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朴 연대 역풍, 김한길 1위 이해찬 4위 '더블 스코어'친노 분열..문재인도 위험해 부산-호남 투표가 분수령
  • “오늘이 이변?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 울산 대의원 투표 1위 김한길 후보

    이-박 담합 논란으로 곤경에 빠졌던 이해찬 전 총리가 결국 무너졌다. 민주통합당 내부 친노세력의 좌장, 통합의 산파라고 불리던 ‘이해찬’이었다.

    20일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울산 지역 대의원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는 103표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대의원 195명이 1인 2표씩 행사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체 대의원 가운데 절반을 넘는 지지를 받은 셈이다.

    당초 선두를 예상했던 이 후보는 48표에 불과했다. 추미애 후보(61표)와 486 대표 주자 우상호 후보(52표)보다도 뒤처진 4위였다.

    이날 울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울산시당 대의원대회는 재적 대의원 221명 중 195명이 투표하며 투표율은 88.2%를 기록했다. 이 후보 뒤로도 강기정 후보 40표, 조정식 후보 38표, 이종걸 후보 33표, 문용식 후보가 15표를 등 고른 표심이 나타났다.

    이날 대의원 투표는 전체 대의원(약 1만8000명)의 약 1.2%에 불과하지만, 투표 결과가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울산은 지난 2002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별 투표에서 첫 1위를 기록한 친노의 텃밭이다. 때문에 이 후보의 추락은 이변 중의 이변이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6시께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 가장 먼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 후보 측은 “겸허히 결과를 수용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 이제 초반인데 너무 의미를 두지는 말라”고 했다.

  • ▲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해찬 김한길 추미애 후보가 20일 울산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해찬 김한길 추미애 후보가 20일 울산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이해찬-박지원 연대 역풍

    이날 투표 결과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해찬·박지원 연대에 대한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박 연대 논란이 불거진 이후부터 나머지 7명의 후보에게 집중 공격을 받아왔다. 패권적 발상, 자리나눠먹기 비판 등 사실상 1:7의 싸움이었다.

    지난 17일 1차 합동 TV토론회에서도 그랬고 광주 합동토론회에서도 이 후보는 ‘공공의 적’이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해찬 후보의 담합 발상을 거침없이 비판했고 이 후보는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라는 식의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하지만 1위를 차지한 김한길 후보 측도 당초 이 같은 결과를 예상치는 못했다고 했다. 지난 주 실시된 당원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지지율 1위를 기록해 대세론을 입증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날 투표 결과는 후보들의 전략보다는 당 대의원들의 표심이 먼저 움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역풍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고 내다봤고, 다른 관계자도 “이해찬 대세론에 위기를 느낀 나머지 비노계열이 모두 1표씩 김한길 후보에게 몰아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4·11 총선에서 지역구를 모두 여당에 빼앗긴 울산 지역의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친노 세력에 대한 경고론이 먹혔다는 생각이다.

    당내 한 친노계 인사는 “총선 패배에 따른 직전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 ▲ 6.9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에서 이해찬 후보가 곤궁에 빠지면서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권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민주통합당 손학규 정세균 전 대표가 18일 광주시 국립5.18민주묘역에서 열린 제3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6.9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에서 이해찬 후보가 곤궁에 빠지면서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권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민주통합당 손학규 정세균 전 대표가 18일 광주시 국립5.18민주묘역에서 열린 제3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21일 부산이 분수령..문재인도 위험

    울산에 이어 21일 투표가 열리는 부산 지역의 결과가 민주통합당 당권 레이스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대의원 수가 약 660명으로 울산(195명)에 비해 3배 이상 많은데다, 사상에서 금배지를 달고 귀환한 문재인 상임고문이 버티는 친노 세력의 핵심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낙승을 조심스럽게 예상했던 이 후보 측도 부산에서도 패한다면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초반 대세론을 형성하고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던 이인제 의원의 경우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이변에 이-박 연대에 공감을 표시했던 문재인 상임고문에게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총선 패배 이후 만족할 수 없는 지지율에 고심하고 있던 문 고문 측에서는 비노계 대표가 당선될 경우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 고문은 대권 주자로서는 이날 울산 투표 현장을 찾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문 고문은 “부산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예의상 찾아왔다”고 했지만, “이해찬을 지지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울산 이변에도 불구, 부산에서만큼은 이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시각이 많다. 부산 당협위원장 중 절반 이상이 친노 직계 인사들이고, 범(汎)친노까지 합치면 3분의 2가 넘는다는 게 민주통합당 내부의 인식이다. 반면 울산은 민노당 색이 강한데다, 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계가 고루 포진해 있다.

  • ▲ 노 前대통령 서거 3주기를 앞두고 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함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노 前대통령 서거 3주기를 앞두고 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함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해찬 버린 노무현..박지원은?

    “박지원 원내대표는 집에 가서 웃었을 것.”

    이날 울산 지역 대의원 투표를 지켜본 한 민주통합당 친노계 당선자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밝힌 말이다. 이-박 담합 논란의 당사자인 박지원 원내대표(비상대책위원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얘기다.

    이미 자신은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거머쥐면서 권력의 연장을 확정지은데다, 부산에 이어 열리는 광주·전남 투표 결과가 당대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박 비대위원장의 역할론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박 비대위원장은 이-박 담합 논란에 대해 “정권교체를 위한 단합”이라는 결과론적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21일 부산 경선 결과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우에 따라 이해찬이 아닌 김한길 등 ‘다른 배’로 갈아탈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물론 이미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연대를 합의한 이상 적극적으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예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공천 배제 등으로 친노 세력에 불만이 가득한 호남 세력에 ‘특별한(?)’ 지지를 부탁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해찬 후보에게는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이미 여러갈래로 갈라진 친노 세력이 스스로 더 이상 ‘노무현 프레임’에서 갇혀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는 최근 동향도 이 같은 예상에 힘을 싣고 있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친노 세력의 색깔이 희미해진 이상 박 비대위원장도 '이기는 사람이 내 편'이라는 대승적 공식을 내세울 공산도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고인(故人)이 된지 3년이나 지난데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이해찬이 아닌 노무현을 뛰어넘는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다.

    당내 고위 당직자는 “이제 친노와 비노를 구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언론에서 계속 쓰는 단어일 뿐, 이제 3년상도 다 치렀지 않나. 당원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그냥 가슴 속에 남겨진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