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북주의(從北主義)의 계보학(系譜學)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 강규형 교수ⓒ
    ▲ 강규형 교수ⓒ

     1970년대 이전 북한의 국력은 남한보다 강했다. 그래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비판 세력 중 일부는 북한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추종했다. 이런 종북운동의 대표적인 예가 통일혁명당(統革黨)이었다. 북한의 직접적 지도와 자금지원을 받으며 대한민국 타도를 추구했다. 김종태 등 지도자 세 명은 사형당했고, 두 명은 월북해 교육 중에 사건이 터져 북한에 남았다. 신영복 등은 무기징역 등을 받고 복역 중 전향서를 쓰고 석방됐다. 그러나 이제 와서 북한과의 연계를 부정한다. 반체제 운동할 때와 조사받을 때 보여준 ‘혁명적 패기’는 어디 갔나? 아니면 전향서가 허위였나? 동백림사건의 경우 연루자 대다수는 유럽유학중 북한에 포섭된 경우였다.

     일본의 적군파와 서독의 바더-마인호프같은 도시 공산 테러리스트 운동을 추구했던 남민전(南民戰)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1970년대 결성됐다. 이들은 북한에 도움과 지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이들의 비조직적인 행동을 불신했다. 이번 총선에 당선된 이학영(민주당)같은 이들은 혁명자금을 얻기 위해 무장강도를 하다가 체포됐다. 한 때 북한과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각 사건 관련자들의 솔직한 고백과 명확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1980년대는 종북운동의 전환점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 속에서 그리고 정통성을 결여한 전두환체 제에 대한 분노로 인해 대학가는 들끓었다. 그 와중에 급진주의 담론(談論)투쟁이 전개됐다. 한국사회 문제의 핵심은 계급모순이기에 계급투쟁을 먼저 전개해야한다는 PD파(민중민주주의파, 평등파). 그리고 민족모순이 더 큰 문제이기에 민족통일운동을 우선시해야한다는 NL(민족해방파, 자주파)파가 등장했다. 이 투쟁에서 NL파가 승리했고, NL 내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가 비(非)주사파를 압도하면서 최종승리자가 됐다.

     이들은 처음에는 북한의 지원없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물론 이후 북한과의 연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났으니, 북의 지원을 받은 민족민주혁명당(民革黨)이 창당됐다. 그러나 원조 주사파 김영환(필명 ‘강철’)이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민혁당을 해체할 때, “강철이 고철됐다”고 반발하며 민혁당을 재건한 잔당(하영옥 이석기 등이 재건을 주도했다)과 그 후예들이 요즘 난동을 일으키고 있는 통합진보당(통진당)의 당권파들이다.

     생전의 황장엽은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줄타기하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이 북한에서 이론화한 주체사상이 남한에서도 유행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한다. 주사파들은 그저 북한방송을 들으며 베낀 내용을 유인물로 뿌렸을 뿐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민족지상주의”라는 ‘민족담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청년들에게는 감성적·민족적 접근의 NL이 이론적 접근의 PD보다 더 입맛에 맞았다.

     서구의 좌파는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사회민주주의로 향하며 의회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이론투쟁에서 공산계열, 그중에서도 NL, 그것도 가장 저급한 주사파가 승리한 것은 비극이었다. NL이나 PD 모두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진부(陳腐)한 퇴보(退步)일 뿐이다. 그들의 반미주의와 이승만 혐오사상의 본질은 “미국만 없었어도, 이승만만 없었어도 공산통일은 예전에 가능했다” 것에 다름 아니다. ‘종북’은 원래 민노당 내 소수파인 PD가 당권파인 NL을 맹비난하면서 분당할 때 써서 유행한 용어이다. 이렇게 종북 NL파를 비판했던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 PD파가 아무 해명 없이 종북파와 다시 손잡고 통진당을 만든 것은 그야말로 원칙없는 야합(野合)이었고, 작금의 통진당 사태라는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다.

     안철수 교수의 부친에 따르면 안씨가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냐?”라 했다 한다. 안씨는 훌륭한 벤처기업가이지만 정작 정치와 사상논쟁에 대해선 식견이 전혀 없는 ‘책상물림’임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아무리 좌파학자들에게 속성과외를 받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런 안이한 사회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요즘 통감할 것이다. 그동안 종북주의자들은 자신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잘 숨겨오며 통진당, 민주당 등 여러 정당에 침투해 들어갔다.

    시인 최영미는 <돼지의 변신>이란 시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요즘 통진당 NL 당권파가 보여주는 경악스런 맨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잘 된 일이다.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들의 진면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 자신들이 흠모하는 북한체제식 막무가내 투쟁을 계속하시라. 그래야 안철수씨 같이 순진한 사람들이 ‘돼지를 선비로 오인하는’식의 불상사가 없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2012-5-14,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