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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Gorby)'란 애칭을 가졌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5년 3월 소련 최고지도자인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하기 전날 저녁, 공산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셰바르드나제와 휴양지인 흑해의 한 해변을 걸으며 속마음을 나눴다. 셰바르드나제가 먼저 운을 띄웠다. "모든 것이 썩었소." 고르비가 답했다. "우리는 이대로 계속 살 순 없소." 두 사람은 집권 후에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로 다짐했다. 고르비는 그날 밤 부인 라이사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 후 고르비 시대가 열리자 정말로 개혁·개방에 불이 붙었다. 셰바르드나제는 외무장관과 정치국 정위원에 임명됐고, '신사고(新思考) 외교'라는 새 정책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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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체제는 대체적으로 노인정치(gerontocracy)의 폐해에 빠져 있었기에, 54세의 비교적 젊은 고르바초프가 소련 최고지도자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소련 최고지도자들은 늙어 죽거나 쫓겨나기 전에는 권력을 놓지 않았고, 그 결과는 산송장과 같은 노인들의 죽은 정치였다. 1982년 11월, 오랫동안 투병했던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사망하자 역시 노쇠한 안드로포프가 집권했고, 그도 1년여 후에 숙환으로 사망했다. 좀비 같던 체르넨코가 또 권좌를 잇고 1년 남짓 뒤인 1985년 3월에 자연사함으로써, 소련은 2년 4개월 동안 국장(國葬)을 세 번이나 치르는 기록을 세웠다. 소련이 계속 국장을 치를 수는 없다는 의견이 세(勢)를 얻으며 선택된 인물이 고르비였다.
그는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었다. 고르비 체제 아래 모든 것이 변했고, 냉전은 평화적으로 종식됐다. 고르비의 개혁정책은 결국 그에게서 권력을 앗아갔지만, 그는 아직 존경받으며 살고 있다. 냉전사 연구의 권위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저서 '냉전의 역사'에서 이 상황을 웅변적으로 서술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구원하고 싶었지만, 그것 때문에 무력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공포 대신 사랑을 선택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정치적)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역사상 가장 자격을 갖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고르비의 현재 소망은 '스쳐 지나가는 역사의 소맷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신사고 외교'란 무엇인가? 미국은 틈만 나면 공산권을 침략할 것이라는 소련의 고전적 외교사상을 포기하고, 미국을 평화세력으로 인정하고 냉전을 평화적으로 해체해 나간 것이었다. 고르비의 위대함은 전임자들처럼 철권통치자로 군림하면서 현상유지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산체제의 근본적 결함을 인정하고 개혁해나가며 세계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그동안 노인정치가 지속됐다. 김일성·김정일 모두 죽을 때까지 권력을 향유했다. 거기에 왕조식 세습이라는 치명적 결함까지 더해졌다. 이제는 20대인 '왕손(王孫)'이 지도자로 등극했지만 주위 인물들은 대개 고령이다. 김정은과 장성택은 물론 고르바초프가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현명하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영위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은 인지할 것이다.
북한도 이제 고르비만큼은 아닐지라도 현재 처한 위기와 근본문제를 인식하는 지도자군(群)이 형성돼야 한다. "이대로 계속 살 순 없다"는 것을 빨리 현명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세대교체라는 요소가 가미되면 더 좋다. 노인정치에서 벗어난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좋은 선례(先例)가 있다. 북한지도부가 생각을 바꿔 기득권을 조금만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한다면 먹고사는 문제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침략세력이 아니라는 북한판 '신사고 외교'도 생겨나야 한다. 소련이 무기를 내려놓았을 때 우려했던 전쟁은 없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원치 않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이고, 인접국 모두가 무리하게 북한체제를 무너뜨릴 의도가 없다.
권력과 현상유지라는 소아병적 사고에서 벗어난다면 현 북한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다.
공포 대신 사랑을 택한다 해도 나쁠 것이 없다. 어차피 공포로만 권력을 지키는 시대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40여년간 권력을 누린다는 생각은 얼마나 허망하며 또 불가능한 것인가. 차우셰스쿠나 카다피처럼 끝까지 공포를 택했다가 비극적으로 처형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북한에서 고르비 같은 인물이 나오긴 어렵겠지만, 그 근처에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길 기대할 수는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정은도 포함된다. 희망 섞인 얘기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래야 그들이 '스쳐 지나가는 역사의 소맷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