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통령 측근비리 원칙 수사하라” vs 野 “왜 총선 앞두고 수사 재개하나”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37)씨의 미국 맨해튼이 한 눈에 들어오는 초호화 콘도미니엄(우리나라의 아파트에 해당. 이하 편의상 아파트로 표기) 매입 의혹과 관련된 ‘13억 돈상자’의 흐름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9년 당시 돈상자를 전달한 ‘선글라스 남(男)’이 정연씨 측 인사라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 클럽. 허드슨강에 바로 접해 있어 맨해튼 마천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수영장과 스파, 헬스클럽, 소극장, 클럽 라운지 등을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 클럽. 허드슨강에 바로 접해 있어 맨해튼 마천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수영장과 스파, 헬스클럽, 소극장, 클럽 라운지 등을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 서서히 드러나는 13억 돈상자의 흐름

    <중앙일보>에 따르면 아파트 ‘이면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경연희(43)씨는 2009년 1월 미국 코네티컷주 폭스우즈 카지노에서 정연씨에게 “100만달러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씨에게 보내진 7개 사과 박스 속 13억원을 국내에서 이균호씨에게 전달했던 사람이 50~60대 선글라스 남이다. 이균호씨는 이 사건의 처음 폭로자인 폭스우즈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씨의 동생이다.

    검찰은 선글라스 남에게 13억원 전달을 지시한 돈 주인의 신원도 파악 중이다. 대상자로는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한 기업인과 전직 청와대 관계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의 파악한 정황을 살펴보면 ‘13억 돈상자(100만달러)’는 ‘정연씨→선글라스 남→이균호씨→은모씨→경씨’ 순으로 흘러간 것으로 파악된다.

    핵심은 2009년 대검 중수부 수사 때에 이어 이번에 다시 등장한 경씨와 홍콩계 미국인 임웡, 이균호씨에게서 13억원을 받아 미국으로 송금한 은씨간의 관계다.

    검찰은 최근 외제차 수입판매업자로 알려진 은모(45)씨를 체포,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홍콩계 미국이지자 허드슨클럽 400호의 명의 소유자인 임웡은 검찰 수사 결과 경씨의 대리인으로 밝혀졌다. 이달호씨는 “2009년 1월 경씨가 정연씨에게 ‘100만달러를 보내라’고 할 당시 카지노에 임웡도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어떤 연유로 13억원을 주고받았는지를 조사해 가감 없이 발표하는 것이 검찰의 과제다. 

    정연씨가 아파트 구입에 쓴 돈의 규모도 의혹이다. 2009년 검찰 조사에서 정연씨는 “허드슨클럽 400호 계약금으로 40만달러를 경씨에게 줬지만 잔금은 치르지 않았고 435호는 보증금과 월세를 더해 5만달러에 빌려 살았다”고 했다.

    당시 검찰은 박연차씨가 송금한 40만달러와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한 100만달러 등이 허드슨클럽 400호 구입에 쓰였다고 봤다. 435호의 경우 월세와 보증금 5만 달러는 시세에 비해 너무 비싸 이것도 구입한 것 아닌지 의심했다.

    특히 이번에 새로 문제가 된 건 435호다. 경씨가 정연씨와 2007년 10월5일 작성한 435호의 이면계약서에는 이 아파트를 경씨 명의로 2년 동안 두었다가 정연씨가 완전소유권(fee simple right)을 갖는다고 돼 있다.

    두 채의 분양가로만 따져도 280만달러(400호 151만달러, 435호 130만달러)가 넘는데 대체 거액의 자금이 어디서 났느냐가 문제 될 수밖에 없고, 13억원이 정연씨 돈이라는 데 대해 의심이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연씨가 400호와 435호를 모두 구입하려 했는지, 구입금액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지 등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 클럽. 허드슨강에 바로 접해 있어 맨해튼 마천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수영장과 스파, 헬스클럽, 소극장, 클럽 라운지 등을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이종혁 의원이 공개한 이면계약서 ⓒ뉴데일리

    ■ ‘덮으려는’ 민통당 vs ‘밝히려는’ 새누리당

    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정연씨의 ‘허드슨클럽’ 매입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벌어졌다.

