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대법원장 당당하십시오

      판사 150여 명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한미 FTA가 사법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사법부가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제기한 판사를 징계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도 했다. 판사도 개인의 양심을 가졌으니 의사표현을 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판사라는 특정한 직업의 직업특성상 판사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린 사안에 대한 의사표출을 자제하고 신중히 처신했으면 하는 것이 사법 수요자로서의 필자의 개인적 소망이자 양심이다. 연판장이다, 으름장이다, 집단행동이다 하는 것들을 판사들한테서는 목격하고 싶지 않다.

      판사는 표정도 마음대로 짓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판사가 뭐 무생물인 줄 아느냐고 하겠지만 무생물은 아니더라도 정치적 선호와 주관적 희로애락을 말로 표출하는 것은 물론, 얼굴에 내색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왜? 판사니까. 판사는 법의 잣대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안에도 유죄를 때리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안에도 무죄를 때리기도 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를 바라는 판사들이 운동가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는 필자의 마음은 스산하고 우울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부시절 이래 운동문화에 세례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객관적 논리보다는 특정 세계관을 더 위에 두는 그간의 정치적 유행에서 오늘의 40대 판사 일부도 아마 자유롭지 않은 모양인가? 자유주의 판사만 판사냐, ‘진보적’ 세계관을 가진 ‘진보적’ 판사는 판사가 아니란 말이냐고 한다면 굳이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걱정할 따름이다.

      걱정하는 이유는, 그런 세계관을 가진 판사는 아무래도 주관적, 정치적 판단으로 기울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야, 도둑을 재판할 경우라면 객관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에서는 다분히 정치적 선호가 작용할 우려가 없잖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굳건한 중심잡기만 바랄 뿐이다. 필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오래 전 공석에서 대면한 적이 있다. 길지 않은 대화도 해봤다. 받은 인상은 정통주의적 사법관(觀)을 가진 인사 같다는 것이었다. 사법부의 경우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잣대 자체가 천박스럽다. 보수 진보 논란하기 전에 ‘객관적인 법리’대로 하면 될 일이다. 그걸 필자는 정통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김병로 대법원장만 상기하시면 됩니다. 목에 칼이 들어온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법리대로만 하신 그분 아닙니까? 후배들을 사랑하시되, 후배들에게 휘둘리지는 마십시오. 요즘 후배들한테 휘둘리는 선배들이 많아 꼴 볼견입니다. 어른의 당당함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