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先통합-後경선 합의, 욕심 내린 孫, 한발 양보 朴경선룰 두고 갈등 씨앗 남아..당원주권론 vs 시민참여론
  • 민주당이 오랜만에 대승적인 ‘화합’을 보여줬다. 극심한 내홍으로 ‘분당론’까지 불거졌던 야권 통합 논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서는 손 대표의 ‘뚝심’이 박 전 원내대표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누가 당권을 지느냐’보다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대승적 합의가 이뤄진 것에 대해 고무된 분위기다.

    손 대표와 박 전 원내대표는 27일 밤 여의도 한 식당에서 야권 통합 원샷 전당대회 개최에 반대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만나 2시간여 담판 끝에 중재안 합의를 성사시켰다.

    야권 통합 전대의 방식과 일정을 둘러싼 당내 분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간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서 찰떡공조를 하다가 통합 국면에서 서로 돌아선 두 사람의 소원함도 적잖이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 ▲ 지난 23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 회의가 끝나자 손학규 대표가 박지원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3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 회의가 끝나자 손학규 대표가 박지원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학규 욕심 내려놓고 실리 챙겼다

    두 사람의 합의 과정에서 손 대표는 박 전 원내대표가 요구한 민주당 전대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며 당 대표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내달 11일께로 예상되는 민주당 전대 일정을 감안할 때 자신의 임기(12월17일) 안에 통합 정당을 출범시키려던 목표를 포기한 셈이다.

    그는 지난 23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내 욕심 때문에 그러는(통합전대를 밀어붙이는)게 아닌가, 성과를 좀 내려는 게 아닌가"라고 자문하면서 "맞다. 성과도 내고 싶은 게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손 대표는 그러면서도 통합 정당의 지도부만큼은 범야권의 모든 후보가 출마해 한꺼번에 선출해야 한다는 원샷 경선 원칙을 지켜냈다.

    민주당 전대에서 지도부를 먼저 뽑고 나머지 통합세력과 합치는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이 같은 노력은 과거 통합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는 민주 진영에 뛰어든 지 4년만에 벌써 세번째 통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탈당 이후 창당을 주장하던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권 통합 합류를 선언, 대통합민주신당 출범의 급물살을 이뤄냈다.

    대선 패배 이후인 2008년 1월에는 4년 전 갈라섰던 구(舊) 민주당과의 합당도 성사시켰다. 그러나 `2차 통합'은 사실상 물리적 결합에 그쳐 18대 총선에서 `지분 나누기' 공천의 폐해를 낳기도 했다.

    손 대표 측은 "손 대표가 `원샷 경선'과 단일 지도체제를 고수한 것은 통합세력들간 지분 나누기 폐해를 차단해 내년 총선에서 국민에게 통합 정당의 새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박지원 대승적 양보…명분 지켰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통합과 당권의 저울추 위에서 야권 통합의 선결이라는 더 큰 명분에 몸을 실었다.

    27일 심야회동에서 손 대표와 박 전 원내대표가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낙 두 사람의 입장차가 컸고 완강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중재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박 전 원내대표의 입장은 완강했고, 이러다간 분당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당내 경선 구도에서 줄곧 수위를 달리고 있던 박 전 원내대표 입장에서 야권 통합경선은 자칫 당권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종의 모험일 수 있어 ‘선(先) 민주당 지도부 선출, 후(後) 통합 전대’라는 주장을 접기 쉽지 않았다.

    박 전 원내대표가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선당후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야권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최근 들어 당 전반의 분위기가 민주당의 정체성과 주도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통합의 대의를 거슬러선 안된다는 쪽으로 급속히 변화한 현실적 제약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 전 원내대표가 당권에 눈이 멀어 야권 통합을 방해한다"는 당 안팎의 비판을 무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인 셈이다.

    다만 박 전 원내대표가 지도부 선출 원칙으로 제시한 '당원주권론'은 비(非)민주당 세력과의 경선룰 협상 과정에서 또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원주권론은 당의 주인이 당원인 만큼 당원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비민주당 세력은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완전국민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당원과 대의원 중심의 지도부 선출에는 민주당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합법적 절차를 밟아 당원의 의사가 통합을 결정하면 제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켜왔다"며 "민주당의 60년 전통을 이어가는 통합정당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 연합뉴스
    ▲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 연합뉴스

    쟁점 남았다. 경선룰은 어떻게?

    지금까지 민주당의 당내 갈등이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면 이제는 세력간 경선룰 이견을 해소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경선룰은 세력별로 지도부 입성 가능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선거인단 구성방식이 최대 쟁점이다. 민주당은 180만명의 당원조직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당원과 대의원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는 경선을 원하고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내세운 `당원주권론'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비민주당 세력은 희망하는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완전국민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 주도의 새 정당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상대적 열세인 조직력을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비민주당은 내심 당원ㆍ대의원 20%, 여론조사 30%, 국민경선 50%를 마지노선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민주당에서는 당심(黨心)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전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강경론까지 나온다.

    당명의 경우 박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쓸 것을 주장하지만 비민주당 계열은 `민주'라는 글자가 들어가되 당명을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투표 방식은 1인2표제를 적용하고 인터넷ㆍ모바일ㆍ현장투표 등 3가지를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고위원은 11명을 두되 6명은 경선에서 선출하고 원내대표와 청년대표 등 2명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며 나머지 3명은 여성, 노동계, 지역 등을 감안한 당 대표의 지명직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