    먼저 민주통합당은 검찰이 4.11 총선을 앞두고 정연씨에 대한 수사를 하는 배경에 집중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김학재 의원은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전화를 걸어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까지 종결된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것을 거론하며 권재진 법무장관에게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은 “권 장관이 검찰중립을 많이 얘기하는데 정연씨 수사를 검찰의 중립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사건을 중수부에 배당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을 거론하며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이 분명한데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 대통령 아들은 4개월이 지나도록 왜 소환하지 않느냐. 대통령 아들 문제가 나오니까 (고의로) 전직 대통령 딸을 수사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 장관은 “현직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권 장관은 “(김 전 장관은) 언론보도 취지가 당시 발표 내용과 맞지 않는다며 검찰이 그 점을 명확하게 해 달라는 이유로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돼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관련이 있지 않다고 보고를 받았을 뿐더러 선거개입 의혹이라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박준선 의원은 “이번 (13억 돈상자)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원칙수사를 해야 한다. 검찰이 13억 사건에 대한 명분을 갖고 있다면 내곡동 사저 사건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 관련 사건도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의원은 “노정연 사건은 경씨가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240만달러를 날린 뒤 카지노 매니저였던 이씨와 감정이 상하게 되면서 폭로된 사건인데 이 사건에 대해 지금 문재인 후보 측이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해당 사건은 노정연 개인의 사건일 뿐 노무현 전 대통령에 칼끝을 겨눈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구속까지 되셨던 분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께서 왜 돌아가셨나. (검찰 수사 때문에) 억울해서 자살하실 분이 아니다. 자살 이유는 바로 측근과 가족들의 비리 때문이다. 측근 관리를 못해 부도덕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검찰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현직-전직 대통령 비리 의혹을 모두 수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검찰을 우습게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300만원 돈봉투 사건으로 박희태 국회의장을 날리면서 400~500만원 뇌물수수를 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왜 기소를 안했나. 어떻게 이런 사건이 무죄를 받나. 민주통합당 내에선 돈봉투 사건이 없나. 검찰이 못 밝혀 낸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검찰을 한심하게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권 장관은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노정연 사건을 두고 편파소지가 있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중립적인 입장에서 수사하고 있다.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에 따라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2일 국회 법사위에서 최근 검찰의 수사에 대한 의원들의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2일 국회 법사위에서 최근 검찰의 수사에 대한 의원들의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찬종 “당연한 수사” vs  곽상언 “잔인한 수사”

    ‘노정연 13억 돈상자’ 사건을 놓고 장외에서도 공방이 벌어졌다.

    박찬종 변호사는 “범죄 혐의가 있는 곳에는 수사권이 얼마든지 행사될 수 있고 그걸 용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1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노정연 사건’을 놓고 야권이 표적수사를 운운하는 데 대해 “지금 이 시점에 불쑥 드러난 게 아니고 벌써 작년인가 재작년서부터 노 대통령 돌아가신 이후에도 꾸준히 논란이 돼왔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지금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최시중씨나 이상득 의원이 문제되고 있지 않느냐. 이런 각도에서 보면 안타깝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족들이 문제의 혐의가 있다고 한다면 수사 받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누군가가 이걸 강력히 고발을 했고 여러 가지 물증 같은 것이 나타났으니까 그걸 보고 수사하지 말라, 누구도 그렇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연씨의 남편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사실 관계를 증명하기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곽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최근 제 아내가 불쑥 언론에 등장했는데 셋째 아이의 출산을 불과 20여일 앞둔 아내의 모습이 처량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는 “저로서는 지금까지 보도된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저는 제 아내가 이 정도로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이라고 했다.

    이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 한들 제 아내는 아비를 잃은 불쌍한 여인이다. 그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모습을 목도했고 지금껏 마음을 삭힐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곽 변호사는 또 “나는 이 사건에서 인간의 용렬함과 잔인함을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