이 맞다. 생활관에서 군기 잡는다고, 매일 전투훈련도 아니고 삽질 열심히 시킨다고 부대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군이나 영국군의 전투력이 우수한 건 구타가 있어서도, 일상생활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말단 병사까지도 ‘군대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다.

  • ▲ 물론 모든 군 막사가 현대식으로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수십 년 전에 지은,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구막사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구막사 또한 '문화'가 바뀌니 생활도 바뀌었다.
    ▲ 물론 모든 군 막사가 현대식으로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수십 년 전에 지은,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구막사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구막사 또한 '문화'가 바뀌니 생활도 바뀌었다.

    136기보대대 바로 옆 137기보대대의 경우 지은 지 50년 된 舊막사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지만 ‘동기생활관’ 제도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했다.

    137기보대대 이석희 중령은 “처음 제도를 시행할 때는 상병이나 병장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시행 후에는 되레 병장들이 더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동기생활관 제도를 실시한 뒤에 걱정한 점이 나타나기는커녕 이건 뭐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더 챙기고 반가워하는 겁니다. 교육훈련 때랑 근무시간에만 만날 수 있거든요.

    심지어 우리 사단의 ‘5금’ 사항을 어겨 세 군데나 전출했다가 마지막에 우리 대대로 왔던 병장 한 명은 동기생활관에서 생활하고는 아무 문제없이 전역했습니다.

    마지막에 제게 딱 한 마디하고 제대했습니다. ‘정말 좋았다.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요.”

    간부와 병사들의 말처럼 ‘동기생활관’ 제도나 ‘교육훈련 출퇴근’, 그리고 ‘5금’ 제도와 명확한 신상필벌은 과거 우리나라 군대가 부러워하던 미군의 그것 같았다.

  • ▲ 136기보대대에서 바라본 가평군 일대. 전방에서 군 생활한 사람들은 '힘든 군생활' 때문에 그 좋은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하지만 군 생활이 좋아지면 이런 경치를 즐길 수도 있으리라.
    ▲ 136기보대대에서 바라본 가평군 일대. 전방에서 군 생활한 사람들은 '힘든 군생활' 때문에 그 좋은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하지만 군 생활이 좋아지면 이런 경치를 즐길 수도 있으리라.

    136기보대대에서 만난 한 간부의 말이 정답 같았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도 군대에서 고생해 놓고선 말끝마다 ‘군인이 너무 편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 준비하는 조직’이지 남의 집 귀한 자식 데려다 고생만 죽어라 시키는 ‘교도소’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목숨까지 거는 군인들을 위해 뭔가 조금 더 해주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군 생활 시절 떠올리며 복지개선에 반대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이 말이 맞다. 미군? 이스라엘군? 영국군? 전쟁에서 이기는 강한 군대는 ‘내무반 생활’이 힘든 군대가 아니라 훈련을 열심히 하는 군대였다는 게 인류의 전쟁사에서 드러난다. 우리 군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하게 만들려면 먼저 사회에서부터 ‘쉴 때 쉬고 훈련할 때 빡세게 훈련하는 군’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