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이 그럴 줄 알았다. 좌익 국회의원 만들어낸 민주당 꼭 심판해야"
  •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애국가를 국가 아니라고요? 그게 국회의원이라고요? 국민들이 나서서 금배지를 떼내세요. 그런 사람 뽑은 게 국민 아닙니까? 그 책임을 져야지요.”

    태평양을 건너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뉴욕에 거주하는 최응표(崔應杓,80)씨다.

  • 1974년에 이민, 교민사회의 문화 명소 <고려 서적>을 맨해튼 중심가에 일궈낸 전설적 인물이다.
    <뉴데일리>에 칼럼을 기고하는 그는 “종북세력이 국회를 점령하는 고국”이 걱정스러워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요? 책임자는 국가보위를 맡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직무유기하면 안되지요. 대통령 몫도 중요하지만 국민 수준도 문제입니다. 거짓선동 전술에 넘어가지 말고 골수 빨갱이들이 설 땅을 이제라도 빼앗아야 하지 않습니까? 전체 국민의식 변화와 각성, 지혜와 용기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씨가 위기감을 느낀 것은 김대중 정부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여년간 ‘애국 칼럼’을 한국 언론에 보내고 있다.

    “종북세력 키운 책임은 김대중-노무현의 종북 정권에 있고, 그 빨갱이 정권을 만들어 준 것 역시 국민입니다. 씨 뿌린 자가 스스로 거둬야지요.”

    더욱 노골화한 민주당의 종북노선, 유권자들을 속이고 진보당과 단일화로 종북 국회의원들을 만들어낸 죄악은 국민이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 민주당 시나리오라고 봅니다. 박지원 대표가 그럴 줄 알았죠. 그의 아버지 형제, 고모....그럴 수 밖에요. 진보당보다 민주당내의 좌익세력이 진짜 무섭습니다. 호남을 업고 있으니..."

  • 최씨 고향은 황해도 송화(松禾), 풍천(豊川)국민학교를 나와 개성(開城) 송도중학교에 다니다가 1.4후퇴때 남하했다. 고려대 철학과 졸업, 대학 총장을 지낸 박영석 홍일식 씨 등이 동창이다.

    27세때 출판사 <문학사(文學社)>를 열었다. 청소년의 교양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서양 고전 전집들을 연달아 냈다. 당시 빅히트를 친 전집은 기독교 방송(HLKY)의 <명상의 시간> 시리즈. GNP 100달러도 안되는 힘든 시절 한밤에 음악과 함께 흐르는 교양방송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인기 프로그램, 최씨가 낸 전집이 선물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때 신문에 대서특필된 젊은 남녀의 치정살인 사건이 그 전집의 대박을 터트려 줄 줄이야. 범죄 현장의 유일한 증거물이 바로 <명상의 시간> 책이었던 것이다.

    그가 미국 이민을 결심한 것은 10월유신 후였다.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출판사를 접고 월간지 <신태양> 편집장으로 3년을 지내다가 짐을 싸고 말았다.

    미국서 처음 시작한 커피집은 6개월도 안돼 포기했다. 할 줄 아는 것을 하자고 결심했다.

    “아는 것이라곤 책 뿐인데 어쩌겠습니까. 서점을 차리겠다니까 다들 말립디다. 처자식 굶겨 죽일 생각이냐고요.”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점포를 얻어 책방을 열었다. 당시 뉴욕 교민사회라야 6만명 정도였고 경제적 여유도 없을 때 누가 봐도 물정 모르는 책벌레의 무모한 도전이다.

    하루 매출 100달러 목표를 세웠지만 50달러도 안되었다. 직원도 없이 혼자 몇 년을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신감을 다졌습니다. 기다리자. 삶의 여유만 생기면 외로운 교민들이 책을 찾을 것이다. 독서란 문화적 욕구가 생겨야 하잖아요.”

  •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친구, <삼성(三省)출판사> 김봉규(金奉奎)회장.
    뉴욕에 왔다가 우연히 들러봤다고, 자네 일줄 몰랐다고. 역시 자네답다고. 연신 손을 흔들던 김 회장이 한숨을 쉬었다.

    “한심한 친구야, 이렇게 앉아있으면 어쩌나...뭘 어떻게 도와줄까?”

    그는 즉시 발벗고 나섰다. 한국에서 대성공한 ‘월부 외판(방문판매)’ 전략을 펼쳤다. 김회장은 서울 본사 직원중에서 영어와 판매에 유능한 직원들을 파견해주었다.

