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에 폭로’ 이정희-심상정-유시민, 당권 둘러싸고 사분오열
  • 4.11 총선 직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에서 순위조작이 있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민주통합당과의 연대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이 들통나 이정희 공동대표가 후보직을 사퇴한 데 이어 이번엔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진 것.

    비례대표 경선은 당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14~18일 온라인 투표와 현장 투표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이 중 현장 투표에서 비례대표의 당락을 뒤바뀌게 하는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것이 골자다.

    ■ “민노당 출신 1명이 박스떼기 하나 들고 표 주우러 다녀”

    <중앙일보>에 따르면 유시민 대표가 주도했던 국민참여당 출신인 이청호 금정구 공동지역위원장은 20일 통진당 홈페이지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며’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 위원장은 “윤금순(1번) 후보와 오옥만(9번) 후보가 바뀐 건 현장투표였다. 현장투표가 엉망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영희 후보를 8번에, 노항래 후보를 10번에 배정한 것을 두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노 후보가 8번에, 이 후보가 10번에 배정됐었는데 (갑자기) 8번을 10번으로 10번을 8번으로 바꾸는 행위가 온당한가”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현장 투표의 경우) 투표 관리인이 민주노동당 출신 1명뿐이었고 30인 이상이 신청하면 ‘이동 투표함’이란 것을 만들어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노당 출신이) 박스떼기 하나 들고 표를 주우러 다닌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투표 감시와 비정상적인 이동 투표함 제도를 통해 당권파 인사들이 현장 투표에서 몰표를 얻어 온라인 투표에서 우세를 보인 다른 후보를 제쳤다는 주장이다.

    노 후보도 최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통합진보당의 첫 당원투표에서 ‘현장’이라는 구실 속에서 이루어진 적지 않은 부정행위를 봤다. (당권파는) 이런저런 ‘당 운영상의 편의’를 말하나 이것은 용납되지 않아야 할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 ▲ (좌측부터) 통합진보당 조준호,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손을 잡고 밝게 웃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좌측부터) 통합진보당 조준호,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손을 잡고 밝게 웃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전산 ‘소스코드’까지 건드려 후보자 기호 바꿨나

    비례대표 선거 당시 지역선관위원으로 일했다는 또 다른 통합진보당 인사도 게시판에 “내가 직접 선거관리에 참여한 현장투표소 3곳 중 1선거구에는 투표소 위에 특정 후보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었으며 2선거구에는 투표함에 봉인이 안 돼 있었고 3선거구에는 투표용지에 날인이 없어 누가 투표했는지 확인이 불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선거가 끝나도 투표용지와 관련 서류를 중앙당에 보내지 않아 선거 사무원이 (투표 결과를) 임의로 보고한 뒤 훼손하면 재검표로 확인할 길이 없어 현재 선출된 비례대표 후보들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통합진보당 현장투표에선 선거인단 수보다 투표자 수가 더 많은 투표소가 7군데나 발견되기도 했다.

    이청호 위원장은 이와 함께 민노당 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해온 전산관리업체가 이번 비례대표 선거 실무를 맡았으며 민노당 출신 인사의 지시로 투표가 진행되는 도중에 온라인 투표내용을 알 수 있는 ‘소스코드’를 세 차례 열람했다고 폭로했다.

    당 일각에선 소스코드를 건드릴 경우 투표자 수와 해당 후보의 기호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위원장은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대한민국 정치를 바꾼다고 설레발을 치는가”라고 비판했다.

    ■ 심상정에 이어 유시민 측근 폭로 ‘계파갈등’

    이번 의혹은 당 내부에서 터져 나온 데다 국민참여당 출신들이 주로 제기하고 있어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갈등에서 기인됐다는 해석이 많다.

    통합진보당은 주사파(NL) 계열이 이끌던 민노당 출신, ‘평등파’(PD) 계열 중심의 진보신당 탈당파, 유시민 전 의원이 중심이 된 국민참여당 출신이 손을 잡고 만든 정당이다.

    형식적으론 이정희(민노당)·심상정(진보신당)·유시민(국민참여당)·조준호(민주노총) 공동대표 체제지만 사실상 당권은 ‘경기동부연합’ 민노당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다른 계파가 민노당 측의 당권 장악에 불만을 품고 각종 의혹을 연이어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경기동부연합’ 출신 당권파의 실체를 폭로하며 “북한과 관련된 사안에서 편향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는 (경기동부연합은) 권력을 갖고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경기동부연합의 실체가 없다”는 통합진보당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여론조사 조작으로 이정희 대표가 관악을 후보에서 물러날 당시 새누리당과 우파 언론매체는 경기동부연합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했고, 통진당 측은 “경기동부연합은 10년 전에 해산됐고 이를 거론하는 건 야권 전체를 능멸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좌파매체 역시 “새누리당이 진부한 ‘색깔론’으로 정치공작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 대표는 “진보정당에는 (경기동부연합 같은) 소극적인 틀, 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들의 어떻게 활동을 가시화하고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지적했다.

    ■ 비례대표 선출 둘러싼 잡음 ‘처음 아니다’

    한편, 비례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후보 선출 과정에서부터 제기됐다. 가장 큰 문제는 영입 인사를 전략적으로 당선 안정권 순위에 배치하다보니 당원 투표로 선출된 후보들이 후순위로 밀린 것.

    실제로 이번에 선출된 6명의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4번 정진후, 5번 김제남, 6번 박원석 후보 3명이 영입 인사다. 그러다보니 당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비례대표 순위 배정을 놓고 갖가지 의혹이 불거졌다.

    또 현장투표 과정에서 부정선거 논란도 발생했고, 실제로 이 문제 때문에 비례대표 후보 명단 발표가 늦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통합진보당의 내부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현행 선거법엔 처벌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통진당은 논란이 확산되자 다음 달 19일로 예정됐던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6월3일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