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병은 ‘악령에 사로잡힌 좀비 증후군’

  •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전했다. 가짜 목사한테 폭 빠진 한 여인과 세 딸 이야기다. 여인은 “너를 고쳐야 구원 받는다” “나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가짜에게 자신의 온 몸과 영혼과 인간됨을 완전히, 기꺼이 저당 잡힌다. 가짜는 여인을 툭하면 구타하더니 나중에는 ‘성령을 받기 위한’ 성관계를 강요하고 개와 성교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미가 보는 자리에서 그녀의 세 딸과 그 짓을 한다.

      이 단계에 이르러 여인은 비로소 자기가 악마에게 속아서 미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세 딸들은 오히려 어미보다도 더 미쳐있었다. 악마를 구세주로 철두철미 믿으면서, 지옥을 탈출한 어미를 오히려 ‘변절자’ 보듯 했다. 어미를 만나주지도 않고, 아파트 문을 두드리며 “보고 싶어 죽겠으니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걸해도 딸들은 냉담했다.

      여인은 가짜를 고소했다. 가짜는 지금 구속수감 돼, 재판 계류 중이다. 구속돼 끌려가면서도 가짜는 "나를 왜 잡아가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대들었다. 많이 보는 풍경이다. 세 딸들은 가짜의 정체가 드러났어도 여전히 ”가정문제이니 당신들은 손 떼라“며 취재진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이거다. 우리사회의 갈등구조는 보수 진보 이전에 지성(知性)과 무지몽매의 갈등이다. 제정신과 사로잡힌 좀비들의 갈등이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정상적인 상태의 보수-진보 갈등도 물론 있다. 그러나 적잖은 경우 그건 건강이냐, 병(病)이냐의 갈등이다.

      가짜에게 사로잡혀 그를 우상처럼 섬기면서 그가 조종하는 대로 미쳐 놀아나는 좀비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자들은 자기들이 믿는 ‘진리’를 위해서는 보통상식으론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한다.

      이런 기준에서 우리 사회를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 친구들,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일이 많다. 이럴 때 이 잣대로 바라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이 써먹는 고상한(?) 사회과학적 잣대로는 이런 병적인 측면을 집어내지 못한다. 혹시 심리학적 잣대로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가짜들은 곧잘 ‘구원’ ‘해결’ ‘해방’ ‘다른 세상’ ‘탈피’의 ‘복음’을 선전, 선동 한다. 사회와 단절된 골방에서 홀로 인터넷을 두드리는 ‘판단 무능력자’들은 그것을 듣자마자 이내 수렁에 빠져든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게 미신과 사이비 믿음의 홀림이자 자력(磁力)이다.

      백백교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종로와 테헤란로를 활보하며 청소년들을 홀리고 있다.
    그 중 하나엔 이런 미신도 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의 불운은 64년 전 이 땅에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아닌 나라가 태어난 원죄(原罪) 때문이니라” 운운...

      그렇다면? 병에는 치료가 답이듯, 무지몽매에는 지성이 답이다. 아니 예방백신이다.
    우리사회의 병증은 지성이 무력화 된 탓이다. 초중고 학교들은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고 각급학생들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죽고 싶을 만큼의 ‘공부’를 강제당하지만, 지성은 말라죽고 있다. 그러기에 말도 안 되는 미신을 한 번 접했다 하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 아닌가?

      공부다운 공부, 지성의 세례를 듬뿍 받으면 미신과 맹신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가 없다. 대학마저 지적(知的) 사고(思考)보다는 인터넷 선전 선동이 팍팍 먹히는 대중사회로 전락한 우리 주변의 병명(病名)은 그래서 지성의 고갈이다.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