    “참 엄청 팔았죠. 나 자신이 날마다 깜짝깜짝 놀랐으니까...”

    문학전집, 아동전집, 사상전집등 1주일 100질씩 팔려나갔다. 전성기엔 직원 7~8명도 모자랐다.
    80년대 8년간이 클라이막스, <고려 서적> 성공신화가 미국전역을 휩쓸었다.

    도와준 친구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장영춘 목사, 임인수 <한림출판> 회장등에게 신세 많이 졌다.

    “우리 서점은 30년간 재고가 쌓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들 놀라는데 비결은 단순하죠. 고객의 성향 분석, 그에 맞추기 위해 해마다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책을 선택합니다. 서점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어보면서 체크해야 합니다. 아무 책이나 사보라면 읽겠습니까? 고객을 문화인으로 키운다는 자부심을 가져야지요.”

    최씨의 독서철학은 남다르다. 인터넷이 나오자 컴퓨터를 배워 온라인 거래를 활용했다.
    돈 많이 번 사람들은 책을 외면하고 하루 종일 골프만 쳤다. 정신이 풍요한 사람들, 가난한 샐러리맨들이 책을 찾는 단골이었다.

    미국에서도 문화수준이 높은 뉴욕커로 변신해가는 한국교민들,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문화강연’도 여러 차례 열었다. 그의 친구 이어령씨 강연때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최씨는 한국의 보수우파 주간지 <미래한국>도 매달 500부씩 구입해 한인사회에 배포했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모르는 2-3세 청소년들에게 국가정체성과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특히 미국에 침투한 종북세력의 세뇌공작을 차단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손자들도 해장국이 맛있다고 좋아하지만 역시 미국인입니다. 뉴욕은 특히 유엔 북한대표부가 있어 좌익활동이 활발한 곳이죠. 그들은 돈도 막 뿌려요. 거기에 젊은 유학생, 영주권자, 주재원등은 무방비상태입니다. 이런 판에 ‘재외국민 투표권’이 뭐란 말입니까? 북한이 존재하는 한 재외국민투표는 시기상조, 아니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성공신화에 자부심을 가지던 교민들은 요즘 한국정세를 보면서 걱정이 태산이란다. 종북세력의 공개적인 좌익활동에 아연실색, 주사파세력을 방치해온 한국 정부와 또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국민수준에 실망이 크다고 한다.

    “갑자기 너무 잘 살게 되어 의식수준이 못따르는 겁니다. 역사교육이 필요해요. 대한민국 역사 바로 알리기 운동을 벌였으면 합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이렇게 매장시킨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이 버림 받을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 국민을 버릴 것입니다.”

  • 지난 달 한국에 온 최씨는 38년만에 지방 여행을 처음 해봤다. 미국 지방보다 잘 살고 있었다. 경제적 물질적 풍요로움에 제정신을 빼앗긴채 흥청망청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한국 학생들 너무 사치스럽습니다. 미국 학생들 아주 순수하고 낭비를 무서워하는데 한국 젊은이들 몸만 커진 풍선 같아요. 군대가며 엉엉 울고 자살이 늘어나고....교육탓입니다. 미래세대를 제대로 만드는 국민교육이 가장 급합니다. 우리 후손을 전교조등 세뇌교육에 내맡겨 둔다면...끔찍합니다. 한국정부는 선진화는 커녕 남쪽마저 북한사회처럼 만들 작정인가요?”

    꼿꼿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차분한 목소리, 현대사 80년을 겪은 최응표씨는 우리세대에 너무나 필요한 자유지성의 원로, 한국민의 스승으로 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났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인가, 둘째 아들 패트릭 최가 제작 감독한 영화가 <크로싱(The Crossing)>이다.
    차인표 주연의 북한 이야기, 중국 광야를 떠도는 북한 가족의 비극이다. 하루 속히 자유통일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최씨 가족의 소망이 담긴 영화이기도 하다고.

    "그날은 진짜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 인생을 쏟아부은 그 가게..."

    몇년전 <고려 서적>에서 손을 떼던 날 최씨는 '애국하는 일'로 여생을 채우겠다고 결심했다.

    “<뉴데일리>에 감사합니다. 이승만 역사를 바로 알리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습니다.”

    8순의 애국열정이 악수하는 눈빛을 통해 뜨겁게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