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준공영제, 운송비 제외 버스회사 적자 시가 메꿔 줘매년 2~3천억원 버스회사에 지원, 협상에선 들러리 신세준공영제 개선에 노사 모두 강력 반발...시 '빚덩이' 원인 제공
  • ▲ 서울 시내버스 정상운행. 18일 새벽 극적 협상 타결로 시내버스가 멈춰서는 파국은 면했다.ⓒ 사진 연합뉴스
    ▲ 서울 시내버스 정상운행. 18일 새벽 극적 협상 타결로 시내버스가 멈춰서는 파국은 면했다.ⓒ 사진 연합뉴스

    15년 만의 파업은 예정된 파업시한을 40분 넘겨 극적 타결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파업 예정시간인 새벽 4시를 30여분 앞두고 협상장을 전격 방문, 허리를 숙였고 깨졌던 교섭은 재개됐다. 그리고 100분 뒤 노사 양측은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1천2백만 서울시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서울 시내버스 파업이 막판 극적 타협으로 파국을 가까스로 면했다.

    18일 오전 4시 40분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서울시버스노조는 올해 임금인상 협상을 마무리했다. 시급 3.5% 인상에 매월 무사고 포상금 4만원 지급, 감차계획 철회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 시장은 협상 타결 소식을 접한 뒤 곧바로 광주 5.18 묘역 참배를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막판 극적 타결의 물꼬를 텄던 박 시장이지만 광주로 향하는 그의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파국은 막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시가 적극 추진했던 200대의 버스 감차계획 무산이 문제다.

    지난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펴낸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버스 노선은 368개, 운행차량은 7천548대다. 그러나 연구원측이 산정한 적정 운행 대수는 6천200대. 현재보다 1천3백대 이상을 줄여야 한다.

    연구원은 버스 운행 대수 감축 외에도 ▶버스회사의 대형화를 통한 노선 조정 ▶서울시의 관리권한 강화 ▶파업 제한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준공영제’ 개선 대책으로 제시했다.

    시가 이번 협상에 포함시킨 시내버스 감차계획은 2004년 도입한 시내버스 준공영제 개선을 위한 첫 시도였다.

    시는 준공영제 시행 이후 현재까지 매년 2~3천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버스회사에 쏟아 붓고 있다. 준공영제에 따라 운송비를 제외한 버스회사의 적자를 시가 매년 전액 메꿔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막대한 혈세를 지원하는 데 비해 그 결과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버스회사의 경영합리화나 사내버스 서비스 수준 개선 등 당초 정한 정책목표 중 뚜렷한 성과로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준공영제 실시로 버스회사의 배만 불렸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가 버스회사의 적자를 전액 보전해 주는 상황에서 버스회사가 경영합리화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맬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덕분에 운전종사자들의 임금도 매년 안정적으로 올라갔다. 임금인상으로 인한 회사의 적자는 시가 보전하기 때문에 운송사업조합이나 버스노조 모두 극한 대립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결국 준공영제가 본래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내버스 감차 등 운영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런 측면에서 시내버스 감차는 언젠가는 반드시 추진돼야 할 현안이다.

    막판 극적 타결로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했음에도 “시가 파업과 준공영제 개선을 맞바꿨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의 감차계획 양보는 언제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둔 셈이다.

    시의 어정쩡한 위상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이번 파업국면에서 시는 매우 모호한 위치에 섰다. 외견상으로는 사측의 적자를 메워준다는 점에서 시가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 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시로부터 적자를 보전 받는 사측의 태도는 더욱 이상했다. 형식적으로는 시와 조합이 노조를 상대하는 2대1구조였지만 실제로는 조합과 노조가 연합해 시에 맞서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이런 모순의 근원에는 역시 준공영제가 있다. 조합측은 시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조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에서 입을 모아 시의 감차계획을 강력히 반대했다.

    당장의 목표는 달랐지만 시가 적자를 보전해주는 현재의 구조가 깨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사의 입장은 같았다.

    이런 모습은 임금인상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6일부터 협상장 주변에서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임금 3.5% 인상 + 무사고 포상금 5만원 지급)에 “시가 자리를 박치고 나가 협상이 깨졌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합도 노조도 이같은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때 이미 조합과 노조 모두 임금인상에 묵시적 합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차피 시가 적자를 보전해 주는 상황에서 중재안에 따라 합의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민의 혈세로 매년 막대한 예산을 버스회사에 지원하면서도 정작 임금협상 테이블에서는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 시가 처한 현실이다.

    시가 교통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키 위해 준공영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2009년 기준 서울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은 27.8%. 지하철의 35.2%에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서울과 경기·인천을 거미줄처럼 잇는 수도권 광역철도 네트워크가 완성되는 2020년께가 되면 대중교통의 중심은 지하철과 철도가 맡게 된다. 여기에 각 시도가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전철 및 도시철도사업을 고려할 때 버스체계의 개편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 시가 최소한 노선 조정권만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시는 관리감독권을 행사해 시내버스 노선 조정을 유도할 수는 있어도 임의로 노선을 바꿀수는 없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시내버스를 철도, 항공과 같은 특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 파업 제한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있다.

    시내버스가 비록 민간회사의 소유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금인상으로 이유로 시민의 발목을 잡는 일 만큼은 시정돼야 한다는 논리다.

    한편 이번 임금인상으로 시가 추가로 떠안아야 하는 예산은 340여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