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직전 이승만의 상황인식    
    - 오마이 뉴스: 김삼웅의 인물열전 블로그, 독재자 이승만 평전 -을 읽고...

    김상훈(대마도 연구가)


    필자는 “62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전쟁참화”라는 주제로 글을 실은 김삼웅씨의 기사는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김삼웅씨는 기사에서 “국군통수권자인 이승만은 일본군ㆍ만군 출신들을 중용하여 이들에게 국가안보를 맡겨두고 자신은 권력강화에만 정력을 쏟았다. 그러다가 6ㆍ25 남침을 맞게 되었다. 이승만 정부와 군당국의 안보 대비는 무능ㆍ무책임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김동춘씨의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있는 사람입니다. 필자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추적하던 중 미국 죠지 워싱턴대학교 도서관 동양서적보관소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어 저서 'Japan Inside Out(일본 내막기,1941.3)' 원본 1부를 발견하여 숙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서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하기 7개월 전에 발행한 것으로 일본이 미국을 상대으로 전쟁을 일으킬 것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책 서문에는 ’대지‘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펄벅 여사가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현 상황을 짚어낸 저서로’ 평가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또다른 관심을 끈 것은 원본의 154 페이지에 수록된 우리나라 영토와 관련 다음과 같은 글귀였습니다.

    ‘They seem to have forgotten that there had once been boundary
     lines between Japan and Korea, between Korea and Manchuria,
     and so on.  To allow Japan to destroy the old lines one after another, and,
    as she advances, to keep on establishing new lines always nearer
    to America coast would not be sound policy.‘
    (해석 :  '~미·일간 해상분규협정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일본과 한국사이, 한국과 만주 사이에 명확한 국경선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일본이 오래된 국경선을 하나씩 파괴하며 전진하여 미국해안에 가까운 새로운 국경선을 설정하려는 것을 미국이 묵인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여기에서 필자는, 이승만 대통령은 한·일 간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음과 결과적으로 이를 묵과했기 때문에 일본의 인접국가 침탈이 계속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일 간의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이승만 대통령의 이 저서는 후일 실제 전쟁 발발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3일 후 이승만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탈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시작해서 계산)하여야 한다.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백 5십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던 것이다.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의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동경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 ▲ 1949. 1.8일, 동아일보,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이승만ⓒ
    ▲ 1949. 1.8일, 동아일보,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이승만ⓒ

    또, 1949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고 주장합니다.

    당시의 기사에서 보면 이승만은 일본의 대마도 반환을 단지 반환이라는 의미보다는 우리국토의 실지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 반환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었음과, 중국 여론도 이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거주 우리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음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다급해진 일본 수상이 일본 천황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 대마도 상황을 보고하는 와중에 대마도에 한국인이 실제 2천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는 일본 측 주장을 실은 언론기사들도 속속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도 다가오는 1950년을 실지를 회복하는 희망찬 한해가 될 것을 소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과 6개월 뒤 벌어진 6·25 전쟁을 모르고…

  • ▲ 1949. 12.31일, 경향신문 대통령 연말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이 실지회복 차원임을 강조한 이승만, 여기서 대마도 반환요구도 중요하나 김일성의 남침대비가 우선임을 적시하고 있다.ⓒ
    ▲ 1949. 12.31일, 경향신문 대통령 연말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이 실지회복 차원임을 강조한 이승만, 여기서 대마도 반환요구도 중요하나 김일성의 남침대비가 우선임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계속된 대마도 반환요구는 이 연말 기자회견을 끝으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이는 바로 당시 스탈린이 김일성을 사주하여 남침하려는 의도를 6·25 6개월 전에 명확히 이승만이 인지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전쟁의 참화를 막는 급선무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발행된 신문기사를 조금만 읽어 본다면 이승만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소련에 의해 사주된 ‘김일성의 오판과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공조’에 있었음과 이는 당시의 판단으로 보나 지금 우리가 판단해 볼 때도 매우 정확하고 현명한 정세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승만이 상황을 오판하여 전쟁에 대비하지 못해 민족의 참화를 가져왔다“는 앞에 나왔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당시 신문기자가 질문했던 내용과 이에 답한 이승만의 대답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기자의 질문)
    “일본정부에서는 대마도를 자기영토라고 증명하고자 명년(1950년)에 대마도에 종합학술조사단을 파견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신속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승만 답변)
    “물론 우리로서는 대마도도 찾고 기타 잃어버린 것도 찾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들과 갈등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본다.
    소련이 공산당을 시켜 동양을 침략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미국에 있어 두통꺼리인데 지금 이것을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인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이 공산당과 함께 싸우게 하려면 우리도 공동으로 공동의 적을 쳐 물리쳐야 하겠다.“
     
    1949년 연말에 6개월 후 소련 사주에 의한 김일성의 남침(1950. 6. 25)을 예견한 것도 정확했고, 이것에 대비하는 것이 우리민족에게 당장 시급한 것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면서 한편으로 대마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이승만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대마도 반환 문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51년 7월 6·25전쟁 중에도 이승만은 당시 주미대사에게 전보를 통해 대일강화회의에서의 우리정부 입장을 미 측에 전달하도록 하는데 이때 우리를 2차 대전 참전국자격을 달라는 것 등 우리 측의 주장 10개 항을 제시합니다.

  • ▲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주미대사를 통해 대마도 반환 주장, 1951.7.13.동아일보ⓒ
    ▲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주미대사를 통해 대마도 반환 주장, 1951.7.13.동아일보ⓒ

     이승만은 4번째 항에서 대마도가 우리영토이며 이를 반환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일본은 대마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대마도는 한국 영토였으나 일본은 불법적으로 이를 점령하였다.“

    당시의 상황을 잘 기록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를 모은 책 ‘6·25와 이승만’을 보면 이승만은 이를 프란체스카 여사의 타자를 통해 비밀 전문으로 미국에 훈령을 보냈음을 잘 알 수 있고 이 전문에서 무엇보다 미국으로부터 우리군에 절대 부족했던 무기를 지원받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음을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