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派간첩보다 무서운 것이 自生간첩-從北세력" 
     
      反美청년회 출신 강길모 前 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 발언
    김필재    
     
     [1] 1986~1990년 기간 동안 전국의 학생운동을 지도했던 ‘反美청년회’(주사파 지하조직)
    핵심조직원이었던 강길모(사진) 씨는 27일 모 행사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대한민국에 주사파를 확산시킨 여러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從北세력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公安기관에서 활동했던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한 결 같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남파간첩들은 우리(공안요원)가 일주일 정도 취조하면 모든 것을 다 실토하고 전향한다. 그런데 남한 내 자생 주사파들의 경우 몇 달을 취조해도 전향은커녕 조직원 한 사람의 이름도 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남한 내 자생간첩이 남파간첩보다 무섭다고 생각한다. 종북세력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2] 從北左派 전문데이터베이스인 <팩트파인딩넷>에는 반미청년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반미(反美)청년회’는 대표적인 1980년대 김일성주의(주체사상) 조직 중 하나이다. 반미청년회는 오영식 前 열린우리당 의원 등 현역 정치인 다수가 1980년대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원 중 한 명인 강길모 씨가 전향하면서 반미청년회 실체는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사법부는 반미청년회 관련 90노762 판결에서 “반미청년회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PDR) 혁명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하여 구성됐다”며 이렇게 판시했다.
     
    “피고인 김O원, 같은 김O태의 공소사실 제2항에 관한 주장 같은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 김O원, 같은 김O태가 북한공산집단의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에 동조하는 것이 되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인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PDR) 혁명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하여 반미청년회를 구성한 사실은 이를 넉넉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같은 사실인정을 한 원심은 옳고 거기에 어떠한 위법이 있었다고 할 수 없으며, 같은 피고인들의 위 범죄사실에 대하여 그들의 주장과 같은 수배해제조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조치가 피고인들의 범죄의 위법성을 조각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같은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것이 되지 못한다(서울고등법원 1990. 5.17. 선고 90노762 국가보안법위반)”
     
    사법부는 또 99노122 판결 등을 통해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反美청년회 등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主思派) 학생운동권 지하조직(부산고등법원 1999. 5.17. 선고 99노122 국가보안법위반)”이라 하여 反美청년회 등이 김일성주의, 주사파 학생운동권 지하조직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미청년회는 고려대 ‘애국학생회’를 모체로 하는데, 1987년 10월 중순 홍익대에서 김일성 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추종하는 반미청년회 추진위를 결성하고, 1988년 1월 정식 출범했다(《좌익운동권 변천사》, 1999년, 경찰청 刊, 208페이지).
     
    상기(上記)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반미청년회는 의장을 중심으로 무력부·연락부·선전부·후원부·교양부 등 5개 부서로 이뤄져 있었다. 예컨대 무력부는 그 밑에 구국결사대 8명이 소속돼 활동했다. 선전부는 김일성주의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의 전파 및 조직원들의 사상무장을 위한 지하 간행물을 발간했다.
     
    반미청년회는 또 “북한의 통일론은 통일에 대한 겨레의 열망을 담고 있으며, 우리의 실정에 맞는 합리적 방안이다. 그리고 세계평화애호민중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며 “고려연방제를 지지하고, 핵심조직 요원들은 북한방송을 청취한 내용 및 북한에서 발행된 문건 등을 기본 교재로 하여 주체사상을 습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이 흐르고 운동권 출신이 득세하면서, 주사파(主思派) 활동은 민주화(民主化) 운동으로 각색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민보상위)’는 반미청년회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 및 보상해왔다.
     
    민보상위는 반미청년회에 대한 사법부 판결을 번복하는 재심(再審)도 거치지 않았고 기존의 수사자료·공소장·판결문 등 과거 국가기관의 자료들을 전면 부인한 뒤, 일부 자료·연루자들의 증언 등을 취사선택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해 버렸다.
     
    민보상위는 2005년 7월11일 결정문에서 오영식 前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건과 관련,

    ▲“1988년 5월 말 총학생회 홍보부장에게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하고 반미·반정부 투쟁을 선전하는 내용의 고려대학교 학교신문 민주광장 16호의 발간을 지시하여 제작, 배포한 사실” “1988년 1월 주체사상에 따라 미제(美帝) 축출을 통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反美청년회 라는 단체를 구성한 사실”
     
    ▲“일제 하 항일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항일무장 투쟁으로 왜곡 날조된 북한원전 ‘꽃파는 처녀’ 제하의 상·하 책자를 학습… ‘우리는 KNDF(한국민족민주전선)와 CLP(조선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등의 서신 작성 사실” 등으로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등을 위반하여 반국가 활동을 벌이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나열한 뒤,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민보상위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시킨 반미청년회 오영식 前 의원은 주사파(主思派) 출신으로 여러 차례 거명됐던 인물이다.》

    [3] 앞서 강길모 씨는 2006년 9월20일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세미나’에서
    “反美청년회는 고려대 조혁이 총책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역은 바로 본인이었다”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나는 88년 화공약품으로 사제폭탄을 만든 후 구국결사대를 만들어 서울 美문화원에 들여보냈다. 지금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을 직접 가르쳤다. 우상호·오영식 열린당 의원, 김만수 前청와대 대변인, 이은희 前청와대 제2부속실장, 여택수 前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중략)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찬양했다. 88년 1월에는 전국 대학운동지도책들을 모아놓고 88년을 ‘조국통일 元年(원년)’으로 삼겠다면서 KAL기 조작사건을 비롯해 ‘조국통일의 모든 장애를 척결하는데 학생대중을 총동원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내가 내린 명령은 북한의 對南선전매체 ‘한민전’이 내린 지령이었다.》

    강 씨는 또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의 現 민통당 의원)에 대해서도 “학생운동을 정리하며 가장 애써 키운 친구가 김기식”이라고 밝힌 뒤, “문제는 아직도 같이 운동했던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했었다.<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