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정치의 ‘얕음’에 관한 나의 관찰기:전여옥 이야기>
정확히 14년 전. 1998년 4월. 일본 게이오대 법학부 방문연구원으로 초청받아 도쿄행 비행기에 오른 나의 가방엔 두 가지가 깊숙이 챙겨져 있었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와 재일 르포 작가 유재순의 도쿄 전화번호. 이건 완전히 우연이었다.
전여옥의 책을 챙겨간 이유는 그 짧은 기간 KBS 도쿄특파원을 지내며 어쩌면 저렇게 일본어에 능숙해 일본을 샅샅이 파악하고 책까지 썼을까하는 지적 호기심 때문.
재일 르포 작가 유재순의 전화번호를 챙긴 건 유재순이 일본에 관해 많을 걸 알고 있으니 만나보라며 신문사에 있던 한 지인이 그의 전화번호를 출국하기 전에 적어 주었기 때문.
유재순에게 전화를 걸어 신주쿠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런 저런 일본 얘기를 나누던 중 유재순의 충격적인 주장이 쏟아졌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내가 책을 쓰려고 이미 글로 써뒀거나, 메모한 것 모두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아니 뭐라고요? 뭐라고 했어요? 유재순의 말이 이어진다. “도쿄특파원으로 혼자 왔으니 내 집을 들락거리며 친하게 지냈어요. 근데 그대로 나도 모르게 복사해 갔다가 한국에서 책으로 내놔 베스트셀러가 된 거예요.”
아, 그랬었구나. 누가 볼까, 마음 한 구석에 깊은 비밀로 가둬둔 채 1년 후 귀국해 신문사로 복귀했다. 전여옥은 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8월 이회창과 노무현이 출마한 대선을 앞두고, 또 우연히 ‘주간조선’에서 전여옥이 가수 조영남과 대담하는 기사를 읽게 됐다.
전여옥의 노무현 찬가가 쏟아졌다.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안됐으면 좋겠다. 이번 대선에서는 가난과 실패를 겪어본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자수성가한 사람 말이다.” “(노무현이)부산에서 2년 반 동안 요트에 미쳤다고 알려졌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죠. 단순히 호화생활을 했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실컷 놀아봤으니 앞으로 사고 덜 치겠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미화엔 더 직설적. “사실 저는 햇볕정책 지지자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희석된 건 다 햇볕정책 덕분이었다. 어차피 통일은 될 텐데 적대시하면 할수록 통일비용만 올라간다.” 이런 DJ 찬가가 이어지자 기자가 묻는다. “하지만 서해교전으로 우리 군 5명이 죽었다”고 말하자 전여옥의 황당한 답변, “정말 돌 맞을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는 휴전국이기 때문에 어차피 희행을 감수해야 한다. 분단국에서는 있을 수 있는 사건이다.” 아, 전여옥은 친 노무현, 친 김대중이구나! 그렇게 알았다.
박근혜에 대해선 ‘영남공주’라고 맹비난. 영남공주라는 신조어는 그가 만든 것!
그런데, 2년 후인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사태를 다룬 SBS 시사토론 ‘이것이 민심이다’에 패널로 나온 전여옥. 눈과 귀를 의심케했다. 그토록 칭송했던 노무현에 대해선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지 생명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퍼부었다. 아니? 전여옥, 왜 저러지?
역시, 전여옥은 토론을 본 한나라당 당 대표 최병렬의 눈에 들어 비례대표로 직행. 박근혜의 눈에 들어 대변인으로 기용된다. 기막힌 일!-노무현이 대통령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DJ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일본은 없다’고 일본의 보수우파를 짓밟은 장본인이 대한민국 보수우파 정당의 입이 되는 황당무계한 일. 서울역, 서울광장에서 열린 보수우파 집회엔 꼭 찾아가 맹연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의 ‘얕음(shallowness)’!
박근혜의 ‘정신적 경호원’이 된 전여옥의 독설, 더 극에 이른다. 노무현에 대해선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 DJ에 대해선 ‘치매든 노인’이라고 인신공격.
비오는 날, 카메라가 뻔히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박근혜에게 우비의 머리 부분을 채워주며 충성스러운 신하를 자처하는 저 뻔뻔스러움. 박근혜가 세종시 특별법을 통과시킬 때 이에 반대하며 의원직 사퇴를 언급하는 박세일, 박찬숙을 향해 “말에 책임지고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 국회의원 사퇴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라고 호통쳤다.
그랬던 전여옥, 2007년 5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의 지지도가 이명박한테 뒤지자 돌연, 박근혜 캠프는 “주변 의원들이 무슨 종교집단 같다”고 내뱉으며 MB 캠프로 직행! 박근혜의 세종시 수정 반대에 대해선 “이제 다시는 포퓰리즘적 공약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돌변! 그랬다가 2008년 MB가 거들떠보지 않다가 공천 한 장 주자 총선 끝나자마자 다시 정몽준의 측근으로!
이번에 공천에서 떨어지자 다시, 그렇게 당을 떠나라고 했던 박세일의 국민신당으로! 대법원은 마침내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유재순의 ‘것’을 도작(盜作)한 거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래도 정의의 신(神)은 긴 어둠을 뚫고 목소리를 내고야 만다. 전여옥의 변신 14년을 지켜봐온 나의 관찰은 불쾌함의 연속이었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 /전 문화일보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